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혁명 - 리저허우와 류짜이푸의 대화, 위즈북 시리즈 1
리저허우 외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로드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리저허우(澤厚) 류짜이푸(再復) 지음 / 김태성 옮김 / 북로드 펴냄 

가끔 중국의 금서를 손에 넣고 읽을 때 나는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이번에 읽은 고별혁명이라는 책은 상해에 와 있는 한 친구가 빌려준 책인데, 원래 책을 빌려읽지 않는 이상한 집착(읽은 책도 꼭 사고 마는..ㅡ.ㅡ)에도 불구하고, 중국금서라는 말에 혹해서 며칠동안 집중해서 읽었다. 
이 책은 절대 만만한 내용도 만만한 길이도 아니다. 책은 500여페이지의 코팅지로(종이에 집착한다..ㅡ.ㅡ)이루어져 있으며 나온지 꽤 된 책이지만 홍콩과 대만에서는 번역이 되었으나 중국의 체제비판이 주로 이루어져 있어 중국에서는 출판되지 않은 책이다. 

저자인 리저허우는 1930년생으로 북경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프랑스 국제철학 아카데미의 원사로 있는, 중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지식인이며, 류짜이푸역시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에서 객좌교수를 지내고 있으며 일본에서 열린 루쉰 탄생100주년기념 학술대회에서 초청은 받았지만 중국작가들의 반대로 논문을 발표하지도 못한 이 역시 중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지식인이다. 

이 두 지식인이 만나 대담 형태로 이끌어나간 이 책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현체제를 인정하지만 혁명보다는 개량이 중요하다는 일관된 의견을 토론해나간다. 

류짜이푸의 프롤로그와 리저허우의 에필로그로 테두리를 감싸고 제 1부 역사의 회고, 제 2부 역사의 인물, 제 3부 이념이 지배한 세기, 제 4부 혁명이 아닌 개량을 위한 철학, 제 5부 정치가 아닌 사람을 위한 문학으로 구성된 이 책은 주제에 걸맞는 최고지식분자(중국에선 지식인을 지식분자-지시펀쯔라 말한다)들의 냉철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두 학자의 깊이있는 사색과 배경지식으로 인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얼마나 무식한가..를 철저히 깨닫게 되는 좌절감속에, 청말이후 중국의 신중국으로 향한 신해혁명부터 그시절의 사상가였던 쑨원부터 현대작가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낱낱이 분석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두 학자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완벽한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쑨원의 인간성은 높이 사지만 밀어부치는 힘이 부족했다는 비판부터 중국에서 금기시되는 마오쩌둥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당연히 출판금지의 소지가 충분하다)

중국의 근대사를 돌아보면 내 부족한 견해로도 피비린내 나는 정풍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거쳐 얼마나 많은 손실이 있었는지, 이어지는 1989년 6월 4일의 천안문사태로 인해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치유받을 수 없는 역사앞에 부끄러운 대죄악을 저지른 이 중국이라는 광대한 나라, 장구한 역사의 일부분인 20세기 100년동안 이들이 잃은 것이 얼마나 많은 지에 대해서 철저히 파헤치고 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이 두 사람이 체제를 부정하거나 갈아엎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사람의 주제는 그 피비린내 나는 혁명이 통쾌하긴 하겠지만 중국역사의 혁명이 가져다 준 것은 모든 문학과 예술마저 정치의 부속품이 되었던 불쾌한 과거이니만큼 이제 중국은 혁명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개량(개혁)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중국의 공산당은 현재 중국이라는 국가에 필요한 존재이다. 민주화에 이르는 과정을 중국은 왜 한국처럼 끊임없는 시위로 이루지 못하는 가를 설득할 수 없는 나라다. 13억에 이르는 인구와 세계에서 3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이 나라에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움직임은 중국전체를 파멸로 이끌고 갈 수 있을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중국은 통일된 체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특수한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중국인 두 학자는 그럼 21세기에 다가서는 중국에게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애정어린 과거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상식이 전무한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힘든, 기본적으로 근대사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 문화대혁명과 천안문사태가 중국에 있었는가.. 정도는 알아야 하고, 루쉰이 중국에서 어떤 의미의 인물인가에 대한 작은 상식이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현대 중국이 나아갈바를 대충 가늠해볼 수 있는 이 책은 중문과 학생이나, 중국에 관심있는 사람들, 또는 중국을 이해하면서 한국의 현상황을 반영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필독을 권하고 싶다. 그렇다고 겁을 먹을 필요는 없는 것이 책 곳곳에 중국혁명사에 대한 상식이 작은 상자에 담겨져 있어 중국근대사를 짚어볼 수 있고, 뒷부분에 마련된 색인도 상당히 잘 꾸려져 있다. 늘 외국서적을 소개하면 번역에 대한 트집을 잡는 게 주특기이지만 이 책은 번역도 상당히 잘 되어있다. 

어느 리뷰에서는 제목을 "고별혁명"이라고 한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했는데, 그 이유는 중국어의 어순을 생각한다면 이 "고별혁명"이라는 뜻은 중국어로는 "혁명과의 고별"이라는 뜻인데, 한국인들은 "고별하는 혁명" - 고별이 혁명을 수식하는- 으로 오해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뭐.. 내 생각엔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뜻이 점철되어 아리까리 해지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간만에 만난 좋은 책, 이들이 조국에서 환영받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책을 빌려준 경현이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 ^ 

2003. 5. 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