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 논쟁
프란츠 부케티츠 지음, 김영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의 번역자가 궁금해하는 독자이다.

"이 어이없고 황당한 시대에 한번쯤은 뛰던 발길을 멈추고 인간이라는 이름의 <동물>이 하는 행위와 그 생긴 모습을 진지하게 알아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기를 바란다"는 말처럼,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한 궁금증이 자꾸 용솟음 쳐서 역으로 동물에 대한 책들을 읽어대고 있다. 

 "미실"로 유명한 작가 김별아의 또 다른 소설이 있다. <영영 이별 영이별> - 정순왕후의 사랑을 편지체로 곱게 적은 이 소설은 윤석화가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 그 유명세를 더 치르기도 했는데, 그 소설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찌 사람으로 그럴까. 싶다가도, 사람이니 그러겠죠" 라는 말.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행위들은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그 정순왕후의 읊조림처럼,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쓸데없이 잔혹한 헛짓거리들을 한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올해 들어 가장 길었다.

산욕기를 다 치뤘다고 생각했는데 산후치매라는 것이 뒤늦게 나타났다.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개인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늘 24시간 쉬지 않고 머릿속이 꽉 차 있던 증상이 사라지고 중간중간 윙~하는 이명과 함께 머릿속이 하얗고 멍하게 정지하는 느낌을 받았다. 책이 읽혀지지 않았고 문장 하나를 읽고 이해하는데에도 시간이 걸리는 현상까지 나타났으며 자꾸 책장 뒤를 넘기면서 책을 읽는게 힘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동시다발적으로 책을 읽는 옛습관이 다시 나타나 (아마 한 권에 집중을 하지 못해서 그랬을테지만) 다른 책을 펴놓았는데 그게 또 바흐친의 "말의 미학"인지라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글자만 보다 덮고 덮고 했다. 사회생물학 - 즉 유전자인지 문화인지, 인간의 진화를 구성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책을 펴놓고 나는 인간의 동물적인 생리현상 한 가운데에 있었다는 거다. 

 자식을 낳고 기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유전자가 무엇이 끌려 이 남자를 만났고 이 남자와 아이를 만들었으며, 어미가 된 유전자는 무엇에 만족하고 무엇에 불만족하는가에 대해서 스스로를 관찰하고 있다. (생각보다 매우 재미있다. 해보시길 ㅎㅎ)

 저자는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모두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초로 한다. 그리고 저자의 주장과 책의 내용은 앞의 긴 서설들을 든든한 지원군으로 삼아 후반 에필로그 :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에서 모두 펼쳐내놓고 있다. 기존의 다른 사회생물학 관련 책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에필로그만을 봐도 프란츠 부케티츠라는 학자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생물학이 논쟁이 된다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인간의 진화와 역사의 발전이 유전자의 이유때문이라던 주장때문에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생겨날 수 있었고 (못되게 이용해먹는 인간들 덕이겠지만) 절대 인간을 생물학으로 풀어서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 그 역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라 사회생물학이라는 분야는 늘 논쟁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문화와, 윤리는 무엇으로 규정할 것이며, 도덕과 규율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발생하느냐는 것들도 해당된다. 

 저자는 "사회생물학 전체를 유전결정론으로 낙인찍지 않고, 인간 발달에 작용하는 어떤 하나의 요인군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는 것으로 보게 하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분열되어 있는 세계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유전자 기계가 아니며, <이기적 유전자>는 하나의 메타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현명한 결론은 바로 다음과 같다.

".....자기 의식을 고양한다는 것은 일종의 윤리적 의무에 속한다. 단, 우리가 살아남기를 원한다는 전제하에서 그러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될 이유는 진화의 그 어느 곳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들 앞에 존재했던 수많은 다른 종들처럼 그들 역시 얼마든지 멸종해 버릴 수 있겠지만,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진화의 역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 과정을 스스로 조정 통제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비범하며 인간에게만 고유하게 주어져 있다. 결단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2006.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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