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국가 - 미국의 세계 지배와 힘의 논리
노암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 두레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노암 촘스키 지음 / 장영준 옮김 / 두레 펴냄 

살아있는 미국의 지성, 노암 촘스키. 고등학교 문법 교과서나 국어 교과서에 언어학자 소쉬르의 이름 아랫줄에 적혀있던 이 사람 노암 촘스키는 그 획기적인 언어연구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그의 빛나는 두뇌를 언어학에만 투자하지 않고, 냉철한 지성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조국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촘스키를 가장 존경한다는 영어선생님이 있었다. 그 분의 말을 듣고 촘스키에 관련된 책은 몇 권 읽었지만 정작 촘스키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나는 이 책으로 그를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요즘 때가 때이니 만큼 이 불량스러운 깡패국가 미국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불량국가를 손에 쥐고 두 주를 보냈다. 책은 오래 읽을 수록 그 감이 떨어져 감동이 덜하게 마련이라 빨리 읽어보려고 했지만, 이 책은 그렇게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은 절대 아닌 것 같다. 

번역이 어설픈 것은 아닌데, 뭔가 힘들게 넘어가는 문장이 그랬고, 다시 한 번 그 문장을 곱씹어보며 번역탓을 해보려고 했으니 번역은 전혀 이상한 면을 발견할 수 없는데도, 책을 쉽게 읽어나갈 수 없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자료들 때문이었을까.. 촘스키는 미국의 불량스러움을 하나 하나 꼼꼼히 따져서 까발리고 있는데, 그 자료의 방대함과 나의 무지함이 맞물려져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나는 멍하고 검은 글자만 바라보게 되었다. 모든 촛점이 흐려지는 듯한 그런 기분으로 결국 이 책을 다 읽어나갔다. 

이유는 요즘 내가 너무나 읽기 쉬운 책들만 골라읽은 덕이었다. 책이란 한 번에 쉽게 읽혀, 야.. 이건 나도 쓰겠다 하는 부류부터, 읽고 나서 책을 곱게 높은 곳에 올려놓고 절이라도 한 번 해야겠다는 책이 있는데, 이 촘스키의 불량국가의 후자에 속한다. 

사회과학, 또는 인문과학분야에서 칼럼의 성격을 띤 이런 책들은 대부분 그들의 빛나는 지성에 주눅이 들게 마련이고, 그러면서 작가의 주장에 휙~하고 휘말려 들어가는데, 이 불량국가의 촘스키는(그리고 역자는) 이게 맞아~! 라고 윽박지르기 보다는 어때? 어때? 들어봐.. 듣기 싫으면 말어~! 하는 식의 먼 거리에서 조근조근 모든 문장과 언어를 잘근잘근 씹어가며 미국의 행패를 그야말로 디벼보고 있는 것이었다. 

제목 그대로 촘스키는 미국이라는 자신의 조국에 대해 불량국가로 규정짓겠다는 바탕을 깔고 불량국가 미국이 지목했던 각종 불량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적나라 하게 말하고 있다. 이정도면 사회안전보장법이나, 국가모독죄에 해당되는 게 아닐까 하는 나의 국가적 컴플렉스는 그나마 그 나라가 살아있는 이유는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그리고 출판할 수 있는 토양에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책과 원고지라는 코너의 머릿말처럼 올려놓은 글에 책을 읽는 사람이란 까다로운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의미하고, 이 책들이 까다롭다는 것은 적은 지식과 지성을 지녀도 쉽게 얻을 수가 있어서 일반인들이 쉽사리 자만에 빠질 만한 그런 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적어놓았는데, 간만에 만나는 까다로운 책으로 나는 다시 한 번 자멸감에 빠졌고 그리고 또 그로 인해 에너지를 얻었다. 

이 책이 읽기 어려운 이유는 역자의 한마디로 깔끔하게 해소되었다. 그 원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남을 단죄하는 것은 쉽다. 누군가에 대해서 '나쁘다'고 한마디 해버리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논리가 부족할 때, 증거가 부족할 때, 그것처럼 쉬운 것은 없다. ..... 촘스키의 책은 그러한 감정 형용사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책이 널리 읽히는 이유다. 그의 글은 냉철하고 차분하고, 오로지 사실과 증거들만을 기반으로 한다. ....... 촘스키의 글을 번역하는 데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의 독특한 글쓰기는 정치비평은 물론 언어학계에서도 이미 악명이 높다. 다시는 번역을 하지 않으리라는 필자의 결심이 마지막에 찍힐 점 하나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침표는 사람에게 새 출발의 희망을 부추긴다 - 로 흔들리는 것 같아 심히 두렵다....."

쉽게 읽혀지지 않는 냉철한 지성. 안다는 것, 그리고 싸운다는 것, 빛나는 이성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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