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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인디언 역사서.
서부개척의 미명 아래 행해진 인디언 멸망에 대한 충격적이고 놀라운 이야기.
1971년 첫 출판되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생생하고 세밀한 기록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기록문학의 걸작
-이 책은 유신 시대 전제 정권의 발호가 극에 달하던 70년대 말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미국의 호도된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글이 미국인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면 미국에 맹목적이었던 우리에게는 경악과 자괴가 뒤섞인 이중적인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역자 최준석
우리가 기억하는 인디언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군사독재정부가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 시절, 인디언은 야만적인 폭력을 일삼는, 말도 하지 못하는, 문명과 거리가 먼, 단지 사람의 가죽의 둘러쓴 동물과도 다름이 없었다. 서부개척시대를 표현한 그 시절의 영웅적인 미국영화에서는, 인디언들은 대부분 말을 하지 못하고 바야바나 킹콩, 조금 발전하면 타잔같은 소리만 내고 사람의 머릿가죽을 벗기는 일이 예사였다. 그리하여 아파치라는 종족은 야만성의 대표주자로 분류되었고 잡히면 죽는 것이 인디언에 대한 생각아니었던가.
시대가 지나, 이 책이 이제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는 시절이 되어, 인디언들의 지혜, 미국인들의 잔인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된다. 2002년도에 출간된 이 책은 인디언들은 사람을 잡으면 머릿가죽을 벗겨 죽인다는 잘못전해진 이야기만큼의 잔인함을 가지고 있던 인디언들의 멸망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던 수많은 부족들과, 그들이 어떻게 해서 전투에 임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들이 죽어간 이야기들이다. 책은 각각의 장으로 나뉘어져 각 부족의 전투와 살기 위한 투쟁들, 그들이 그들의 땅에서 쫓겨난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는데, 매 장은 예상했던 대로 인디언들의 죽음과 초토화된 땅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음되고 있다. 그 처참함은, 그 어떤 전쟁보다 슬프다. 백인들과 싸워보겠다고 나섰던 인디언들은 그들이 사냥을 할 때 썼던 조악한 무기들을 들었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아무 이유없이 헐벗고 굶주려 죽어갔으며, 이유도 없이, 단지 그 땅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차별 사살을 당한다.
어떤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책이든 영화이든 읽어 낼 때는 그 땅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 미국이라는 땅의 광활함과 특성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디언들의 땅에 대한 애착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디언들의 주장은 이 땅을 떠나면 풍토가 맞지 않아 먹을 것도 구할 수 없고 입을 것도 구할 수 없으며 병들게 된다고 하고 있는데, 그러한 조건들은 미주대륙의 특수성을 조금 더 잘 아는 사람이라면 책의 감동이 더 절절하게 다가올 것 같다. 나로서는 상상의 나래를 열심히 펼쳐보이고 인디언의 입장에서 책을 읽어야만 납득이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책은, 인디언들의 시각을 유지하지는 않지만, 인디언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중심사상을 가졌으나, 백인들이 그토록 잔인하게 인디언들을 몰아내려고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이 빠져있다.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이토록 잔인하게 몰아내려고 했던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그만큼, 어처구니 없는 살육전이었다는 것도 그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일부의 백인들은 인디언들과 결혼을 하여 혼혈 아이를 낳기도 했는데,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았으며 살인을 저지르면서 종족을 멸족시켜야 할 권력다툼의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홍인종으로 불리웠던 인디언 전사들의 중요인물 사진과 인디언들의 전래민요가 수록되어 있어서 사실감을 높인다.
"다음 해 봄이 오면 풀은 무릎까지 높이 자라고 땅은 백인들을 모두 파묻을 새로운 흙으로 덮이리라. 새 땅에는 향기로운 풀과 나무가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흐르리라. 수많은 들소와 야생마가 돌아오리라. 새로운 땅이 옛 땅을 뒤덮는 동안 망령의 춤을 춘 인디언들은 하늘로 올라가 있구나. 이 새로운 땅에 죽은 사람들의 망령이 다시 살아돌아오고 인디언들만이 이 땅에 살게 되리라."
땅을 빼앗기고 부당당한 무릎(운디드 니)에서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이 단지 120년전 인디언 들일까. 지금도 우리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땅을 빼앗기고 정처없는 부랑의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을 권력집단에 의해 강요당하고 있다. 그야말로 노마드와 디아스포라의 시대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그렇게 땅을 빼앗아낸 개척자들은 아직까지 잘 살고 있고, 땅을 빼앗기고 죽어간 힘없는 인디언들은 "보호"구역에 모여 죽어가고 있다. 우리 시대 또 다른 인디언들은 120년전 사라진 인디언들처럼,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게 될런지, 또 다른 "보호"시설에 갇혀, 조용히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2006.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