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소장본 - 전2권 - 칼의 노래 + 칼의 노래 자료집 : 김훈을 읽다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이순신,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 김훈 장편소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 문장으로 칼의 노래는 시작한다.

나는 페이지를 넘기다 말고 다시 곱씹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그리고 설겆이를 마치고 손을 닦으며 다시 씹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잠이 들면서도 다시 씹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라고..

 

김 훈은 언론사 기자로 살다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 등단한 작가다.

그의 등단은 한국 소설계에 바람을 일으켰고 그의 소설은 명쾌하고 또렷하고 강인해서 좋아한다. 그리고 그의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감정이입, 등장인물에 대한 무서울만큼 완벽한 몰입이었다. 화장이 그랬고, 언니의 폐경이 그랬고, 개가 그랬다. 그리고 칼의 노래가 그렇다.

 

평론가의 말대로, 칼의 노래가 이광수의 원효대사보다 우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훈은 이순신의 영웅적인 요소를 닮으려 하지 않고 인간적 이순신이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훈이 그린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남자다. 전쟁터의 장수이며, 남자이고, 아들을 잃은 비참한 아비이며, 고뇌하는 지도자이다. 국민적 영웅, 임금이 보채던 영웅이라기 보다 한 남자였다. 그러나 매우 멋지고 매우 슬픈. 고뇌하는 남자.

 

소설은 자간이 넓고 호흡이 무겁다. 한 이야기들이 5쪽 내지 10쪽 정도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어 읽고 잠시 한 숨을 쉬게 된다. 그리고 그의 호흡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소설속 이순신의 기억은 냄새에 지배당한다. 죽은 아들의 젖비린내, 품었던 여인의 오래도록 뒷물을 하지 않은 날비린내, 그리고 전쟁터에서의 피비린내. 온갖 비린내가 가득한 전쟁터에서 무우짱아찌 등의 먹을 것이 등장하고 잘라온 적의 머리에는 소금을 더 치라는 얘기들이 난무한다.

 

난중일기를 읽지 않았다. 그러나, 이 글은 난중일기를 긴 호흡으로 읽는 느낌이었다. 작가건 우건 힘든 것은 작중 인물에 대한 몰입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김훈은 그 겨울밤들이 춥고 무서워다고 했다. 이순신의 죽음이 그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갑옷을 벗은 몸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서늘함은 눈물겨웠다"던 그의 죽음이 내내 작가를 엄습했을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 살고 싶었다"던 이순신, 그는 임진왜란의 호국영웅이라기 보다 세상앞에 혼자 싸운 신념의 남자였다. 싸우고 싶었고 싸워야 했기 때문에 싸웠던 남자, 그 남자의 칼, 그리고 취하고 울고 강산을 물들이던 칼의 노래. 두려울만큼 처절했던 그 모든 냄새속에서, 김훈의 문장으로 호흡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

 

2006.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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