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의 책상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렇다.

배수아에게 꽂힌 것이 틀림없다.

이러다 그녀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독일문학이나 프랑스 문학같은 유럽문학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는 지금 독일에 있고 그녀의 지적 허영심은 - 나같은 독자가 매우 공감할만한 - 지리한 유럽문학의 끝자락에 닿아있다.

 

배수아.

뭐라고 그럴까.

잘 쓴다 말이다..

부드러운 이야기꾼인 박완서 할머니와 달리,

슬픔을 끌어올려서 토악질하게 만들었던 신경숙과 달리.

왠지 자꾸 잊혀지는 은희경과 달리..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2003년 12월에 출간되었고, 어떤 독자가 말하듯 그녀의 "난해한 장편"이다. - 배수아의 단편은 감각적이고 장편은 난해하다는 일반독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 이 책의 의도는 작가가 말하듯이,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가능하다면 다른 것을 쓰되, 사람들이 그것을 소설이라도 불러도 아무래도 상관없는 그런 형태를 원했다. 사람들이 이것을 소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가 일단은 소설가이기 때문이고 대개 소설을 썼기 때문이고 또한 이것의 공식적인 타이틀이 소설이라고 불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의도를 알고 읽으면 덜 난해할 것이고, "음악이 곧 언어이자 문학이며 언어가 곧 침묵인 그 세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배수아의 이야기들을 조근조근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지난 번에 읽은 일요일 스키야키식당과는 거리가 있고, 오히려 당나귀들과 조금 닿아있다. 혼자 사색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사교가 필요하지 않았던 시절에 대한 공감과, 별다른 소일거리 없이 별다른 고민거리 없이 별다른 수입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한 존재를 알고 바라보고 영혼을 바쳐 읽어야만 했던 그런 낯선 모든 리비도 가득한 존재들에 대해서 (대중이 아닌), 나르시시즘 가득한 몇 명에 존재들을 읽어내려 했던 그 시절의 공감에 대해서, 느낄 사람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관념적인 언어들의 나열,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널부러진 책상을 훔쳐보는 것같은, 소설의 형태를 빌린 자유로운 글쓰기의 향연, 내가 그녀를 자꾸 찾는 것은 어쩌면 그녀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먼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거 봐봐..이렇게 써도 되는거야" 라고 속삭이며.

 

2005.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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