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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아이를 키웠을까 - 육아의 지혜, 동서고금 일만 년의 문화사
데보라 잭슨 지음, 오숙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간이 부은게다.
이 엄청난 책을 덥썩 집어들다니.
이 책은 장장 6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마치 사전과도 같은 두께의 어마어마한 책이다.
육아서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 두께에 압도당해 육아서가 아닌 백과사전 내지는, 읽어야 하는 필독 문화전문서적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육아서라기 보다는 육아의 문화를 문화사로 정리한 책이다.
데보라 잭슨이라는 서구의 육아전문 작가가 전세계, 동서고금의 육아법들을 총망라해서 풀어놓았고, 그 중에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떤 것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책은 출산준비물 / 아이의 탄생 / 산후조리 / 모유수유 / 아기의 잠 / 아기의 성장 등으로 출산준비부터 아이의 양육까지의 이야기들을 여러 부족과 각 나라의 사례들을 종합해 이야기했고, 뒷편엔 옛날 옛적 우리 아기들을 키운 내력은 이라는 한국의 창 코너가 추가되어 정대련씨의 글로 한국의 옛날 아기 육아법에 대해서 한 장이 할애되어 있다.
데보라 잭슨은 서양사람이지만, 책 전편에 걸쳐서 동양, 혹은 원시적인 육아법을 동경하고 있는 듯 하다. 서양의 육아법이라는 것은 아이의 방을 따로 만들고, 침대와 모빌을 달아놓고 아이가 새벽에 울면 엄마가 방문을 열고 뛰어가서 달래주다가 아이를 내려놓고 다시 돌아오는, 시대가 지날 수록 점점 부모들에게 맞춰져서 부모에게 편한 식으로 발전 했다. 그러나 결국 그건 부모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아이를 낳기 한 달 전, 스위스의 거래처 직원이 한국에 출장을 왔다가 집에 들렀었는데, 우리 부부에게 아기의 방은 어디에 있냐고 물어서 우리 내외가 순간 당황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아이의 방은 아직 준비를 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엄마와 한 방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그는 아이는 당연히 독립된 방을 하나 가지고 엄마 아빠와 다른 곳에서 자야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 한국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한 방에서 자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라고 대답을 해줬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으면 따로 재우고 그렇게 되면 독립심을 키워줄 수 있으며, 아이가 울 때마다 바로 바로 안아주면 손을 타게 되기 때문에 버릇이 나빠진다고 한다. 병원에서 나눠주는 육아수첩에도 '운다고 매번 안아서 어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적혀있을 정도로 한국의 육아법은 서구를 많이 닮아가고 있다. 베이비 위스퍼라는 책은 특히나 "엄마가 살고 봐야할 일"이라는 것이 중점이 되어 아이의 밤중수유를 규칙적으로 하되 융통성을 발휘하라는 것이 그 주내용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모르겠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도 어머님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 모두) 애는 조금 울려도 된다. 너무 얼러주면 손타서 안된다. 라는 의견과, 남편의 "아이가 원하는 게 얼마나 다양하길래 그걸 못 들어주느냐"하는 대립되는 의견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은, 원시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를 끼고 사는 원시부족들은 아이가 크게 울지 않으며, 서양의 백인 아기들이 악을 쓰고 울어대는 꼴을 동양엄마들은 경악하며 볼 수밖에 없다는 사례와 함께, 출생 이후 엄마와 아이의 유대관계가 얼마나 친밀하냐에 따라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는가가 결정된다는 무서운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일례로 인큐베이터에서 몇 달동안 엄마와 떨어져 살았던 조산아들의 경우 학대받는 아동이 될 확률이 높으며 (부모와의 친밀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서양에서만 발생하는 영아돌연사증후군의 경우 부모의 숨소리를 들으며 숨소리를 배워가는 동양영아들의 경우 쉽게 발병하지 않는 일로서 아무 이유없이 혼자 자던 아이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저자는 마치 동양/원시사회의 육아법을 흠모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물론 피곤하고 구속받는다는 느낌이 가득할 것이다.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한 손으로 일을 해내는데에 익숙해지면서 스스로 참담한 생각이 들기도 할 지도 모른다. 제발 6시간 만이라도 깨지 않고 자봤으면 하고 애원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애를 키우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나와 내 새끼의 일생중에 또 다시 오지 않을 신체적 접촉의 시기라는 생각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가 안아주면 숨막힌다고 싫어하게 될 것이며 게다가 아들래미인지라 나중엔 서로 어색하고 머쓱해하며 손 잡는 일도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내 품에 안고, 젖을 먹으며 재울 수 있는 것은 지금 뿐이라는 것.
그렇다면 원시사회로 돌아가 아이와 살을 맞대고 사는 것을 실컷 즐겨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바로 이 책에서 말한대로.
책을 읽고 나니, 가슴을 풀어헤치고 하루종일 젖을 물리고 살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에서 불을 피우며 우가우가 소리를 낼 지언정.
여태 읽은 모든 육아서중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강력추천.
비록 두껍지만. 읽을 수 있다. 엄마라면. ^-^
2006.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