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할 말이 너무 많은 책

간혹 - 책을 선물받기도 한다. 그 횟수는 아주 "간혹"이다.

그럭저럭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그렇지 않을 때도 분명히 있다) 굳이 나에게 어떤 책을 선물해야 할 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간혹가다가 선물받는 책들은 전혀 내 구미에 땡기지 않는 중고도서이거나 (이 경우는 상해에서 유학생활중에 많이 있었다. 독서에 굶주린 내게 책을 보내주는 경우), 정말로 오오오~~ 바로 이거야~!! 하게 되는 딱 구미에 맞는 아주 사려깊은 책 선물.

 이 책은 선물받은 책이다. 요즘의 20대 같지 않은 한 청년에게 받는 책인데, 그가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한 것은 이 책에 대한 의견을 같이 나누고 싶다는 의사의 표현이었다. 그는 나에게 이 책을 건네면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요" 라고 말을 덧붙였다.

 - 그래 이 책은 너무 어이없는 현실, 이미 너무 익숙해진 그 어이없음에 대해서 밤새도록 수다를 떨게 하는 재주가 있는 책일 것 같다.

저자인 박상익씨는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기도 하고, 전문 번역인이기도 하고, 여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자이기도 하다. 지천명이 지난 나이의 이 양반께서 여태 참아왔던 울분을 책 한 권에 성토하셨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나라 출판계, 번역계, 인문교양계에 대한 애정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지적 인프라. 우리사회의 지적 인프라 구축이라.

과연 우리 사회에 인프라를 구축할 만한 지성의 건더기가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한국이 인문학의 위기를 맞이한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어느 날 모대학이 모 기업에 인수되면서 경제 경영학부 아이들이 즐거워지면서, 서울대학원의 인문학부가 미달이 되기 시작하면서, 아니 어쩌면, 도제제도의 지적권리 세습이 이루어지는 이상한 권력구도가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아니 어쩌면, 이 나라가 건국되면서부터. 시작된 오래된 문제일 지도 모른다. 

 번역의 오지 - 대한민국 

 저자는 일단 외국의 번역의 역사를 소개한다. 일본과 중국, 이슬람 문명과 서유럽의 번역 역사를 소개하면서 번역이 가져오는 사회의 지적 혜택에 감탄한다. 훌륭한 동서양의 고전들, 우리가 읽어야 한다고 하는 책들의 번역본이 한국어로 존재하는지 확인해보았는가?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보내는 동안 중국어의 한계에 부딪혀 한국어 번역본을 읽어보려고 했던 책들은 80%가 찾을 수 없었다. 한국엔 번역본이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논어, 제대로 된 장자. 그런 것들은 없었다. 최근엔 한길 그레이트 북스에서 중국의 고전들을 부지런히 번역 출간하고 있지만, 그 때는 일본서적을 중역한 이산출판사의 책들이 고작이었고 어떤 것들은 1960년대 출판된 책들이라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중국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고대소설인 서유기의 완역본(한국에서는 삼국지가 인기있지만 중국에서는 서유기의 인기를 따라갈 수 없다), 사기의 완역본도 찾을 수 없었다. 한국은 그만큼 돈 안되는 책은 번역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였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의 슬픈 현실을 개탄하면서, 모국어가 처한 구슬픈 현실, 글쓰기에 젬병인 젊은이들을 한 번 꾸짖고(20대만 지나면 누구나 하고 싶어지는 일), 번역자이자 소설가인 안정효씨가 "매춘교수"라 명명한 학생들의 번역료를 집어삼키는 못되먹는 교수들의 비양심적인 번역발표 행태를 고발하고 지식인 답지 않은 지식인들의 행태와 이 나라에서의 번역으로 먹고 살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먹고 사는 생계 문제로 싸이월드에서 타운이라는 기업체들의 홍보용 홈페이지를 두 개 운영하고 있다. 방명록에는 늘상 글들이 올라오고 공짜나 이벤트를 바라는 어린 학생들의 글이 올라오는데, 초등학생-중학생들의 글은 너무나 쉽게 파악이 되는 것이, 맞춤법을 제대로 쓰는 학생이 없다는 것이다. 띄어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저히집 강아지가 마니 아파요."라든가, "저히 강아지가 배변만 눠여"라는 문장도 있었다.

배변만 눠여 라는 문장은 20대 여자가 쓴 글이었다.

우리나라에 무지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고 싶다면 타운운영을 해보라고 권할 정도로, 인터넷 사용자들 중에 엄청난 인구가 문맹이 되어가고 있다. 초등학생들은 마침표나 쉼표를 적절한 곳에 찍을 줄 모르고 오문과 비문에 대해 별다른 관심도 없는 듯 하다. 

 이러한 한국어의 현실과 책을 읽지 않는 문화가 출판업계를 굶주리게 만들고 결국 엉성한 번역물들을 불러모으기도 한다. 팔리지 않는 책은 만들기가 곤란해지고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번역물이나 명작 / 고전들이 줄어드는 것이다. 혹은 정말 정말 연로하여 이 양반이 번역을 하실 수나 있었는가 하는 분들의 번역물이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전에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책 중에 번역이 너무 황당무계하여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따위 번역을 하려면 차라리 쓰레기나 치워라"는 독후감을 인터넷에 게재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 독후감을 써 온 것은 199년 10월부터였다) 그 후 모든 번역서를 한 번씩 의심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으며, 그게 외국어 공부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이유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고, 원서를 사들이고 읽어보려 노력하게 되었으며, 한 번 번역이 꽈당이다라고 느꼈던 출판사는 꼭 기억했다가 그 출판사의 번역물은 기피하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다행히도 그 이후로 짜증나게 오역투성이인 인문서적들은 많이 만나지 않아서 그럭저럭 한국어 책을 잘 읽고 있지만, 때로 인문사회과학이 아닌 분야의 서적들 중 역시나 "나는 번역물입니다"라고 행간에 써 있는 책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번역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한 두번씩 어설프게나마, 혹은 우연찮게 번역에 가담하게 되는데, 나도 그런 일을 몇 번 해봤고 또 지금도 늘상 반복되는 것이 번역과 통역이다. 그저 외국어를 두 개 정도 할 줄 안다는 것 때문인데, 번역이라는 것은 어학적 능력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의뢰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 초에 홍콩에서 제작된 중국영화의 메이킹 필름 몇 건과 관련 보도 기사를 번역할 일이 있었는데 의뢰자는 홍콩과 대륙과 대만의 언어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번역 의뢰는 언제나 번갯불에 콩! 이다. A4 두 장밖에 안되니까 내일까지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다 보면 그 양은 두 배 - 세 배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국어 - 중국어 번역시에 왜 결과물의 양이 이 것뿐이냐는 항의, 중국어 - 한국어 번역시 원고료 때문에 글을 늘여붙인 것은 아니냐는 어처구니 없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잘 아는 후배가 부탁했던 일이라 사실 무료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왜냐하면, 번역이라는 작업은 그 노동량에 비해 댓가가 터무니 없이 적기 때문에 차라리 봉사하는 마음이나 공부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주는 편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비디오 테잎을 받아들고 틀어보니 이건 표준어, 광동어, 영어가 짬뽕이 되어 버린 테잎이었고 가격은 그저 일괄적으로 통일해 장당 1만원 - 1만 5천원 선에서 해결을 보았다. 1994년 -1997년까지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남편은 98년도에만 해도 중국어 번역이 장당 7만원이었다면서 너희 세대 불쌍한 세대라고 놀려댔다.

임신 말기에 얼마 되지도 않는 분량을 가지고 골머리를 썩힐려니 (번역은 양이 아무리 적어도 일단 머리부터 아프고 시작한다) 지겨워져서 취업준비중이던 후배에게 나머지분은 넘겨버렸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로 돈 좀 벌어보겠다고 맡았다가 도저히 글자가 벌레처럼 눈앞에서 스물거려서 더 이상 진행을 시키지 못하고 남에게 넘겨버리는 일.

그에 비해 댓가는 ─ "차라리 내가 꽁짜로 해줄께"라고 말하고 싶은 정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다보니 전문적 번역인력들을 부족하고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 밑에서 품앗이로 한 번역물을 출판사 편집자가 짜집기 하여 만들어내는 출판물들이 종종 생긴다는 것이다. 사전편찬은 커녕, 한국의 고서 번역이나 꿈꿀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만들어져 있느냐는 것이다. 

 책사랑 

 이 책의 저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이라는 작업을 - 그것도 매우 난해한 인문학 서적들만을 골라서 - 하는 이유는 뭐겠는가. 당연히 애정이고 열정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할 수 없는 일, 좋아한다기 보다는 사명감으로 이 무지몽매한 군중들에게 다른 세상의 아름다운 작품하나 남겨주겠다는 사명감이 번역인을 살아남게 할 것이다.

책의 마지막엔 책을 사랑하는 저자의 애정관을 보여주는 이야기와 번역인으로 살아가고 싶은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다른 것보다도 책을 꾸준히 사서 모으는 것이 지적 생활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아 - 물론 매우 매우 맘에 드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런 도서 구매로 지적 생활을 너무 오래 영유해 온 나로서는 감히 어디서 강렬하게 이런 주장을 하려면 책과 관련된 것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책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정말 정말 후진국임에 틀림없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1시간이면 다 읽어버릴만한 책들이 아주 잘 팔려나가고, 읽어야 할 고전들의 번역본은 있지도 않으며, 도서관에서는 출판사와 저자에게 책을 구걸하고 사서들은 책을 나르는 노가다에 불과하며, 찾으려는 자료는 통합검색이 되지 않아 스스로 자비를 들여 사대야 하는 우리나라의 책/출판/독서 체계는 문화경제적 후진국인 중국과 그닥 다르지 않다.

중국이 후진국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출판의 엉망진창을 보여주는 사실은 한 번 지나간 책은 주문 할 곳도 없고 구할 곳도 없다는 것이다. 도서관에도 없는 경우가 많다. 서점에 가면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책을 찾기도 어렵다. 워낙 넓은 나라에 엄청나게 많은 출판사들 덕이기도 하겠지만, 정리할 생각들도 안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학술사라는 학문을 연구하던 한 교수님은 10년에 거쳐 이룬 학업을 책으로 냈더니 10위안(한화 1500원정도)이었고 지금은 오래되서 세일이라 반값도 못 받는다고 담배를 물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래도 중국은 국가에서 외래어를 지정하는 기관도 있고 사전편찬도 잘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문화적 / 지적 수준은 그에도 못 미치는 지도 모른다. 

 할 말이 마구 생각나서 책을 읽으면서 내내 흥분하게 만들던 박상익의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이 책은 번역에 코털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좋은 책이다. 피와 땀으로 썼다는 것만큼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없다. 게다가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어준다면 금상첨화 아닌가. 반역이 되더라도 아직도 번역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불쌍한 중생들을 다시 불지를만한 책이다.

 
2006.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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