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당신을 사랑합니다 - 이 시대 모든 커플이 알아야 할 31가지 결혼의 진실
안미경 지음 / 갤리온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명동에 가면 가끔 성바오로서원에 간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있는 성바오로 서원은 이제 성바오로 딸이라고 이름이 바뀌었고 지금 또 문을 닫은 예전 유투존자리 앞에 있다. 그 건물은 왜 항상 백화점들이 들어왔다가 곧 철수를 하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바오로딸에 들어가면 명동이라는 장소의 특별함을 느낀다. 늘 사람들로 북적대는 명동중심가에 혼자 동동 떠 있는 섬같다고나 할까. 그 섬에서 나는 조용한 교회음악을 들으며 책들을 뒤적거린다. 내가 독실한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나일롱이라도 신이라는 존재를 믿기도 하고 예전엔 또 아주 열성이었던 과거의 편력때문인지, 바오로딸에서 책을 한 권 고르고 나면 인생이 바뀌는 것 같은, 내가 아주 착하고 순결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달콤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졌을 때는 바오로딸에서 "건강한 아기 아름다운 엄마"라는 임신기간중 읽으면 좋을 명상집을 샀었고 이번엔 "다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부부지침서를 골랐다. 이런 실용서적은 그다지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가끔 경시할 때가 있다. 뭐 다 빤한 얘기 아니겠어.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겠어,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담 하는 식으로, 담배는 몸에 해롭습니다. 왜냐하면..이라는 지루한 교육용 프로그램처럼 취급하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잘난척을 하지 말고 이 책을 들어보자.

나는 2005년 8월에 결혼한 겨우 결혼 2년차의 가정주부, 곧 돌이 될 아기의 엄마.

육아서는 수없이 읽었으면서 내가 부부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읽었던 책은 그 유명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달랑 한 권 아니었던가. 내가 결혼생활의 답답함을 느낄 때마다 찾았던 돌파구는 엄마들이 모인 클럽의 익명게시판이었다. 둘째를 가졌나봐요 하는 평범한 고민에서부터 이혼에 임박한 엄마들의 이야기, 고부갈등과 어이없는 친척들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구구절절히 뚝뚝 떨어진다. 그 게시판을 약 1시간 가량 읽고 나면 에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는 매우 유치한 상대비교적 행복감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의 비극을 들어 나는 괜찮다라고 자위하는 것은 매우 임시적인 조치일 뿐이다. 근본적 해결은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육아문제로 고민하다가 다른 집 아이는 몸무게가 늘지 않는다더라, 다른 집 아이는 하루종일 운다더라, 다른 집 아이는 맨날 아프다더라, 다른 집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10달을 보냈다더라 하는 얘기를 듣는다고 무슨 육아문제가 해결이 되겠는가. 눈뜨고 애가 깨어나면 또 힘들고 지칠 수밖에.

 

이 책의 저자 안미경씨는 현재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이혼의 그늘이라는 코너를 맡아 상담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에서 결혼준비특강이라는 것도 진행한다. 우리는 쉽게 결혼을 한다. 그 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지 하는 생각으로, 뭐 남들도 다들 잘만 살던데 나라고 못하겠어 하면서 거대한 결혼식을 준비하고 혼수를 고르느라 바쁘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결혼을 하는지. 물론 요즘은 그런 긍정적인 커플도 있겠지만,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기엔 물질의 준비를 하느라 너무나 바쁘다.

나는 혼수와 예단 일체 없이 결혼을 한 경우이지만 우리가 마음의 준비를 한 것들은 과다한 업무에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했던 이야기들은 같이 사업체를 꾸려나가면서 모두 무너졌다. 생활과 일이 구분이 되지 않았고 재택근무를 했던 나는 남편이 들어오면 사업이야기를 해야했고 남편에게는 직장과 가정이 구분되지 않았다. 열띤 토론도 벌여봤고 (최장 기록은 장장 7시간동안 밥도 안 먹고 말로만 싸운 기억) 말 안하고 버티기도 해봤고 남들 하는 싸움은 다 해봤는데 그저 시간이 간다고 묻어두자니 가슴에 불이 치미는 것 같았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남의 떡이 커보이고 남의 티끌도 커보이는 법.

 

나에겐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

다른 책을 읽고 있던 중이었지만 나는 한 장 한 장을 정말 소중하게 읽었다.

화성남자와 금성여자와는 달리, 한국사람이 쓴 한국책인지라 한국적 결혼생활의 실례들이 많았고 남편을 원망하기 보다 또는 이 책을 읽어보라고 남편에게 또 시비를 걸지 않고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길들이 실려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던 도중 나는 낮잠을 자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이혼을 하게 된 내가 재혼상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 애 아빠에게 미안하다, 라고 하다가 고개를 들어 새로 만난 재혼상대를 바라보니 그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더라. 그 꿈을 꾸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늘은 주말마다 피곤한 남편과도 콧노래를 부르며 아이를 바라보며 즐거운 일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하고 줏대없는 동물인지라, 마음을 조금만 바꾸면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 이 책은 앞으로 결혼한 지 1년쯤 된 친구들에게 사서 선물할까 한다. 혹은 올겨울 결혼한 친구와 후배들에게 우선 선물할까 한다. 자고 있는 남편, 자고 있는 아내가 죽이고 싶도록 미운 순간이 온다면, 이 책을 읽으시길. 그리고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발견한다면 이 책을 선물하시길. 책 값은 9,500원. :)

 

2006.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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