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큰 작가 큰 소설 1
알퐁스 도데 외 / 하늘연못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이 어떻게 내 손까지 들어와서, 거기다가 상해까지 끌려왔는지, 나도 처음엔 의아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예전에 인터넷 서점이 아주 많지 않던 시절에 어느 인터넷 서점에서 공동구매로 어떤 책을 샀었는데, 그 때 보너스 삼아 딸려왔던 책이었다. 

소설은 주로 작가위주로 사는 편인데, 그건 어쩌면 CD를 살때도 음반사 기획으로 묶여나오는 名作 같은 씨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거만함에서 비롯되는 거였다. 읽기 쉬운 단편들을 묶어서 발행한다는 것은 웬지 시장판에 늘어놓은 싸구려 물건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런데 사실, 독서를 제대로 할 여유가 없을 때 가장 좋은 것은 이런 책이다. 짧은 소설들을 다른 작가로 골고루 배치해서 쉽게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것. 

게다가 그 짧은 단편들이 정말 짧다면 그만큼 쉽게 읽히는 책은 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인환이라는 편역자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는 걸출한 서구문학의 단편소설의 대가들의 작품을 나름대로 잘 선정하여 묶어낸 책이다. 

알퐁스 도데, 안톤 체홉, 어네스트 헤밍웨이, 에이빈트 욘손, 프랑시스 잠, 오 헨리, 에리히 케스트너, 하인리히 뷜, 기욤 아폴리네르, 캐더린 맨스필드, 기 드 모파상, 서머셋 몸, 쿠르트 쿠젠베르크의 페이지 수 두장부터 열몇장에 이르기도 하는 정말 짧은 단편들 서른 다섯편을 실었다.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이야기들부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제목들, 분명히 읽은 기억이 있는데 너무 어릴 때 읽어서 가물가물한 이야기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안톤 체홉의 귀여운 여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헨리의 작품들이야 너무나 유명한 크리스마스 선물과 겨울을 나기 위해 감옥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인 경관과 찬송가 같은 작품도 있다. 

하늘을 찌르는 건방짐으로 무시했던 책 한권이 요즘들어서 거의 책을 읽지 않고 있던 나를 다시 자각시겼다고 할까. 편역자의 "옮긴이의 글"에는 어릴 적 취미에 "독서"라고 썼다가 선생님에게 혼난 기억을 상기하면서 (독서는 필수적인 것이지 취미일 수 없다는 이야기)책을 읽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훈련과정이 되길 바란다는 소박하고 존경할 만한 의견이었다. 

가끔 1권이 출간되고 나서 별 반응이 없었을 경우 2권은 출판사의 기획안에서 아예 제거되어버리기도 하는 실정을 생각했을 때 이 책의 2권은 나오지 않았을 것만 같다. (인터넷 서점 확인 결과 2권은 출간되지 않았다.)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책이 어디 이 책 뿐일까, 동네의 헌 책방이나 집안 구석 어딘가에서도 분명히 쉽게 발견될만한 이런 책 한 권, 가끔 책을 읽은 지 너무 오래 되었다고 생각될 때, 준비운동용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일 것이다. 그리고 가끔 다시 들춰읽어도 손색은 없을 것이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소설이 이렇게 짧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다시 느끼고 능력에 부치는 방대한 원고지 2000장짜리에 도전하기 보다 짧은 스토리를 구성하는 習作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200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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