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영혼이 곤고해지면 자연이 그리워진다고 했다.


이제 "지난"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은, 8월 더운 여름 어느 날 밤, TV 책을 만나다에서 소개했던 책이다. 그 날 TV 책을 말하다는 야외로 무대를 옮겨 시원한 초록색 속에서 프로를 진행했었다. 그리고 이 책은 유머가 깃들여진, 재미있는 여행서이며, 결국 목적한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다 종주하지도 못한 두 사내의 이야기라고 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거리로 말하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의 두배가 넘는 거리이다. 미국의 조지아주에서 시작해 버지니아와 펜실베이니아, 뉴욕, 매사추세스를 지나 메인 주에 이르기까지, 군데 군데 쉼터와 산장이 준비되어 있지만 간혹 저 귀엽게 생겼으나 무시무시한 불곰이 출현하기도 하고 살인사건이 나기도 하는, 겁나는 길이다.


그 곳은 등산이나 하이킹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꿈의 등반길이지만, 그 엄청난 거리 때문에 쉽게 발길을 시작할 수가 없고 Thru Hiker 라고 불리는 전제 코스를 한 번에 등반하는 하이커들과 구간을 나누어 종주를 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이 책의 주인공인 빌 브라이슨은 어느 날 이 엄청난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기로 맘을 먹는다. 그러나 동반자를 찾을 수 없었고 뚱보이자 알콜중독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는 오래된 친구가 (사실 종주의 동반자라로서는 장점이 단 하나도 없는)그의 종주에 동반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어이없는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책은 빌 브라이슨이 종주를 결심하고 종주준비를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종주를 위해 샀던 등산용품들의 가격부터, 그걸 팔던 종업원이 한 말과 종주 전 날 나는 미쳤어라고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세세한 이야기부터 풀어낸다. 책은 내내 이런 식이다. 도덕이나, 그래선 안돼. 하는 윤리따위는 없다. 그저 그가 느낀대로 그가 본 대로 그가 들은 대로 마음껏 지껄이고 그래서 인간적으로 느껴지며 책의 행간에 적힌 유머들 때문에 킥킥거리며 웃을 수 있다. 단점이라면 그의 종주가 전혀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위협적인 일과 무서웠던 순간들도 모두 기록하고 있지만, 책은 내내 유쾌한 어조를 잃지 않는다.


 


대부분의 여행서들이 (내가 읽은 것들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지고 있는 품위는 없다. 진지하고 아, 나는 이 여행을 왜 하는가, 자아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나 자신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전투적인 삶에 대한 존중보다는 이 여행서는 그저 가기로 했으니까 가고는 있는데 언제라도 누가 소리 한 번 지르며 그만해! 라고 말하면 당장 그만둘 수도 있는 의지박약한 평범남들의 주책스러운 여행기이다. 예를 들면 배낭이 무거워서 싸온 식량을 죄다 버린다거나, 양동이만한 코카콜라를 마시며 정말 흡족해 한다거나,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거나 하는 "수행자"인 체 하는 여행객의 가식은 전혀없다. 그렇다고 철없는 이야기들만 가득한 것은 아니며, 작가의 박학한 상식들이 책의 곳곳에 묻어있어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엿들을 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토의 규모와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 기후는 어떤지 기본적인 상식이 있었다면 좋겠지만, 뭐 꼭 그런 요소가 책의 필수상식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이 바보같은 두 남자가 미친 짓을 시작하고 또 그 짓거리를 어떻게 종결짓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아, 나도 분명히 이럴꺼야 하는 공감과 함께 책에 파묻히는 매력이 된다. 아, 이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 라고 생각하는 여행서가 아니라, 지들이 그렇지 뭐 킬킬킬 하게 되는 여행서라고나 할까.


 


스포일러겠지만, 이 책의 저자와 그 동반자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지 못한다. 중간에 차도 타고 택시도 타고 햄버거도 먹고 그야말로 엉망진창의 하이킹이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어쩄거나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다고.


 


어딘가를 가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는 분에게 특효약이 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매우 즐겁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책이다. (맨 마지막에 내가 이렇게 쓰는 부분은 꼭, 약장수처럼 느껴진다.)


 


2007.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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