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 하서명작선 82 하서명작선 10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강명희 옮김 / 하서출판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읽은 사르트르의 구토는,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에 집에 들여온 책이다.
아마 수년전, 영풍문고에서 특가도서 창고공개..뭐 그런 행사장에서 샀는지, 양장이 된 작은 크기의 이 책은 중앙문화사에서 펴냈고, 뒤에 영풍문고 2800원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그렇게 사놓고, 몇 년을 묵히다가 올 여름에 읽은 책이다.
두려웠다.

무식한 게 죄라고, 서양고전은 읽어본 게 별로 없다.
집에 동서문학전집이라고, 꽤 많은 집들이 월부로 들여놓는 그 고전문학선이 있는데, 엄마는 학창시절에 읽은 책을 곱게 양장된 책으로 책꽂이에 꽂아놓고 나보고도 읽어야 한다며 "토지도 안 읽은 무식한 년" 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 전집에서 한국문학 외에 내가 읽은 유일한 서양고전은 게오르규의 "25시" (짧다)와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뿐이었다.
그래서 아..좋은 고전, 사르트르의 구토와 까뮈의 이방인은 사놓고 늘 책상 어딘가에 놓아두고 약 1분간 째려보다가 마는 것이다.

여행을 가는 길이었다. 무척 무료할 것이었다. 그리고 여행중에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따분해 보이는 책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적 성숙도가 높아진 것인가, 나는 구토의 첫 구절에 매료되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을 적어 두는 것이리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일기를 쓸 것. 여러 가지 뉘앙스나, 하찮은 일들, 가령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자질구레한 일이라 해도 놓치지 말 것. 그리고 그것들을 분류할 것, 내가 이 테이블, 저 거리, 저 사람들, 나의 담배 쌈지를 어떻게 보는가를 써야만 한다. …"

그리고 여행지에서 틈나는 대로 구토를 읽고 있었다.
구역질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일기장을 보는 듯한 무료함을 달랠 수 없었던 주인공의 기록들, 그렇게 커피숖에서 식당에서 대화의 대상은 필요하나 입을 떼기가 귀찮았던 그 많은 시간의 기록들이 냉담하게 펼쳐졌고, 맘에 드는 구절은 읽고 또 읽고 하면서 18일간의 여행을 끝냈다.

그리고 돌아와서 그의 글을 여행기의 프롤로그에 적었다.

특별한 장소에서 읽어서일까, 상해로 돌아오는 40시간의 기차안에서 이틀동안 머리도 감지 못하고 읽은 구토는 책장을 덮기 아쉬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다 읽은 책의 아쉬움이었다.

우연이었을까,
기차를 타러 가는 주인공과, 그리고 기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나,

사르트르의 의식을 쫒아가는 그 필체에 나는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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