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전2권 세트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Rosso - 에쿠니 가오리 지음 / 김난주 옮김 
Blu - 츠지 히토나리 지음 / 양억관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 

사진에 관한 개인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다가 작년 여름즈음부터 느낀 것은 상당히 많은 분들이 이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속에 나온 일부분들을 일일이 타자를 쳐서 옮겨놓은 것도 얼핏 얼핏 읽을 수 있었다. 피렌체의 두오모.. ? 라는 부분들.. 뭔가 "지리멸렬"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책은 두 권으로 되어있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한 권은 Rosso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는 태양같은 중심잡힌 주황색을 띄고 있고, 한 권은 Blu라는 이름으로 채도와 명도가 선명한 푸른 빛을 띄고 있다. 주황색의 Rosso는 여자작가가 쓰고, 두 아이의 엄마가가 번역을 했고, 푸른 빛의 Blu는 남자 작가가 쓰고, Rosso 번역가의 남편이 했다. 

이야기는 헤어진 두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오랫동안의 이야기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아오이(靑),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쥰세이.. 나는 일어로 쥰세이가 무슨 뜻인지 너무 궁금해졌고, 쥰세이는 혹시 붉은 빛의 색깔이름이 아닐까 했다. 

무슨 이유일까.. 나는 Rosso를 먼저 읽었는데, Rosso를 읽으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문체가 짜증스러웠고, 그 짜증스러운 문체를 가진 책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났다. 인내심을 가지고 Rosso를 다 읽고 다음 날이 되어 Blu를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책 커버에 써 있는대로 두 권을 번갈아 가면서 읽을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얌전히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서공간은 버스나 지하철인데, 두 권을 번갈아 가면서 읽을만한 여력까지는 없다. 어찌보면 나는 책을 무척이나 홀대하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blu는 Rosso에서 실망한 나를 만족시켜줬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이건 어쩌면 의도된 문체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에쿠니 가오리가 적은 Rosso는 아오이의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벌레가 되어버린 침묵과 냉정의 여자 아오이 말이다. 작가의 문체는 어쩌면 그녀의 삶처럼 흔들흔들거렸고, Blu는 열정을 지녔던 남자 쥰세이의 이야기처럼 냉철한 지식이 번뜩이는 뜨거움으로 가득찼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 취향인 것이다. 나는 Rosso와 같은 문체를 무척 싫어한다. 더군다나, 그녀의 생각인지, 작가의 생각인지 헷갈리는 이 소설에서 나타난 사람에 대한 묘사,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머리모양을 했다는 마음을 닫아버리게 만드는 어떤 영화의 한장면 같이 수식도 비유도 부족한 그런 묘사..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묘사법이었다. 

Rosso를 읽는 내내 내가 너무 오랫동안 일본문학을 멀리해서 생긴 괴리감이 아닐까 싶어 나를 끊임없이 다독여야했다. 반면 Blu는 맘에 드는 문체로 맘에 드는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갔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 소설에 열광했던 이유는, 우리에게 부족한 멜로가 아니었나 싶다. 근래의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진지한, 완전한 연애소설, 그리고 쿨~ 하다는 요즘의 단어로 형용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바로 그런 이유가 의도된 릴레이 소설에 사람들이 빠져들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협의되지 않은 듯한 두 남녀의 이어지는 소설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에쿠니 가오리가 마지막에 적은 에필로그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랑도, 한 사람의 몫은 2분의 1이란 것을...." 

이 특이한 형태의 소설은 그야말로 독자를 꽉 잡을 수 있는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특히나 서양이 아닌 한중일과 같은 동쪽 끝의 아시아에서는 히트를 칠 수 밖에 없는, 이탈리아의 두 도시, 피렌체와 밀라노, 그리고 노스탤지어로 남을 수 있는 "피렌체의 두오모", 무료한 생활, 10년을 넘나드는 사랑이야기, 그림과 도서관에 집착하는 두 주인공, 그리고 이제 북아트를 꿈꾸는 한국 출판계의 잘 만들어진 색감과 디자인... 마치 잘 기획된 영화와도 같은 이 소설은 예상대로 영화화되었고, 책은 일본에서 3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분명히 한국에서도 옛 "러브레터"와 비슷한 반향을 일으키며 개봉될 것이다. 

그다지 맘에 드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젊은 감성에 꼭 맞추는 그야말로 "쿨"한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200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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