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가 되면, 유치원 버스들이 아파트 단지에 속속들이 도착한다.

그 때 부터 놀이터가 붐비기 시작한다.

예전과 다른 이상 고온 현상이 지속된 이번 주, 상자갑 같은 집안에 갇혀있던 아이들이 터져 나왔다.

오후 2시 부터, 저녁 7시까지. 해가 길어지자, 유치원 끝난 아이들, 학교 끝난 초등학생, 놀이방에서 나온 아이들이 계속해서 놀이터를 찾았다가 떠나가곤 한다.

집에서 혼자 노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자고 보채면서 놀이터에 아무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도 한다.

나는 TV를 틀어 아파트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확인시켜준다. 어디 놀이터에 사람이 있는지, 아이와 함께 확인한다.

 

우리는 놀이터로 향한다.

그리고 삼삼오오 또래 엄마들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해 나는 멀찌감치 자리를 잡는다.

아이는 모르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멀뚱하니 쳐다보기도 하고, 혼자 놀기도 한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다른 엄마들이 행여 나에게 말을 걸까봐 두려워 하며 혼자 뚝 떨어져 앉아서 책을 펼친다.

"나에게 말 걸지 마시오" 라고 무언의 선포를 하는 셈이다.

 

나는 아줌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기가 귀찮다.

나 역시 아줌마이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자녀들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형제가 있는가에 대해서 묻게 되고, 아줌마들은 자녀들의 나이로 은근한 서열을 매긴다. 각자의 나이를 묻는 것은 자녀들의 나이를 묻고 난 다음이다. 아이의 나이가 생각보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거나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첫 만남에서 서로의 나이를 묻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는 그 과정이 괴롭다.

큰 애는 몇 살이예요 - 다음에 이어지는 놀라운 표정들, 반복되는 질문들. 나는 그런 것들이 지겹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우울한 것.

아줌마들의 신변잡기 보다, 가끔 나에겐 루쉰이 더 중요하다.

 

내가 이 아파트에서 대화를 나누는 단 한 사람 - 그 사람이 오기 전까지 나는 침묵한다. 

20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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