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 금지된 소설들에 대한 회고
아자르 나피시 지음, 이소영.정정호 옮김 / 한숲출판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일제 강점기 조선인 엘리트들은 어떤 사회적 의식을 지녔을까. 조선 총독부의 식민 지배 체제에 관한 사회·경제적 연구는 어느 정도 이뤄졌으나, 그 지배 체제의 상층부를 구성한 조선인 엘리트의 의식을 규명한 연구는 드물었다. 이들이 해방 후 식민 지배에 협력했던 과거를 축소하거나 은폐한 탓도 컸다. 총독부 체제에서 중요한 실무적 기능을 담당했던 이 하위 지배 그룹의 사회적 정체성을 살피는 연구 논문들이 발표됐다.
     
 
지난 3일 한국역사연구회(회장 홍순민 명지대 교수)의 학술대회에서 소장학자들이 발표한 논문들은 일제 강점기 고등문관, 금융조합 이사, 군수 등 엘리트 집단의 자기 의식을 조명했다.

고등문관시험 행정과를 통과해 총독부 고등관료가 된 사람들의 의식을 분석한 장신씨는 이들이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 데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지만 일본인 관료에 비해 급여나 인사에서 차별받는다는 인식도 지녔다고 밝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938년 총독부 본청 안의 고등관 230명 가운데 조선인 고등관은 12명에 지나지 않았다. 총독부 고등관은 ‘관계의 꽃’이었다. 따라서 고등관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고등시험 합격이 관계 등용문의 유일한 패스포트’이자 ‘고등시험에 합격하면 아무리 바보라도 내무부장까지는 보장’되는 분위기였으므로, 한 수험생은 고등시험 합격자 명단을 보는 순간 ‘내 앞날의 인생이 보장된 듯한 안도의 기분’을 느꼈다.”

고등시험 합격은 개인 뿐아니라 그가 소속된 모든 집단의 영예였고 집단의 위상을 높여주는 도구였다. 당시 대학의 우열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은 고등문관 합격자 수였다. 이 때문에 신생 경성제국대학은 학교 차원에서 응시를 적극 권유했다. “또 고등문관 합격은 문중의 자랑이었으며, 출신 지역 또는 고향의 자랑이었다. 각지에서는 고등문관 시험 통과를 축하하는 환영회를 열었다.”

 

장씨는 고등문관 합격자들의 자부심과 엘리트 의식이 단순히 가문이 좋거나 수재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 데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고등문관 합격자들이 조선인임을 처음으로 자각하는 것은 첫 월급을 받을 때였다. 같은 학교를 나오고 성적도 좋은데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인 동료의 절반 수준의 월급을 받아 갈 때 조선인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선인 문관들은 이를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제도의 문제로 인식했으며, 엘리트 집단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논문은 분석했다. 논문은 조선인 합격자들의 일차적 욕구가 ‘출세’에 있었으며, 엘리트 코스를 거치는 동안 ‘조선인 관료’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소속되어 동질감을 형성했던 집단과 정체성을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식민지 농민 수탈 기구였던 금융조합의 이사를 분석한 문영주(성균관대 연구교수)씨는 이들이 전문 실무 능력을 지닌 고학력자로서 식민권력의 하위 파트너였고, 근대적 교육과 지식을 통해 규율권력을 내면화하고서 농민을 계몽하는 근대인이었다고 밝혔다. 조선인 이사들이 자신들을 일본인과 비교해 뒤질 것 없는 근대 엘리트로 인식하였으며, 식민지배 협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식민지배에 둔감한 금융조합 이사들의 의식 태도는 조선인 군수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이송순(고려대 강사)씨는 조선인 군수들이 “식민지 피지배민족인 조선인이라는 자각은 있었으나, 성공한 조선인으로서 일반 조선 민중들과의 차이를 더 크게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등문관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 조선인 엘리트들은 끝없는 상승욕구를 기본 동력으로 삼아 출세 지향의 삶을 살았고, 하층 민중에 대한 구별짓기를 꾀하는 근대적 엘리트의 정체성을 지녔으며 탈민족적 사고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논문들은 공통으로 지적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윗 글은 이 책을 읽고 있던 11월 13일에 한겨레 신문에 실린 내용이다.

대부분의 소설가, 그리고 문학가들은 지식인에 속한다. 모든 작가가 지식인이라고 하긴 어려운 시대라서 이제는 교집합 정도가 되지 않는가 싶다. 이 책의 저자, 아자르 나시피도 이란의 지식인이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문학 교수를 역임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위스와 영국등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한다. 그녀는 이란을 떠났으나, 이란은 그녀를 떠나지 않아서, 이렇게 이란을 떠나온 후에 금지된 서적에 대해서 이 책을 썼다.

 

나는 폐쇄된 사회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우리중의 일부는 폐쇄된 사회를 경험했을 것이며, 우리중의 대다수는 폐쇄된 사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해들었을 것이다. 할 말은 그토록 많은데 그런 말을 하도록 허용되지 않는 상황, 그 상황에 지친 이 지식인은 이란을 떠난다. 그리고 이 책은 이란을 떠나기 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나 몇 명의 아가씨들과 함께 읽었던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롤리타의 나보코프, 위대한 개츠비, 헨리 제임스, 그리고 제인 오스틴에 대하여. 

 

   
  이란은 이 책에 따르면 1921년 쿠데타로 팔라비 왕조가 수립되었고 1935년에 국호를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꾸었다. 1941년에 마지막 왕(샤)무하마드 팔라비 국왕이 즉위하였다. 그 후 1950년부터 민족주의 세력과 이슬람주의가 결합하여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하던 국왕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1979년 일 월 결국 팔라비 국왕이 국외로 추방되었고 같은 해 십일 우러에 '반미의 화신'이던 호메이니 옹은 수도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여 오십이명을 인질로 잡고 440일간의 억류한 커다란 사건을 일으켰다. 다음 해에 이라크와의 지루한 팔년간의 전쟁이 일어났다. 호메이니는 그 후 10년간 신정(神政)통치를 하여 이란을 근본주의 이슬람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이란 혁명기간 중에 육만명 이상이 희생되었으며 팔라비 국왕의 추종자 수백명이 공개 처형되었다. 많은 반대세력들이 가차없이 구금, 체포, 투옥, 처벌되었다. 대학은 폐쇄되고 여성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게 했으며, 반혁명적이며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서양문화 - 특히 음주, 음악,문학 등-를 금지시켰다.

 서로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이라크와의 전쟁이 유엔의 중재로 1988년에 끝났다. 다음해 유월에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옹이 86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하메네이가 그 지위를 승계하였으며 같은 해 라프산자니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1995년에는 미국의 경제제재조치와 무기수출금지 조항이 선포되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1997년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하타미 대통령은 문명간의 대화를 주장하며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이란은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에서 서서히 벗어나 최근에는 여성들에게 머리카락이 조금 보이는 개방형 차도르를 허락하였고, 청바지와 짧은 치마가 허용되고, 가슴이 패인 웨딩드레스와 인터넷 까페가 등장하기도 하여 경직된 문화에서 유연성과 다양성이 조금씩이나마 나타나고 있다. 

책의 669-670쪽 참조

 
   

 

내가 중국에서 공부를 하던 그 때에 가장 답답했던 것은 지금은 개방된 사회이지만 폐쇄되었던 사회의 잔재가 너무도 많이 남아있었던 흔적들을 도처에서 느낄 때였다. 특히 문학계통에 있어서는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외국문학의 유입이 중지되었고, 외국과의 사상의 교류가 쉽게 열리지 못하는 닫혀있는 사회였기 때문에, 외국에서 들어오는 번역물이나 사상들의 전래가 매우 미흡했다. 한 때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 에드워드 사이드나 데리다 등의 이야기를 십여년 늦게 받아들이고 그를 대학강단에서 다시 반복하는 미학강의를 들으면서 한숨이 나왔고, 외국문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일반 중국문학 전공 교수들은 외국문학을 접할 수 없던 시기를 거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일부 대외한어(외국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강사중에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대학은 서열이 없다는 것(일/이류를 따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었다. 할 말을 많은데 그런 말을 하도록 허용되지 않은 사회에서 계속해서 살다보면 결국 할 말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무엇을 잃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그들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이유로 중국의 쓸만한 학자들은 모두 망명을 하거나 국외로 출국해버렸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물론 다시 돌아오는 자들도 있었고, 남아있는 학자들이 모두 허접한 자들은 아니었지만, 일부 집단의 정치세력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가 전체가 이용당하는 경우, 가장 먼저 죽는 것은 학문일 지도 모른다. 지식인들은 자살하거나 망명하거나 아니면 범인으로 돌아간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그래서 영문학을 사랑했던 저자는 이 글을 통해 이란이라는 나라, 폐쇄된 사회에서 지식인으로서 금지된 책을 읽어나가는 행위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 얼마나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해 안달이 난 것은 아닌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사람은 누구든지간에 그 과정에서 자신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긴장감, 그리고 그녀가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지켜야 했던 책임감들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이 모든 시체들을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은 역자 후기에서 회고록이라고 밝혔지만, 나는 소설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이라고 써 있는 부분은 없다. 회고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자는 그녀와 함께 책을 읽었던 아가씨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위장했고 가명을 사용했으며 여러가지 장치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존재인 마법사라는 인물도 창조되었다. (창조라고 본다)

 영문학에 대해서 조예가 깊거나, 적어도 소개된 작품들인 롤리타, 위대한 개츠비, 헨리 제임스의 소설과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깊이있게 읽고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한 줄 한 줄 쉽게 넘기지 못할 터, 그러나 작가는 당신들 이 책을 읽고 오세요.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도 롤리타는 영화로 제인오스틴의 소설도 영화로 접한 게 다이며, 개츠비는 너무 오래전에 읽었고 헨리 제임스는 노팅힐에서 휴 그랜트가 줄리아 로버츠에게 그 사람 작품을 좋아한다고 했던 대사를 기억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670여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을 손에 넣고 읽겠다는 사람이라면 나보다는 나은 영문학 상식들을 가지고 있을 터, 뭐 그다지 걱정되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고민하는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하고 있다. 최고의 소설은 항상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문제삼으라고 강요하며, 소설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육감적인 경험이라고, 소설은 경험을 흡입하는 것이라고. 

 책이라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를 자꾸 깨닫게 해준다. 나는 또 내가 중동이라는 사회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이 세상에 일단 견고한 현실로 변형되어 사라지고 마는 꿈의 상실을 그리고 있는, 꿈을 순수하게 만드는 갈망, 그 갈망의 비구체성인 꿈이 살아있는 땅들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다시금 또 깨달았다.

 

2006. 11. 14.

 

+굵은 글씨는 책 속에 있는 표현을 변형하여 반영한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