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지식의 감추어진 역사 - 인류는 어떻게 지식과 문명을 얻게 되었나?
한스 요아힘 그립 지음, 노선정 옮김 / 이른아침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하이퍼그라피아와 연이어 읽으려고 구입한 책.

책도 이렇게 파도를 타듯 비슷한 주제들을 연관지어서 읽는게 좋다. 여기서 또 어떤 주제를 찾아내서 이어가면 좋겠지만, 그게 또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가끔 읽어야 하는 실용서적이란 것도 있고 호흡을 딱 끊고 싶을 때도 있으므로.

아무튼, 이 책은 읽기와 지식의 감추어진 역사 라는 너무나 흥미로운 제목을 달고 있다.

오오 - 읽기를 탐하며 지식의 허영을 참지 못하는 자에게 얼마나 유혹적인 책인가.

검은 양장에 두툼한 책.

 

이 책은 언어문학과 교수인 한스 요아힘 그립이 "읽기"라는 주제를 매우 넓게 잡고 시작한다.

READING 이라는 것은 단순히 문자로 된 것을 읽어내려가는 작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별을 보고 기상현상을 예측하고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같은 그림을 보고 그 뜻을 유추해내는, 말하자면 일종의 기호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들부터 시작한다.

마치 스테파노 추피의 천년의 그림여행의 읽기 버전인 것처럼 아주 오랜 옛날 인류가 하늘과 별을 읽기 시작한 것부터, 생존을 위해 몸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의술의 탄생, 그리고 수메르인의 쐐기문자부터 문자의 시대로 돌입한다.

 

이후 알파벳의 시대를 거쳐, 그리스 시대의 문학과 교육을 통해 본 읽기와 지식의 역사를 보고 이어진 로마시대,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독서, 중세시대의 수도원 읽기(장미의 이름이 생각나는),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의 발명까지로 마무리되고 있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이 조금 더 미시사적인 관점을 담았길 바랬는데, 책은 거시사적 관점에 가까운 편이며, 다분히 서양중심적이라 불만스럽기도 했다.

문자라고 하면 당연히 알파벳의 대칭축에 설만한 한자에 대한 이야기도 일체 없으며 이 책의 저자는 메소포타미아 동쪽의 역사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과 함께 동양의 관점으로 쓰여진 책이 같이 소개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직 내 손엔 들어오지 않았고, 그리스- 로마를 넘어가면서 서양중심적인 사관이 자꾸 느껴져서 기분이 잡쳐버렸다.

다 읽고 난 다음 구텐베르크의 활자 발명에 대한 자부심에서 딱 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물론 구텐베르크의 활자는 마틴 루터와의 연결고리가 잘 이어지면서 근대사회로 진입하게 되고 봉건사회가 붕괴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서양사의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겠지만, 이 작가의 책은 어쩌면 동양의 ㄷ자 하나 보이지 않는지, 읽기와 지식의 감추어진 서양사라고 제목을 바꾸는 편이 좋을 듯.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나서 가격을 살펴보고 "헹! 비싸기는 오라지게" 할 수밖에 없었던 책.

자괴감일까?

한국의 출판문화, 가난한 저자들과 출판사들 생각이 나서 씁쓸해진 뒤끝이다.

 

2006.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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