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고 금메달이 책 표지에 붙어있다.
언제였지.. 주제 사라마구가 노벨상으로 상을 받고 난 다음에 그의 "눈 먼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다음, 역시 노벨상은 장난으로 주는 건 아니구나 하고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읽게 된다.
물론 유럽문학에 집중되어 있고, 얼마나 번역이 잘 되었느냐가 노벨상 수상에 관건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가들의 작품은 새로운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아 갈 것이다.

소설은 2차대전 중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던 소년의 1년동안의 강제수용소 이야기이다. 이런 전체 줄거리를 들으면 우리는 약간의 식상함때문에 책을 고르기 망설여 질 지도 모른다.
아우슈비츠의 이야기를 앞에 놓고 어찌 식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불경스러운 죄를 지어야 하겠냐마는, 우리가 그 동안 봐 온 각종 예술장르에서 보여진 아우슈비츠의 이야기는 얼마나 잔인한 가, 독일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가, 사람이 얼마나 악독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무고하게 죽어간 유대인들은 얼마나 불쌍한가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게 비슷한 유형이라면, 임레 케르테스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과장된 일일 수도, 혹은 모든 2차대전 강제 수용소 유대인 생존작가가 커다란 문학상들을 받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이 소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 늘어놓지 않는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던 15살의 어린 소년은, 아버지가 강제노동으로 소집되어 집을 떠나고 영문도 알 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흘 째 되는 날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고 독일이 패전하는 날까지 강제 수용소에서 살다가 나온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담담하고 너무나 먼 시선으로 바라봐,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맞는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할 정도로 차분하다.
대화는 절제되어 있고, 미사여구나 수식어도 간단하고 호흡은 짧고 끊임없이 작가는 상상속의 이야기를 조근조근하고 낮은 목소리로 늘어놓고 있다.

강제수용소, 2차 대전, 아우슈비츠, 모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쌓여가던 시체의 영상이 머릿속에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대한 어색함에 앞 뒤 문장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그가 회상하는 그 시절의 이야기는 그 일이 한꺼번에 밀어닥치지 않았고, 하루 하루 한 시간 한 시간, 아니 일분과 일분, 일초와 일초처럼 차례대로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고, 그 시간과 시간의 사이에서 그와 사람들은 숨을 쉬고 걷고 일을 하고 뭔가를 먹었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기 때문에 당연하게 강제수용소의 삶을 받아들였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사회는 존재하고 인정도 존재하고, 행복과도 비슷한 감정도 느껴볼 수 있었다고 말이다.

임레 케르테스는 이 소설이후에 "좌절" 과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라는 소설로 3부작 연작을 완성하는데, 뒤의 두편은 한국에 아직 출판되었는가 알 수 없으나, 출판되었다면 이어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늘 닥치면 다 한다는 말처럼,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삶은 이어진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명제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외면하고 살아간다.
인간이라는 것과, 그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는 늘 모든 것이 끔찍함의 연속인데, 우리는 굶고 헐벗지 않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깊이 있게 반성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이 하기 마련이다.
작가는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말한다.

"사람들이 완전히 자연스럽게 살아가지 못하는 부조리는 없다. 이제 내가 가게 될 길위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악과 '끔찍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내게는 이런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도 말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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