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킨트
배수아 지음 / 이가서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배수아가 좋은 이유는, 그녀만의 것이 매우 확실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외국서적을 번역한 듯한 문체와 아리송한 등장인물과 말도 안되는 판타지.

그 속에 가득한 자유에 대한 갈망, 뻔뻔함, 도도함.

그런 것들이 이루지 못한 자를 더 초라하게 만들기는 커녕, 자 우리는 이제 한 배를 탄 거야. 너도 나와 공범이야. 라고 씨익 웃고 있는 조우커의 미소를 보내주기 때문일 것이다.

 

배수아의 소설중에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었다.

그리고 당나귀들, 독학자, 에세이스트의 책상. 그녀의 소설들을 몽롱하면서도 명확하게 건조하면서도 질펀한 느낌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바케트 빵,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도마. 기름때조차 식어버린 듯한 부엌의 느낌이 바로 독학자 였다면, 동물원 킨트는 축축한 안개가 가득한 동물원의 비관람시간. 코끼리 사나이가 숨어서 식은 빵을 먹고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흐른다.

 

하마라는 "그녀"와 보도, 그리고 나 동물원 킨트 .

모두가 단절되어 있고 고립되어 있는 외국인들의 이야기.

정리되지 않은 하천을 걷는 것 같던 소설은 마지막에 고독의 미학을 이야기해준다.

 

"이제는 가을이 깊어져서 스웨터를 입지 않으면 까페 테라스에 나와 앉아 있지 못해. 이제 부다페스트 거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마음을 소리도 없이 무너지게 하지. ............

이제 모든 축제의 시절은 지나가고 여행자들은 사라지고 우리가 견뎌내야 할 끝없는 혹독함은 아직 몰려오기 전이야...." 라는 문구에서,

우리 모두 외국인, 우리 모두 이방인이라는 동물원 킨트의 이야기가 저며온다.

 

배수아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그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배수아의 매력은 완성도보다 그 느낌에 있다.

단지, 배수아의 팬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2006.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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