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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198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와했던가?
지금 이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아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 전태일의 1970년 8월 9일 일기에서.
이 책은 1971년 전태일열사의 죽음이후에 1970년대중에 쓰여졌으나 1983년이 되서야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이름을 걸고 첫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전태일 평전이라는 이름으로 재 출간되었다.
책을 지은 조영래씨 역시 유명을 달리한지 오래다. 서울대 법대 졸업이후 각종 운동에 참여하여 고초를 겪다가 책이 개정판으로 제대로 된 이름을 달고 출간되기 직전인 1990년 12월에 폐암으로 별세하였다.
이 책은, 저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10여년을 떠돌았고 저자는 서문이나 머릿글도 달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책 속에는 전태일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의 글과, 돌베개 편집부의 글, 그리고 장기표씨의 글이 실려있을 뿐이다.
책의 주인공도 그리고 책을 쓴 사람도 모두 사라진 채 개정판이 나온 책.. 그리고 개정판이 나온지 10년이 넘어서 멀리서 얼굴도 모르는 분이 보내주어 읽게 된 책이다.
전태일 평전이 내 눈에 띄였던 것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박광수감독의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였다. 그 때쯤, 그 때가 1995년쯤, 그 때쯤이면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올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시절이었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책을 선뜻 읽지 못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두려웠다. 전태일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것과, 그로 인해 분노하고 눈물흘리고 슬퍼하고 다짐할 모든 것들을 감지했다. 그래서 두려웠다.
결국 전태일평전은 우연한 기회로 나에게 왔다. 그리고 힘겹게 책을 읽었다.
가끔, 사람들이 그런 말은 한다. 작가의 정성이라는 것.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 책장에서 피와 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는 말.
이 책이 그러했다. 전태일이라는 평전의 주인공만으로도 버겨운데, 그만큼의 생을 살다간 故조영래씨의 글 역시 책장에서 피가 뚝뚝 흐를 것만 같이 버겨웠다. 책장을 덮고 침대위에 엎드려 있다가 괜시레 딴 짓을 하고 인터넷으로 스포츠신문을 보고.. 그러다가 슬그머니 책을 들었다가는 가슴이 먹먹해와 천장을 쳐다보다가, 한숨이 나와 담배를 물었다가, 어두워진 밤하늘을 바라봤다가.. 그렇게 오래오래 힘겹게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독후감을 쓰는 것도 상당히 부담스럽다.
소화불량에 걸린 것마냥 속이 더부룩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뭔가가 미어지는 느낌이 내도록 이어지고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적잖이 영향을 받는 사람이 난데, 아마 이 책의 후유증은 상당기간 길어질 것만 같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지 알게되었다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자. 20대의 청년이, 신경통와 폐결핵, 밝은 햇빛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안질환, 소화기능장애를 겪으면서 허리를 펴지 못하는 닭장같은 작업장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하자.
한 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어서 동생을 끌고 서울로 올라와 박스를 깔고 길에서 한뎃잠을 자다가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 새댁이 깎아놓은 사과를 하나 먹으려다 실신해쓰러졌다고, 평생 배불러 본 적이 없는 한 청년이 죽음 직전에 던진 말이 "배가 고파"라는 말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하자.
그래서 그 청년은 죽음을 택했다. 누구 하나 죽어나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일이었다는 판단, 각종 민원과 청원서를 쓰고 설문조사까지 하는 열정으로 청계천 일대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있던, 세금제대로 내고 직원들 월급 잘 주면서 성공하는 기업체를 만들어보자고 노트 빽빽히 계획까지 세웠던 한 청년이 죽어나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일이었다는 판단까지 하게 된 그 경과.
그래서, 그래서 방치된 치료로 죽음으로까지밖에 이어질 수 없었던 그의 분신.
그가 그렇게 갔지만, 그리고 이 책을 쓴 조영래씨도 생전에 자기 이름 걸고 나오는 책을 보지 못한 채로 그렇게 갔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별 다를바없이 돌아가고 있다.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었다고 근로기준법이 준수되고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근로기준법이 준수되고 있는 직장은 노조가 강력한 직장, 신문에 날만한 직장, 의료보험이 지원되는 직장뿐인 것을..
아직도 명절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미싱을 돌리고 있는 미싱사들이 있고, 지하실에 위치한 공장에서 화장실 갈 때 외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유동이 잦은 여성들이 모인 직장에는 고추장에 밥비벼먹으며 곱게 화장을 하고 옷을 파는 아가씨들이 있고, 고정급 25만원을 받고 구둣발로 쟁반를 나르는 12시간 노동자가 있다.
가족같은 분위기라는 미명하에 항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업주가 있고, 무시하고 경멸하며 "니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실실 웃는 사업자가 있다. 능력위주의 사원을 선호한다는 규칙아래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사람들 달달 볶아대는 사장이 있다.
아직도, 우리는 아직도 전태일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중국에 와서 살면서, 한국에서 미쳐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을 미세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왜 저들은 자기들도 인권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할까였다.
"그러므로 고통받는 한 인간의 의식을 살펴보자.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억눌리는 고통에 찬 현실은 존재하고 있었다. 이 현실 속에서 자라나면서 그는 그 현실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자신에게 강요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사실은 바로 인간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여 볼 때 자기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조만간에 그는 어떻게해서라도 현실의 사회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수그리고 거기게 '순응'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모모한 짓으로 되며, 따라서 자신에 대해서는 불성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도덕으로까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정신의 쌀을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력, 모드느 가치관, 모든 선전을 무조건 받아들여 '순한 양'이 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주체성을 빼앗긴 정신적 노예로서 길들여지는 것이다.
등 어루만지고 간 빼어먹는다는 말이 있다. 강한 자들은 이 길들여진 양들에게 '착실', '겸손', '온건', '성실','적응성 있다'하는 등의 온갖 아름다운 찬사를 퍼부으며 환영하고 칭찬하면서 최대한으로 그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털을 뽑는다. 고통받는 인간은 한동안은 얼떨떨하여 그가 고통을 당하는지 털을 뽑히는지 모른다. 설사 어렴풋이 그것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는 다만 생존하기 위하여 현실의 부당한 행태와 그로부터 오는 자신의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때때로 무언가 '부당하다'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나, 역시 자신은 '무력'하며 그것은 시정될 길이 없으므로 그는 곧 머리를 흔들어 그런 건방진 생각을 털어버린다. 인내는 그의 영원한 금과옥조로 된다.
그러나 억압과 혹사,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이 그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그의 인간으로서의 존립을 위협하게 될 때 잠자던 그의 비판의식은 돌연 고개를 쳐들어 절실하게, 부지런히 활동을 개시한다. 고통이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그가 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극한점에 다다랐을 때 그는 비로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를,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추잡한 것인가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자존심이 되살아나고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한다. 저항이 시작된다. 그것이 철저해질 때 그는 이미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현실의 질곡이 결코 인간이 뚫을 수 없는 금성철벽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
책 134쪽에서
후반부의 현실을 뛰어넘는 단계에 대한 것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왜 그런가.. 하던 문제에 대해서 답을 막연하게 나마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답을 얻었다는 것은 그렇다면 앞으로는 고민하던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 또는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도 같이 얻은 것이다.
전태일의 문제는, 비단 노동문제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책뒤에 장기표씨가 쓴 글에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진보적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전태일열사와 또 이 책이 나오는 데까지 수고를 한 출판사와, 책장 한 장 넘기기가 힘들만큼 정열적인 집필을 한 조영래씨, 그리고 이 책의 독자들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누군가 특정인물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그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자는 것.. 그런 인간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논리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청계천의 그 때 당시의 업주들도 모두 사람인데, 사람이 사람과 부대끼고 살아가는 동안 사람은 잔악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자기도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게 고생했다" 하면서, "그러니 너만은 그렇게 고생하지 말아라"고 하는 사람과 "그러니 너도 그렇게 고생해라"하는 사람. 우리는 어느 쪽에 서 있는가?
후자라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우리가 아니라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도 역시 사람인데...
그저 반성할 뿐이었다. 그도 사람인데, 저이도 사람이고, 이이도 사람인데, 왜 나는 그를, 저이를, 이이를,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나와 다르다고 생각해왔는가에 대한 반성.
그리고, 외면하고 타협하고 슬렁슬렁 살아온 세월.
전태일의 평전을 다 읽고, 인생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인생이 짧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다잡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지금, 저 앞에 보이는 공사장의 인부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달라던 전태일의 말은, 바로 그 말이었을거라고.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指環, 力을 뜻함 - 엮은이)의 무개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으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에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 전태일이 죽음전 일생에 단 한 번 다녔던 청옥공민학교동창들에게 보내는 편지 -
http://www.junt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