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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장편
2003.6. 지구영웅전설
2003.8.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2005.6. 카스테라
2006.9. 핑퐁
단편
갑을고시원체류기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누런강 배한척
그러니까, 박민규라는 작가는 이 소설 지구영웅전설을 출간한 지 2달만에 역작,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출간한다. 이미 써놓았을 것이다. 부지런히 써놓고 기다렸을 것이다. 책이 출간되기를.
삼미슈퍼스타즈를 먼저 읽었던 나로서는 박민규라는 이 생김새 사뭇 독특한 아저씨의 그 독특한 글에 완전히 매료되었었다. 이후 이어진 그의 단편들에서 아, 너무 쉽게 얘기하는 거 아냐? 할 정도의 시기심을 느꼈었다. 누군가는 질질 늘어뜨려 청승맞게 이야기 하는 것들을 박민규는 가볍고 통쾌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약간은 시큰둥하다. 그래 뭐 그런거지. 그렇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정도의 어투라고나 할까.
체험하지 않은 것을 쓰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라는 이야기를 읽었다. 박민규는 우리가 체험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여기서 펼쳐놓는다.
지구 영웅 전설엔 우리가 익숙히 잘 아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슈퍼맨, 배트맨, 아쿠아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헐크 등등. 그 영웅들 속에 우연히 등장한 바나나맨.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한국에서 온 어설픈 영웅의 엑스트라다.
지구 영웅 전설은 미국의 영웅들 사이에서 성장기를 보낸 바나나맨의 이야기다. 그가 영웅들 사이에서 세계의 섭리를 깨닫고, 그 영웅들이 세계를 어떻게 지배하는가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간략한 내용. 쉽게 말해, 미국 패권주의를 희화화한 풍자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만화상의 캐릭터들을 소설로 끌어들인 점과 박민규 특유의 입담좋은 서술과, 쉽게 할 수 있을 수도 있는 단순한 상상력을 소설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점이 과연 상을 받을만 한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 두껍지 않고 심오한 내용을 가벼운 듯이 이야기해서 매우 잘 읽힌다.
두꺼운 책들에 질식할 듯한 기분이라면, 박민규의 데뷔작으로 다시 글자들의 춤을 신나게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2007.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