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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지음 /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펴냄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만났을 때는 스물무렵이었다. 그 때 읽은 "상실의 시대"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때 그 독특한 문체에 매료되었었고,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를 다시 기억하고자 이번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3년의 핀볼"이 같이 담겨있는 문학사상사의 책이고, 그리고 "댄스 댄스 댄스"이다.
하루키 문학으로 일본문학을 처음 만난 나로서는 "설국"을 읽었을 때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수상작임에도 진한 일본적 문화색채에 "내가 알던 일본문학"이 이런 것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하루키 문학엔 진한 일본적 색채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키는 미국문학에 영향을 많이 받아 독특한 문체를 자랑하기로 유명하듯이, 그의 문학엔 일본적 요소가 물론 있으나 상식이 필요한 문화적 이해를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의 세계에 부담없이 일본컴플렉스를 벗어버리고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편의 소설은 하루키의 초기 소설의 첫번째, 두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일관된 통일성을 가진 그의 작품들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1973년의 핀볼" 이후 "양을 쫓는 모험" 과 "댄스 댄스 댄스"로 이어진다고 한다. 두 편의 소설이 한 책에 묶여있음에도 그다지 다른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같은 배경과 같은 주인공때문이다.
"나"와 "쥐" 그리고 중국인 바텐더 "J"가 등장하는 두 편의 소설은 젊은 날 상실감에 깊은 뿌리를 두고 진행된다. 새끼 손가락이 없는 여인이나, 쌍둥이 자매나, 배전반의 죽음, 핀볼기계를 찾아 헤메는 나, 기억에 있는 지 없는지 몽롱한 옛 애인들, 있으나 없으나 그러나 쉽게 이별할 수 없는 인물 J, 부자임이 싫은 "쥐"라는 친구..
하루키의 문체가 늘 그러하듯이 이 두 편의 소설은 행간에 모두 "상실감"이라는 단어가 백번씩 새겨져 있어 1000분의 1초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는 광고처럼 깊이 뿌리박혀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작가는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이라는 단호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 흡인력을 내뿜고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작가 "하트필드"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자신의 글쓰기를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처녀작처럼 보이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리 길지 않고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와 경쾌한 스토리 전개로 술술술 읽히는 반면 그보다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1973년의 핀볼"은 전작보다는 읽기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949년생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깊은 상실감의 우물속에서 늘 청춘을 노래하기 때문에 그의 나이를 느낄 수 없게 하지만,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그야말로 "쿨"한 소설을 쓴 대작가의 초기작을 읽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었다.
상실감이라고 백번을 외치는 하루키에게도 앞날은 있었다.
"말이 지치고 검이 부러지고 갑옷이 녹슬었을 때, 강아지풀이 무성한 풀밭에 누워서 조용히 바람소리를 듣자. 그리고 저수지의 바닥이든 양계장의 냉동 창고든 어디든지 좋다. 내가 가야할 길을 가자.
나에게 있어서 이 한때의 에필로그는 비에 노출된 빨래 말리는 곳처럼 매우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 그런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앞날도 역시 상실감의 연속일 뿐이고, 상실이라는 습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2003.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