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원제인 Les Catilinaires 는 프랑스어로 키케로는 《카틸리나 탄핵 연설 In Catilinam》편들을 가리키며 보통 명사화하여 논박, 야유등을 뜻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주목받는다는 아멜리 노통브. 물론 그녀가 진짜로 주목받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간혹 번역되는 책들중에 현지에서 전혀 유명세를 타지 못하지만 정말 좋은 작가이거나, 혹은 유명하나 좋은 작가에는 들지 못하거나, 아니면 한 때 전성기를 누렸던 반짝 작가들은 경우도 있지만, 아멜리 노통브는 그러거나 말거나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아주 짧은 소설 《불쏘시개》의 느낌이 좋아서 또 다른 책을 선뜻 고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는 작가다.

 

이 책의 내용은 책의 표지 삽화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많지 않은 사람이 나오는 소설. 주인공은 4명이다. 4명은 자아와 타자로 대체되어 편을 가르게 되는데, 주인공 내외와 이웃집 내외가 처음엔 그 대결구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웃집 내외의 부인은 그 대결구도에서 살짝 삐껴 나와 있다. 그리고 그 대결구도는 주인공 내외가 나 - 부인의 구도로 변형되고 이웃집 내외의 남자가 구도에서 빠져버리고 나 - 부인 & 이웃집 부인 등의 구조로 변형된다.

길다란 식탁을 가운데에 놓고 그려진 자아와 타자, 우리와 그들, 이라는 개념으로 그려진 잘 그려진 삽화가 소설의 전체적인 맥락을 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비만, 게으름,  침묵,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인간존재의 허무함과 나약함, 무력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비만이라는 것은 게으름과 탐욕이 잘 조화되어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며, 그로 인한 후유증은 반복되는 게으름과 반복되는 탐욕, 그리고 무기력함과 타자와의 단절, 사회로부터의 격리까지, 어마어마한 파장을 매우 오랫동안 길게 끌고 갈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인 비만은 질병이 아닌 듯 하지만 그 영향력은 그 어떤 질병보다도 대단한데, 이건 단순한 습관으로 인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쉽게 무시했다가 나중엔 사회생활에 문제가 발생할 만큼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변화를 몰고 오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그리고 타인들과의 교류에 있어서도 문제가 발생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어떤 키 포인트를 찾아낸 듯 했다.

 

주인공 내외가 이사를 하게 된 곳은 이웃이라곤 있어도 없을 듯한 조용한 마을의 아름다운 집.

그리고 거기서 우연치 않게 맞딱뜨리게 된 이웃집 내외. 별로 필요하지도 않았던 예상밖의 이웃.

이 소통 단절이 충분히 예상되는 배경에서 조금 더 그들의 격리되고 거리감을 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비만이라는 일종의 현상이었다. 그 현상으로 주인공들은 끝까지 소통에 성공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물론 주인공의 부인과 이웃집 부인이 소통을 시작하는 듯 하지만, 예리하게 관찰한다면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종(種)의 구별을 전제로 한 자비로움정도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이 살빼자인가?

 

인간과 인간, 소통이 단절되면 어떤 결과가 따라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단절된 소통사이에서 어떤 내적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좋은 작품. 소통단절에서 시작된 그들의 야유, 그들의 논박에 대해서. 아니, 우리들의 논박과 우리들의 야유에 대해서. 내가 들을 야유와 내가 할 야유에 대해서.

 

그녀의 다음 작품(내가 읽을)이 기대된다.

 

2006.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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