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Mr. Know 세계문학 17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뭐든지, 기대하지 않고, 줄거리를 모른 상태에서 즐기는 이야기거리가 재미있다.

영화도 그렇듯이, 책도 그러하겠지만.

간혹 책이라는 것은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나, 뉴욕 3부작 같은 작품을 만나면 처음부터 되돌려 다시 읽어야 하는 난감한 문제가 펼쳐지기도 한다. 뉴욕 3부작은 그렇게 고리처럼 엮여있는 3편의 중편소설이다.

 

물론 제목에는 폴 오스터 장편소설이라고 적혀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한 편의 긴 장편소설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3편의 중편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말하자면 3편의 중편소설이 독립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 3편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인하여 1편의 장편소설이 또 다시 탄생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1편 / 유리의 도시 , 2편 / 유령들, 3편 / 잠겨있는 방, 으로 이어진 이야기들은 탐정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형식을 빌렸다는 이야기는 탐정, 쫒는 사람, 쫒기는 사람과 미스테리한 사건이 등장한다는 것뿐, 탐정소설의 심리적이거나 심각한 알리바이등까지 빌려왔다는 것은 아니다.

 

첫 작품 유리의 도시를 읽고 나서 나는 매우 실망하였고, 이런 젠장. 폴 오스터는 간혹 별루인 경우가 있어. 라고 읖조리며 빨리 읽어치워야겠다 하고 두번째 소설로 진입했다. 두번째 유령들 역시 너무나 추상적인 등장인물들의 이름 - 블루, 블랙, 화이트, 브라운 등 - 때문에 기기묘묘한 분위기를 풍기더니 3번째 잠겨있는 방의 짜임새 있는 스토리에서야 결국 작가가 이 세편의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등장인물들의 앞에 두 소설과 중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을 덮지 못하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책장을 앞뒤로 넘겨가며 퍼즐맞추기처럼 맞추게 된다.

 

이 책이 말하는《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에 대한 이야기는 보들레르의 Il me semble que je serais toujours bien laou je ne suis pas. 다른 말로 하자면 : 나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라면 언제나 행복할 것 같다. 좀더 의미에 맞게 해석한다면 : 어디든 지금 내가 있지 않은 곳이 내가 나 자신인 곳이다. 또는 아주 대담무쌍하게 옮기면 : 어디든 다른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에 대하여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며, 〈글을 쓰고 싶지 안다는 생각을 하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빌려 "글쓰기는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병이지만 이제 나는 그 병에서 회복되었다네"라고 말하고 싶은 폴 오스터 자신의 이야기를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처럼 스스로를 투영시키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폴 오스터는 분명히 쉽게 쓰는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신병이 난 것처럼 신들린 듯 한 번 펜을 잡으면 미친듯이 속도전으로 써내려가는 작가.

평생 글쓰기의 열병을 앓으면서 그 글쓰기의 병에서 회복되고 싶어하는 작가가 아닐런지. 빵굽는 타자기가 그의 초년병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과정이었다면 뉴욕 3부작은 그의 작가 중기, 인생의 화두를 극복하려는 안간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쩌면 그의 분산된 뉴욕 배경의 소설들을 통해 21세기 뉴욕의 세르반테스가 되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으시는 분들은 이 책의 맨 앞 부분부터 인물의 이름 하나 놓치지 말고 꼼꼼히 읽어보시면 알게 되실 듯.

 

폴 오스터의 힘은, 읽는 것의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는 매우 쉽고 간단한 원리에 있다.

아, 물론 첫번째 이야기인 "유리의 도시"를 읽고 빨리 읽어치워야지 했던 나의 판단은 대단한 오판이었음은 강조하지 않아도 될 듯.

 

2006.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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