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와 철학자 - 인류 정신사에 대한 광범위한 지적 탐구
장 프랑수아 르벨 외 지음, 이용철 옮김 / 이끌리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두툼한 양장본, 제목도 승려와 철학자, 단아한 표지, 인류 정신사에 대한 광범위한 지적 탐구.

이 책은 만만한 책이 아니다. 예상했듯이. 

 요즘 지나치게 좋은 종이를 쓰는 책들에 비하면 내지도 약간 거친 듯한 느낌이 들고, 자간도 아주 넓지는 않다. 만만치 않아보이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의 매력은 도전하게 하는 갈증이 있다. 뭐랄까, 갈급하게 만드는 것? 아, 뭔가를 느끼고 싶어라, 싶을 때 도전하게 하는 450여 페이지의 방대한 대담. 

 책은 장-프랑수와 르벨과 마티유 리카르라는 두 사람의 대담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티유 리카르는 과학을 전공한 프랑스의 승려이고, 장-프랑수와 르벨은 철학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승려와 철학자이고 이 두사람의 관계는 부자(父子)간이다.

철학자의 아들이 과학을 전공하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깎고 승려가 되었다는 말씀.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서 인류 정신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10일간에 걸쳐서 이어졌다는 이 대담의 내용은 19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과학연구에서 마음의 탐구로 전환한 마티유의 이야기로부터 그가 귀의한 티벳불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불교에서 이끌어낸 동양문화와 서양문화, 그 철학에 대한 이야기와 생명과 진보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방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도 그럴만 한 것이 배울만큼 배웠다는 두 사람이 만나서 게다가 철학자와 승려로 만나,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로 만나 얼마나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고 그 범위가 끝간데 없겠는가. 

 사실 이 책은 그 모호하고 지리할 정도로 범위가 넓어서 한 번 읽어서는 제대로 소화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책은 무슨 성경을 읽듯이 매일 매일 조금씩 읽고 명상하고 곱씹으면 가장 좋겠지만, 어디 그런 독서방법이 쉬운가. 이해 안가면 넘어가고 나중에 다시 들춰보고 줄도 좀 긋고 그렇게 읽는 것 뿐. 

책을 읽으면서 약간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출간하여 대단한 반향을 일으킬 만한 소재가 아니다 싶었더니 이미 IMF 전에 번역이 끝났으나 그 여파로 인해 1999년에 출간이 되었었고, 그 전에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초베스트셀러였다는 역자의 이야기가 붙어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책은 유럽이나 서구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동양이나 티벳불교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증폭시킬 수 있는 기폭제의 역할을 충분히 하며, 반중국정부의 역할과 동시에 티벳불교에 대한 환상도 심어줄 수 있는, 말하자면 서구사회에서는 일종의 티벳불교입문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만한 책이다. 그런 이유로 사실 한국사회에서는 대단한 관심을 끌지 못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중국 유학시절 방학 때 귀가를 준비하던 학생들 중 유럽아이들은 시장에 가서 1위안 짜리 젓가락 20짝를 사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선물하고 좋은 소리 듣는다 했지만, 한국아이들은 사실 사 갈 물건이 없었던 것처럼. - '후져빠진 중국젓가락 뭐하러 사왔노' 라는 타박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던 것이다. -

티벳불교에 대한 환상은 접고라도,

책 중간중간에 펼쳐져 있는 명상을 할 만한 작은 사진과 작은 문구들이 자꾸 리틀티벳이라는 장소에서 그들을 만났던 생각과 만다라를 돌리며 오체투지를 하던 온 몸 바쳐 신앙을 지키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해서 갈급증을 해결할 줄 알았던 책이 더 나를 갈급하게 했다고나 할까. 

 말하자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입장은 이런 것일 게다.
 
'이세상의 온갖 분규에 덜 개입할수록, 나와는 상관없이 인간들의 광기가 난무하도록 내버려둘수록, 나는 나를 어지럽힐 위험이 있는 고난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통속적인 표현을 쓰자면 성공적으로 내 차는 옆으로 치워둔 셈이다.'
혹은
'아니다, 우리는 현실을 변화시키고 개선할 수 있으며, 현실에 작용을 가할 수 있다. 따라서 철학의 목적은 어떠한 객관적 상황에도 가담하지 않은 채 우리의 사유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정치를 통하여 그 객관적인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장-프랑수와는 이 두 가지 입장을 결합시키고자 한 것이 플라톤이었다고 말했는데, 나에게는 이 두가지 입장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나 결합하거나 중화하거나 하는 것이 이 책이 남겨놓은 화두일 것이다.
동물학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어차피 큰 동물이 작은 동물을 잡아먹지 않느냐 하는 자연의 질서에 대해서는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이 두 부자는 주로 그런 이야기들을 장장 470여페이지에 걸쳐 나누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지만 여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 누군가 묻는다면 글쎄,..하고 얼버무릴 문제들, 그 모든 것이 바로 철학이고, 그게 바로 삶을 꾸려가는 방법일 것이다.
 
쉽지 않은 책이지만, 가치있는 도서를 만났다고나 할까.
먼지묵은 헌책방에서 먼지를 탈탈 털어내어 가방 깊숙이 담아 사들고 온 그런 느낌이다.
 
※ 책 보내주신 이대희님 감사드립니다. ^^ 너무 잘 읽었어요.

2006.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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