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 1 - 초원의 바람
장룽 지음, 송하진 옮김 / 동방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아,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까.
당신이 상상할 수 없던 떨림과 충격을 안겨주기 위해 초원의 늑대가 왔다. 라는 책의 카피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무협소설과도 같은 표지에 빤한 내용이 아닐까 했던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흥분했고 떨었고 가슴이 아파왔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4년반을 지내오는 동안, 늑대의 고향, 몽골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진한 후회를 했다. 물론 지금 늑대의 고향으로 간 들 늑대는 남아있지 않지만 말이다. 늑대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멸종되었고 중국의 내몽고 지방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한다. 검색사이트에서 찾아본 늑대의 사진은 모두 철장 안에 갇힌 모습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야생늑대는 전설속에 남아있는 모습 뿐일지도 모른다. 마치 이 책 속으로 야생늑대들의 혼만이 빨려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狼. 은 중국어로 늑대를 말한다. 이 책은 중국작가 장룽의 대작이며, 그가 문화대혁명 시절 몽골의 엘룬 초원에서 보낸 11년의 노동기간, 그 때 매료된 은빛 늑대에 대한 매력을 오랜세월 연구하고 다듬어서 만든 역작이라 하겠다.
내몽고, 지금은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근원지가 된 황량한 사막. 이 책은 어쩌면 그 광활한초원이 사막이 된 이유가 바로 무지한 인간들이 저지른 늑대의 멸종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지도 모른다. 책에 따르면 초원의 먹이사슬은 이렇다. 초원에 사는 동물들의 먹이사슬중 가장 아랫그룹에 속하는 것은 들쥐와 햄스터, 그리고 조금 크기가 큰 것으로는 마르모트와 산토끼를 들 수 있다. 이 것들은 산속과 초원에 굴을 파고 서식하며 왕성한 번식을 자랑한다. 그리고 상위 초식동물로 가젤이 있는데, 가젤은 이동속도도 만만치 않지만 그 무게또한 적지 않아 대규모로 이동했을 경우 초목을 황폐화 시키기가 쉽다. 그 초원에서 유목을 하는 사람들은 양을 주로 키우고 그 양을 치기 위해 말을 타고 개를 훈련시켜 양치기를 하는데, 이 초원의 최고 포식자가 바로 야생늑대인 것이다. 야생늑대는 간혹 양이나 말떼를 습격하여 유목민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그들은 주로 마르모트와 들쥐, 햄스터부터 시작해 가젤까지 골고루 잡아먹기 때문에 마르모트등의 설치류가 산을 황폐화 시키고 양들이 먹을 풀까지 모두 뜯어놓는 것을 막으며 가젤 또한 늑대의 주먹이가 되기 때문에 초원 생태계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몽골에 사는 유목민들은 이 늑대들과 늘 대치되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늑대에 대한 토템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늑대가 초원을 지켜주는 신과도 같은 작용을 하며 그 곧은 기개와 뛰어난 전투력과 협동심등이 사람들이 늑대를 숭배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늑대는 상당히 매력적인 동물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인터넷상에서 돌던 늑대는 일부일처를 철저히 지키는 동물이라는 설처럼 말이다. 그게 사실인지의 진위여부는 늑대에 대해서 좀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이 소설은 분명 늑대를 신격화 시킬 수 있을만큼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전 중국 대륙의 중심을 지나 서쪽의 티벳 아래 자그마한 마을들을 지나는 여행을 했을 때 베이징에서 왔던 긴 머리의 좋은 카메라를 가졌던 여자를 기억한다. 그 여행에서 나는 30대의 미혼 여성 배낭족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들은 모두 한족이었고 고학력에 고수입을 자랑하는 도시처녀들이었다. 그녀들은 소수민족들의 축제에서 그 모습들을 사진에 담으며 뇌까렸었다. 한족이 가장 재미없는 민족이라고. 한족은 춤도 노래도 기개도 없다고. 그들이 봤던 이족이나 티벳민족들의 춤과 노래는 그야말로 산과 사막을 모두 집어삼킬 듯 웅장하고 화려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첸젠(작가의 분신인 듯)도 역시나 그러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 했다. 소설속엔 베이징에서 하방으로 내려온 첸젠이 인간의 욕심을 부려 한 마리의 늑대를 키우게 되는 이야기가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변질된 몽고족들과 한족들, 그리고 혁명의 바람역시 초원을 황폐화 시키는 데 한 몫을 하지만 그 커다란 구조 안에서 첸젠의 무리한 실험 역시 작은 구조를 또 이루는 액자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늑대와 초원을 지키는 일은 인간에게는 아무래도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지금 30년이 지나 늑대가 사라진 몽골 초원은 모두 사막이 되어가고 그 사막에서 이제는 모래바람만이 불어오고 있다. 간혹 비리거 노인이라는 몽고족의 현자와도 같은 인물의 목소리가 매우 크다고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소설만큼은 이미 사라져버린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후회로 인해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 여행길에 만났던 야크를 치던 목동들을 기억한다. 험한 산길을 내달리던 버스 앞에서 야크와 양을 몰던 목동들을 길을 쉽게 비켜주지 않았고 버스 기사는 그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버스 안에는 휘발유냄새와 흔들거리는 탈 것에 익숙치 못한 티벳 소녀가 구토를 했고 안경을 쓴 신사는 그녀에게 화를 냈다. 거기도 초원이 있었고 양떼가 노닐고 하늘에 독수리가 날았는데, 길을 비켜주지 않던 목동들은 아직도 길을 비켜주지 않을까 궁금하다. 이제는 그들도 오토바이를 타고 양을 치거나 아니면 축사를 지어 대량 생산에 일조를 하기 시작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방운동 [下放運動]

중국에서 당 •정부 •군간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하여 실시한 운동.

중국이 당 •정부 •군간부들의 관료주의 •종파주의 •주관주의를 방지하고 지식분자들을 개조하며 국가기구를 간소화한다는 명분으로, 간부들을 농촌이나 공장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고급 군간부들을 사병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기거하며 생활하게 하는 간부정책으로 1957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하방’된 중앙 및 성급(省級) 지방간부는 300만 명에 달하였으며, 여기에 학생들과 군간부들을 합치면 1,000만 명에 달하였다.

문화대혁명 때에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 다시 재개되었다. 특히 도시의 중 •고등학교 졸업자들을 변방지방에 정착시켜 도시의 인구과잉과 취업난을 완화시키는 편법으로서도 사용되어 각지의 하방청년들의 반발이 극심해져 사회문제로까지 야기되었다. 1991년 현재도 10만 명의 대학생들이 광산 •공장 •농장으로 파견되는 등 이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2007.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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