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 (외) 범우 비평판 한국 문학선 36
나혜석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경희 (외) 범우비평판 한국문학 / 나혜석편 / 이상경 책임편집, 해설 / 범우사 펴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신뢰하는 출판사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시리즈물로 고전을 펴내는 회사들에 대해서 그런 생각들을 더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한길사를 어떤 사람은 중앙서적을, 어떤 사람은 예전 고려원을, 그리고 나의 윗세대는 삼중당 문고를 신봉할 것인데, 나에게 삼중당 문고와 같은 의미는 범우사였다. 나는 범우사의 출판물을 신뢰한다. 특히 범우사에서 펴낸 해설판 문학전집 같은 것은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이번에 처음 손에 넣은 범우사의 시리즈 물온 범우비평판 한국문학이다. 현재 제 42권까지 출간이 되었는데, 저자를 중심으로 대표 작품만이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까지도 수록한다는 것이 특이점이고, 출판사에서 밝히는 특징은 문학의 개념을 민족 정신사의 총체적 반영으로 확대, 기존의 문학전집에서 누락된 작가 복원 및 최초 발굴작품 수록, 문학전집의 편찬 관성을 탈피, 작가 중심의 새로운 편집, 학계의 전문적인 문학 연구자들이 직접 교열, 작가론과 작품론 및 작가, 작품연보 작성. 이라 한다. 이 책은 그 중 36번째 권 작가 나혜석의 글모음집이다. 나혜석이라 하면 한국최초의 여성서양화가, 정도로 알려져 있다. 불우한 인생을 살다 결국 어디선가 행려병자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나혜석.

이 책은 그녀가 쓴 소설과 희곡, 평론과 수필들이 담겨있다. 책을 읽으며, 이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 글을 쓰는 사람인지 굳이 명확하게 분류해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 일단 문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그리고 그 나름의 신조가 굳고 논리들도 명쾌하다. 과연 그 당시 신여성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사상은 2007년 현재 내가 하는 생각과 일치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소설과 희곡은 자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들이 많은데, 자신이 개척해 온 신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강한 긍지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녀는 가난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진명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화가로 등단을 한다. 그리고 일본에 유학을 가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근대적 여성의식을 가지고 당시의 지식인 반열에 올라 이런 저런 글들을 잡지에 기고한다. 그녀의 글들은 대부분 파란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인 지금 읽어도, 아, 이건 참으로.. 지나치게 솔직하고도 진보적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당시엔 오죽했을까. 하는 것이다.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때문에 교원생활도 했었고, 적극적으로 청혼하는 친일파 김우영과 결혼한다. 김우영은 총독부에서 일하는 관리였고 후에 변호사를 개업하였으나 실패하여 다시 총독부로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경제적이 어려움과 시댁과의 갈등이 빚어졌고 이전에 김우영과 함께 했던 유럽여행에서 만난 최린이라는 자와의 염문설로 김우영에게 이혼을 강요당한다. 이혼하지 않으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는 이미 딴 살림을 차리고 있던 김우영의 요구에 나혜석은 무력하게 동의한다. 그리고 이혼의 빌미가 되었던 최린에게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얼마간의 합의금으로 고소를 취하했지만, 그녀는 자식들도 보지 못하고 오갈 곳이 없는 신세로 전락한다. 미술재료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이우 그림을 팔아 먹고 살기 보다 글을 팔아 먹고 살게 되고, 40이 갓 넘은 나이에 양로원에 입소하게 되나 스스로 수번을 뛰쳐나와 행려병자로 발견되어 사망한다. 그녀의 인생은 단순히 파란만장한 것이 아니라, 너무 거대했다. 그녀가 이혼을 당하고 빈털터리빈 되었을 때 그녀의 화려했던 인생은 오히려 그녀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이 책엔 그녀가 이혼후 적었던 <이혼고백장>과, 이혼후 적은 “신생활에 들면서”, “독신 여성의 정조론” 등도 실려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것은 처지가 처지이다 보니 <모母된 감상기> 이다. 모된 감상기는 남성중심의 문단에서 편견으로 자리잡았던 숭고한 모성애, 자식에 대한 끝없는 자애로움은 모두 가식이라는 것을 신랄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은 고통 그 자체이며 육아는 그 고통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아이들을 키우고 때로 그 사랑과 예쁜 짓에 시름을 덜기도 하지만, 근간이 되는 것은 고통이라는 것에 대해서 매우 솔직하게 적고 있다. 이 글을 발표되고 백결생이라는 자가 비판글을 쓴 것에 대하여 답으로 “백결생에게 답함” 을 적어 “씨(백결생을 말함)의 ‘임신이란 그리 편한 일이 아니다’라는 일구를 보면 씨가 능히 알지 못할 사실을 아는 체 하려는 것이 용서치 못할 점이다”라는 매우 강경한 어조로 반박하고 있다. 그야말로 나혜석의 글은 용기백배, 가공할만한 배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글의 마지막에 적기를 “나는 꼭 믿는다. 내 <모 된 감상기>가 일부의 모중에 공명할 자가 있을 줄 믿는다. 만일 이것을 부인하는 모가 있다 하면 불원간 그의 마음의 눈이 떠지는 동시에 불가피할 필연적 동감이 있을 줄 믿는다. 그리고 나는 꼭 있기를 바란다. 조금 있는 것보다 많이 있기를 바란다. 이런 경험이 있어야만 우리는 꼭 단단히 살아갈 길이 나설 줄 안다. 부디 있기를 바란다.”라고 적었다. 책의 목차에 백결생에 답함은 모된 감상기의 뒤에 있어 나는 모된 감상기를 여러군데 줄을 치며 읽다가 맨 마지막 발표된 잡지의 이름과 날짜 밑에 “오, 나혜석, 당신은 내 입에 앉아있구려”라고 적었었다. 그래, 1923년에 적은 그녀의 글이 거의 80여년을 흘러 나에게 공명하였음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가부장적 제도의 희생양이었으며, 시대가 죽여버린 인물이다.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에 돌을 던진 문장으로 보자면,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맥락을 이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리라 생각된다. 그녀는 이광수등 당대 지식인들과 돈독한 친분을 이루고 있었고, 세상의 주목을 받던 그 화려한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하는지 정확히 알 지 못했다.


근대시기의 신여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당시의 사상이 우리의 생각보다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그리고 나혜석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갈 수밖에 없던 시대적 아픔과 그녀를 복원하고 싶은 노력에 가까워지고 싶다면, 나혜석 문집을 강력히 추천한다. 옛글이라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전혀, 어렵지 않고 매우 흥미진진하다. 오히려 현대의 지지부진한 컬럼들보다 백배 나으리라 자신한다.



2007.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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