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3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장경룡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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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장경룡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최근들어 이 책의 제목을 들으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싶은 분들이 적지 않을리라 싶다. 

한국에서 현재 활동중인 일본인 탤런트 유민이, 일본에서 동명의 영화에 출연했던 것이 시비가 붙어 포르노 배우니 뭐니 하는 발언들을 서슴치 않았던 네티즌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글쎄.. 유민이 출연했다는 그 드라마인가 영화인가는 보지 못했지만, 좌우당간 그 원작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원작 소설인 설국, 이 작품이다. 

그런 네티즌들의 이야기를 보고 무지하다고 혀를 끌끌 차고 있었을 사람들도 있었을꺼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니까.. 그것도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받은 노벨문학상의 수상작이다. 아시아에서 배출된 노벨문학상은, 일본에서 두 편, 타고르 시인의 기탄잘리, 그리고 중국작가 가오싱젠인데, 척박한 노벨문학상의 수상지인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수상한 작품이라 하니, 참.. 꽤나 유명한 명작이겠거니 싶다.. 물론 나도 이 소설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전이긴 하지만.. 

핑계를 대자면 말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ㅡ,.ㅡ;)일본문학에 얼마나 무지했느냐고 변명하고 싶다. 뿌리깊은 반일감정에 휩싸여 매니아층만 구성되어 있던 일본문학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무라카미 류, 또는 요시모토 바나나..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등.. 인기있는 일부 작가뿐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이미 거의 절판된 상황이고, 일본 문학중에 손꼽을 만한 명작은 분명히 더 있을 것인데도, 나는 소세키의 이름도 재작년에 처음 알았다. (소세키는 중국의 루쉰과 감히 비교될 만한 일본근대작가이다) 어쨌거나 같은 동아시아에 태어난 이상 한국소설만 편식하지 말고 일본소설과 중국소설도 두루 두루 읽어보자고 맘을 먹은 바, 그럼 가장 유명한 작품부터 읽어야겠기에 그마나 얇팍해서 잡아들은 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 "설국"이다. 

설국은 말 그대로 눈밖에 보이는 게 없는 어느 시골의 온천장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한 남자가 등장하고, 두 여자가 등장한다. 한 여자는 사라지는 눈과도 같은 존재로 남아있고, 한 여자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게이샤이다. 두 여자를 바라보며 눈이 가득한 온천장에서 겨울을 보내는 도쿄 남자 시마무라는 그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소설은 내내 지루할만큼 잔잔하고 섬세하고, 그리고 아름답다. 

이게 과연 번역체인가 싶을 정도로 그 문체가 잘 살아있는데, 번역을 맡은 장경룡씨는 시인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 책엔 설국 외에도 "이즈의 무희"와 "금수"라는 단편소설이 두 편 더 실려있는데, 12년동안 다듬고 고쳐서 한 편으로 완성했다는 설국보다는 훨씬 읽기 편하다. 이즈의 무희는 일종의 자전적 성격의 따뜻한 이야기이고, "금수"는 인간을 믿지 못해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인데, "금수"를 제외한 두편은 일본의 향토적인 풍미가 가득해서 예전 같으면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별다른 환영을 받지 못했겠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동아시아의 작품은, 그 아시아적 풍취를 지니고 있어야 좀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설국에서 풍기는 눈내리는 일본의 시골 온천장의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 장소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온천장 뜨거운 수증기처럼 모락모락 솟아오르니 말이다. 

사람들은 늘 고전에서 배우라고 말한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나로서는 일본문학을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시작했으면 "소세키"에서 끝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0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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