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캘린더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서점을 지나다가 봤던 책.

임신 캘린더라니. 임신에 대한 캘린더인가 ? 실용서로 잠시 착각할 뻔 했던 이 책은 실용서가 아닌 일본 작가 오가와 요코의 소설이다. 오가와 요코는 임신 캘린더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임신 캘린더는 동생의 친구가 외대 도서관에서 빌려다 준 책인데, 동생의 처지와 비슷한 설정이 아닐까 싶어서 추천을 했다나. 읽기야 내가 먼저 읽었지만.

임신 캘린더의 화자는 형부와 언니와 같이 살고 있는 처제의 이야기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언니와 함께 살던 주인공은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형부라는 사람이 집안식구로 늘어났고 그리고 결국 언니는 임신을 하게 되는데, 언니의 임신 기간을 지켜보는 동생의 담담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다들, 임신을 하면 "축하"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축하"의 뜻을 사전으로 찾아본다.

그리고 귀중한 생명, 사랑하는 아가, 태명을 짓고 매일 매일 좋은 생각만 하고 하늘의 축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는 것이 우리의 통념이다. 그렇게 뱃속에 들은 모든 태아들이 소중하다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인권들의 무시는 모두 어디서 기원하는가 의심스러울 만큼.

임산부로 지난 8개월을 보낸 나는 (임신인 줄 알게 되는 것은 대부분 2개월차이므로, 그 전엔 임산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다) 각종 임산부를 괴롭히는 루머와 구설에 시달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임산부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화 하는 것만큼 의미있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임신을 하면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수두룩하게 떠든다. 대부분의 것들은 근거없는 것들이다. 그런 근거없는 조심해야 할 덕목들은 임산부를 구속하고 괴롭힌다. 이미 동물의 씨를 잉태하여 동물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는 한 사람에게 동물의 본성을 벗어나 성인군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어쩌면 태아는 중요하고 산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외치는 듯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 소설이 맘에 드는 이유는, 세상이 말하는 잣대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동생은 언니의 임신이 거북스럽고, 언니 뱃속에서 언니를 괴롭히는 태아가 별로 사랑스럽지 않다. 그건 그저 하나의 수정란, 유정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존중의 사상이 결여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생명이 어디서 기원하는지에 명확한 통찰을 간과한 판단일 것이다. 

 그 외에 같이 수록된 두 편의 소설은 상상력과 반전, 그리고 절묘한 묘사들이 압권이다.

아주 오랜만에 대해보는 잘 쓴 단편소설이며 작가였으며 그리고 그녀의 문체가 맘에 들었다.

건조하고, 세상을 외면하는 듯 하면서, 근본적인 것에 탐닉하는 엑조틱함이라고나 할까. 

 "애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끊고서도 여전히 수화기를 들고 있는 손바닥으로 한밤중이 지나가는 소리.. "라는 묘사같은 것들이 오랜만에 수사적인 문장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다. 

 단 세편의 소설이 실린 오가와 요코의 단편소설집 임신 캘린더는, 재미있다. 그리고 아주 바짝 마른 신선함이 있다. 말린 생선에서 나는 비린내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2006.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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