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범일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 돌베개 / 2002년 8월
평점 :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중에 느낌표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다.
물론 책 읽는 건 취미라고 적으면 안될만큼 필수적인 일이라고 하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런가..
한 달에 한권은 커녕 1년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한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 느낌표라는 프로에서 추천하는 책책책이라는 코너는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니까.
그 추천도서중엔, 가끔 너무 쉬운 책도 있고, 어찌보면 너무 어려운 책들도 있는데, 백범일지는 느낌표 책책책의 평균에서 약간 위쪽에 자리잡는 책이 아닐까 한다.
물론, 백범일지는 초등학교때 읽어야 할 필독서중의 하나지만, 돌베게에서 펴낸 이 백범일지는 초등학생이 읽기엔 약간 어려운 문체를 가지고 있다.
한자를 주로 쓰던 그 당시의 백범의 일기를 옛말투로 고쳐 주해를 한 내용인지라, 어려운 문장들도, 낯선 단어들도 종종 등장하니까 말이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가보면, 김구선생의 집무실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다. 그 때가 김구선생의 인생중 가장 편안한 시절이었다는 걸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고, 그의 상해시절 이야기를 읽으면서 할로겐 조명이 뜨겁던 그 단촐한 집무실을 떠올렸다.
어린 두 아들에게 당신의 기록을 남겨주기 위해 적기 시작했다는 이 글은 그야말로 한 개인의 이야기라, 날짜의 오류는 종종 있을 수 있으나, 그 생각과 사상만큼은 정확하게 짚어 낼 수 있었다고나 할까..
김구선생이 위대한 인물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그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조국의 밝은 미래가 보장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또 어디에 기준하는가..
백범일지를 통해 내가 만난 김구 선생은, 우선 존경스러울만큼 겸손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볍지 않은 무게감이라고나 할까.. 깊이 고민하는 리더의 자세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과거제도의 폐해를 발견하고 공부를 때려친다거나, 자신의 관상에 좌절한다거나, 탈옥을 한다거나 하는 내가 예상치 못한 행보, 그리고 측은지심을 깊이 가지고 있는 선량한 성인의 자세도 있겠지만,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주도한 부분에선, 이건 어찌 보면 폭탄테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아는 선배 오빠가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 폭탄터뜨리고 하는 것은 우리의 도시락 폭탄 의거와 다를 바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는데, 그래 어쩌면 우리의 도시락 폭탄역시 최후에 밀린 어쩔 수 없는 살상을 기대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가 의거라 부르는 그 모든 역사를 테러라고 부른다면 그것이 불순한 것일까..
책의 말미에는 임시정부내의 공산당 조직에 대한 김구선생의 견해도 엿볼 수 있다. 사상이나 이념이 문제가 되기도 전에 조직내의 광적인 주의에 대한 신봉에 진절머리 난 듯한 개인적 의견도 읽어내릴 수 있었다.
글쎄..문체의 탓이었을까..나는 그다지 큰 감동은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이건 백범김구선생이 쓴 자서전이라 그 자신을 큰 인물로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험난하게 살았던 사람, 하나의 신념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의 고단한 삶에 조용히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2003.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