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깊은 집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5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 연꽃언덕 일기에도 썼지만, 내가 기억하는 마당깊은 집은 소설이 아니고 연속극이었다. 그게 언제적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연속극에는 고두심이 기생바느질을 하는 어머니로 나왔었고, 그리고 정말 깊게 내려앉은 마당을 둘러치고 사람들이 옹기종이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 드라마를 보았을 때 우리도 아마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고, 한 방에서 여러식구가 지내는 일이 그리 색다르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던 거 같다. 

내가 그 때 서울에서 살았는지, 의정부에 살았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너른 마당에 화초를 가꿔가며 사는 집도 물론 있었지만, 작은 방에 TV도 없이 사는 집들이 그닥 별다를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은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집없는 설움이 무엇인지 대강 나도 알고 있던 것 같다. 어쩌면 바느질을 하진 않았지만 홀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일이나, 유독 길남이에게 호되게 굴던 그 어머니의 모습은 사뭇 나의 어머니의 닮아있었다. 그리고 길남이가 아버지의 자리를 억울하게 물려받았듯이 나 역시 아들이 없으니 네가 아들노릇까지 해야한다는 소리없는 어머니의 기대를 안고서 성장했다. 

잘 기억나지 않는 그 드라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계인씨가 준호아버지를 맡았던 거 같다..그 당시에 준호아버지의 역할에 이계인씨가 가장 잘 어울린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으리라) 준호아버지가 사무직에서 일을 한다고 했는데 결국 행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에피소드였다. 미군부대 담장 아래서 보자기를 펴놓고 갈고리 손으로 물건을 팔고 있던 준호아버지의 낡은 군복은, 부대의 높은 담장과 함께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소설의 내용과 약간 다르다.) 

그 드라마의 원작이 소설이라는 건 드라마가 종영되고 꽤 시간이 지난다음에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MBC 느낌표에서 자기네가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임을 잊지 않았는지, 선정도서로 발표를 해서 뒤늦은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가끔, 우리는 그런 전후문학이나, 육이오라 부르는 한국전쟁이후의 슬픔과 가난을 그리워한다. 마당깊은 집이 드라마로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는 억새풀이나, 간난이 같은 것이었는데, 가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가는 아이들이나, 억척스런 어머니 상들이 많은 감흥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때 이야기들을 다시 하고 또 하고 있는 것이다. 

마당깊은 집은, 성장소설이며, 전후문학이다. 모두가 가난한 듯 보이던 시절, 그러나 모두가 가난한 건 아니었다. 소설에도 등장하듯 주인집인 안채사람들은 오히려 불이 붙듯 가세가 성장하고 그로 인해 마당깊은 집의 모든 사람들이 이사를 떠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 길남이가 대구에서 보낸 첫 해, 그 해의 마당깊은 집에서의 이야기이다. 

나는 마당깊은 집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길남이가 가출을 하는 장면에서는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눈물을 질질 흘리다 결국은 베게에 머리를 쳐박고 통곡을 하고 말았다. 

어쩌면, 길남이가 아들이고, 나는 딸일 뿐이지, 길남이의 어머니의 대사는 마치 우리 엄마가 하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고, 전쟁통이 아니었는데도 더러운 세월은 30년을 넘어간 그 시절에도 비슷하게 적용이 되어, 단지 나의 어머니는 사투리를 쓰지 않았달뿐 길남이 엄마와 별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길남이 엄마가 하는 모든 말이 서울말씨가 되어 내 어머니의 얼굴이 되어, 혹은 고두심의 얼굴이 되어 가슴이 꽉 꽉 박혀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글의 첫머리에서 가난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그 시절에 언젠가 냉장고에 수박 한 덩이 넣고 살게 되는 날이 올거라고 그렇게 기대를 했다. 

길남이의 마당깊은 집은, 의정부 역전뒤에 두칸짜리 가겟방이 되어, 또는 집주인네 TV로 뽀뽀뽀를 보다가 눈총을 받고 슬그머니 그 방에서 빠져나오던 샘내의 가죽공장 앞 집이 되어 내 가슴을 후벼팠다. 

상처는 덮어놓는다고 잊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밴드도 붙이지 않고 공기를 쐬게 해줘야 금방 치료되지 않던가.. 내 가슴속에 묻어있던 그 어린 시절에 별로 민감할 수 없었던 가난에 대해서 오래동안 눈물을 흘리게, 그래서 치유받는 길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 소설이었다. 

이 글을 쓰는 내내도 눈이 뿌옇다.. 

2003. 3. 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