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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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배수아 지음 / 문학과 지성사
 

이런 거다.

당나귀들에서 보였던 배수아의 기질을 적나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소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종래의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함과 현실의 잔인함. 리얼리즘의 극단적 표현, 과장법으로 더 깊게 다가오는 현실들. 그 현실은 모두 가난과 빈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일요일 스키야끼 식당은 2003년 36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배수아 자신의 이야기에 따르면 모 잡지사에 보냈다가 잡지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첫번째 에피소드를 가지고 약 3년간 띄엄띄엄 집필을 해 냈다고 했다.

그녀는 그냥 뭐 썼어요..라고 말했지만 읽는 사람이 보기엔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면 극중 인터뷰어를 맡았던 성도만큼이나 벗어나기 힘든 스스로에 고찰이 더 필요했을 것만 같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과장법으로 일관된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은 돈경숙, 마, 말리, 부혜린등 쉽게 대하기 힘든 이름들을 가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빈곤에 절어있다. 그건 물리적으로 빈곤하다 현실적으로 가난하다라는 것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빈곤에 대한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나 가난에 대한 증오에 몸부림친다거나 빈곤과 가난에 대한 컴플렉스로 둘러쌓여있거나 하는 것들이다.

 

극중 눈에 띄는 한 주인공은 가난할 자유를 외친다. 그의 모습은 스스로 가난하기를 선택하는 것조차 죄악이 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조명한다.

 

전후 잘살아보세를 지나면서 한국에서는 코리안 드림과도 같은, 열심히 일하면 잘 먹고 살 수 있으며 열심히 공부한 자는 신분상승을 꾀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영원한 부를 축적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였으며 일하지 않는다 먹지도 말라는 기독교적 윤리관이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기독교적인 나라였으며 과연 스스로 가난하길 원하는 자들은 가난할 권리도 없는 폭력적인 국가로 변모했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한 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왜 일하지 않는가,

왜 좀 더 열심히 벌지 않는가가 이제는 죄악이 되는 사회인 것은 우리 모두 빈곤과 가난에 질리고 지쳐 감추려고만 하는 컴플렉스에 둘러 쌓여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단 한 번도 가난해보지 않았던 사람도,

단 한 번도 부유해보지 않았던 사람도 모두 빈곤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물리적인 가난이 아니라 그 가난이 동반하는 무지함과 생활의 변화, 사회의 냉대와 차별, 타인들의 시선일 것이다.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사회가 될까 걱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구시대였다. 우리는 이미 그런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접어들었으며 지금 우리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가난이다. 서울시에 1만여명의 빈곤층이 존재한다는 어떤 발표를 듣고 "나는 아니겠지"라거나 "혹시 내가 포함되는가"를 고민하는 그 두 가지 모습 모두가 가난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현대인의 자화상은 아닌지.

 

도대체 얼마를 가져야 부유한 것이고 얼마를 가지지 못해야 가난한 것인지도 정확하게 모르겠는게 이 혼란한 사회라면, 가난할 자유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부자인 것은 아닌지.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 가면 그들을 만나 이야기 할 수 있을까.

 

2005.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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