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박완서 할머니의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구수하고 솔직하고 담담하고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그녀가 그려내는 이야기들은 항상 전쟁의 상처와 맞닿아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평화롭다. 아무리 치열한 전쟁통을 겪었어도, 이미 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일까.

 

-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 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 이야기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아마 스스로 주책맞게 이 나이에 옛남자 - 첫사랑 - 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고 스스로 말하며 웃을 것만 같지만, 꼭 옛남자, 첫사랑이라기 보다, 돌이켜보면 가슴이 뜨끈해지는 그런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인연이 있는가,

돌아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인연, 기억해보면 한숨이 나오면서 먼산을 바라보게 되는 그런 인연. 대부분 연민이나 애정에서 시작해서 안스러움과 괜한 미안함으로 끝나는 그런 연상작용의 인연. 그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 생활이 너무 평화로와서, 그토록 치열하게 살던 그토록 힘겨워하던 그 사람의 눈빛이나 축 쳐진 어깨나 편편하던 엉덩이따위가 생각이 나서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하면서 아마 잘 살꺼라고 자위하며 먼산 바라보던 눈을 거두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고무장갑을 끼고 설겆이거리를 찾게 되는 그런 기억속의 사람.

 

그 남자네 집은, 그 남자가 살던 - 별로 대단하게 잘난 것도 없고, 별로 훌륭하지도 않던 그 남자 - 그 집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해서 그 남자를 만났던 그 남자를 알게 됬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의 번질거리던 청춘부터 그의 부음을 듣는 순간까지의 이야기들이 꼭 20여년간 자라오면서 엄마에게 드문드문 듣던 엄마의 옛 이야기들의 짜집기처럼 그렇게 펼쳐진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이야기들은 언제나 악다구니다. 그러나 뜨뜻한 피같은 무언가가 있다. 이제는 모두 지나가버린 이야기,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그 남자의 돈암동집처럼, 박완서의 글에만 남아있는 전쟁후의 평화가, 한 편의 소설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2006.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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