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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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줌마 아직도 이런거 쓰나?"
남편의 코멘트.
"아줌마라니.. 할머니지."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31년생 작가 박완서 할머니.
나는 항상 박완서 작가를 이야기 할 때 박완서 할머니라고 이야기하길 즐긴다.
할머니의 글은 언제나 조근조근하고 소박하며 인간미가 넘친다. 정말 할머니가 얘기 해주는 것을 듣는 것처럼.
약간 옹색한 듯 하면서도, 약간 속물같기도 하면서도, 속으로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 같은 늙은 할머니, 그렇지만 그 심성이 고와 매번 생각한 꿍꿍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그런 노인네.
지난 번에 이 책을 봤을 때 외면했던 책이었다. 

 나는 남들의 기행문을 잘 읽지 않는다.
세상에 많은 기행문을 엮어낸 산문집들을 특히 읽지 않으려 한다.
인터넷으로는 잘 읽는다. 아는 녀석들이 다녀온 곳, 특히 내가 갔던 곳을 비슷하게 다녀온 경우.
그것도 아는 놈들 것만 읽는다. 
 

왜냐하면,
남들의 기행문은 소름끼치는 질투심에 나를 활활 불태우기 때문이다.
정말 나는 타버리고 말 것처럼 반응한다.

 

그런 내가 이제 그 마음을 어느정도 접고 평정을 찾기 위해 고른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할머니의 기행산문집이라면, 대단한 어려움이나 뭐 잰체 하는, 티벳 한 번 갔다와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모두 이해한 것처럼 말하는 객기의 문체는 없을 것이고, (나 역시도 그랬겠지만) 부르르 떨리는 청춘들을 어쩌지 못해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그래서 그런 고행으로 어느정도 그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 안달이 난, 객기, 광기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 책은 1997년 학고재에서 나온 티베트-네팔 기행문 『모독』을 실천문학사에서 다시 내고 싶다고 하여 재편집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도 있다.

책은 4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가장 비중이 있는 것이 맨 마지막에 실린 티벳 기행 "모독"과 카트만두 기행 "신들의 도시"이고 그 앞에 있는 한국땅 남도/하회마을/섬진강/오대산 기행과 잃어버린 여행가방이 실린 두번째 장에는 바티칸/중국,백두산/상해기행이 있고 세번째는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를 유니세프 친선대사의 자격으로 다녀오신 에티오피아 방문기와 인도네시아 방문기가 실려있는데, 각 글의 논조와 방문목적등이 모두 달라 여기저기서 글을 퍼와 짜찝기 한 냄새가 아주 강렬하다. 

 순전히 개인적으로, 나는 이렇게 꼬치끼우듯이 통일성이 없는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편집이 엉망진창인 옴니버스 앨범을 듣는 듯한 느낌이기도 해서 말이지. 

 아무튼, 그래도 산문집이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한 번 펴낸 책을 덜렁 모독만 낼 수는 없어서 이 글 저 글 어울리는 글들을 모아낸 것이니까, 박완서 할머니의 여행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생각한대로, 박완서 할머니의 기행문은 적당히 통속적이고 매우 솔직하다.

그리고 잰체가 없다. 당신들이 그들의 가난을 알아? 이런 것이 아니고, 아, 거지떼들, 지겨워. 지갑을 연 것이 잘못이었어. 라는 읖조림과 저 쓰레기들을 모두 어쩔 것인가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자세가 엿보인다. 어떤 명예나 명목을 중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솔직히 담담히 풀어낸 작가의 필체가 구수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끝으로 미뤄두었던 다른 기행문을 또 꺼내 읽으러 책장을 뒤지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그렇게 의지만 있으면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단계에 이르른 지도 모른다.

 

200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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