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Mr. Know 세계문학 45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고골리 단편선을 고르면서 같이 골랐던 안톤체홉의 단편선.

도스트예프스키는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에서 나왔다"라는 평가를 했었고, 안톤 체홉은 현대문학사의 단편소설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꼽힌다.

예전에 읽었던 『귀여운 여인』의 느낌이 참 신선했던 것 같아서 안톤 체홉의 단편을 더 읽어보고자 이 책을 골랐는데, 책이 판형이 작고 약 260여페이지에 이르기 때문에 가벼운 단편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 위아래 여백이 많지 않는 페이지 구성에 작은 글씨로 깨알같이 적혀있는 것이 예전에 읽던 문고판 서적을 다시 접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보기보다 매우 꽉 찬 내용이라는 것. 아주 빡빡하다. 최근에 보기 힘든 구성이라고 할까.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다시 읽고 싶은 『귀여운 여인』은 없고 매우 짧은 단편인 『굽은 거울』, 『어느 관리의 죽음』, 『마스크』, 『실패』, 『애수』, 『농담』, 『하찮은 것』, 『쉿!』 , 『어느 여인의 이야기』, 『자고 싶다』, 『대학생』,  그리고 조금은 긴 단편 『6호 병동』과 『검은 수사』, 『문학교사』, 『농부들』, 『새로운 별장』,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실려있다.

 

안톤 체홉은 <그가 없었다면 단편 소설을 쓰는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체호프가 없었다면 단편 소설은 고리타분한 형식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네이딘 고디머의 말처럼 단편소설은 바로 이런 것. 단편 소설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라고 알려준다.

우리가 얼마나 즐거운 단편소설들을 많이 읽어봤는가 모르겠지만, 확신하건데 안톤 체홉의 단편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그의 단편을 처음 만난다면 확실히 매료될 것이다. 안톤 체홉의 단편 소설은 스토리가 확실하고 감정이입도 정확하며,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힘이 있되 지지부진한 묘사따위는 과감하게 삭제하며 많은 작가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인 주인공을 너무나 잘 이해하는 - 자전적 이야기의 굴레를 넘어서지 못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포기하지 못하고 주인공의 변명만으로 가득찬 - 몰입은 피하면서 안에 짜여진 정확한 플롯에 의해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말하자면, 어떻게 보면 안톤 체홉의 소설은 지나치게 차가울 정도로 객관적이지만, 비판할 수 없는 정말 "귀여운 인간상"이 그득하다고 할까. 나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듯한 구조이지만, 그들의 터부를 넘어선 행위를 이해하게 되는, 그러니까 소설속의 주인공이 범죄를 저질렀어도 이해하게 되는 공범의 위치에 독자를 데려다놓는다.

 

가만보면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인간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일들을 위태롭게 넘나든다. 그러나 그들은 악한이 아니다. 한 인간의 역사를 잘 이해해야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들을 말하면서 동시에 그의 소설의 이야기들은 격하지 않다. 그저 뭐 그런 얘기가 있었더라구. 그런 소문이 있었다구.. 그래서 뭐 어쨌다가 아니고 그렇다는데. 하는 듯한 말투

 

 "이 곳에 얄따도 오레안다도 없었던 때에도 울렸고, 지금도 울리고 있고, 우리가 없어진 후에도 똑같이 무심하고 공허하게 울릴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 변화 없음에, 우리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에,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지상의 끊임없는 삶의 움직임에 관한, 완성을 향한 부단한 움직임에 관한 비밀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도 잊은 채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 -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中

 

윗 문장이 그의 소설의 느낌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고 할까.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현대 문학사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그 발음하기 어려운 주인공들의 이름 때문에 자꾸 멀리 했었다는 것이다.

책읽는 고양이http://paper.cyworld.nate.com/bluecatlibrary/ 를 펴내고 계신 윤예영 님의 소개로 EBS 오디오북을 요즘 자주 듣고 있는데, 줌파 라히리 라는 작가의 《이름뒤에 숨은 사랑》에 고골리를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아들의 이름을 고골리로 지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오디오북에서 들었다. 그만큼 러시아의 두 소설가의 역할은 막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골리의 외투를 읽고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은 나의 문제이겠지만, 안톤 체홉의 명확한 단편 소설은 고골리의 외투를 잘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도 시원한 탄산수 같은 독서의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사다놓은 바흐친의 "말의 미학"을 빨리 읽어야 할텐데 하는 부담도 함께 말이다.

 

2006.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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