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당신들의 대한민국이후에 다시 만나는 박노자교수의 책이다. 
이번책은 한국을 비판 분석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는 저자가 노르웨이라는 북유럽사회와의 만남을 바탕으로 이런 저런 세계화와 지식인의 갈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식인의 갈길을 제시한다는 것은 그가 "지식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우리가 미래를 걱정하고,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런 "생각"만이라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냐고 은근히 다그치고 있다. 

책은 1부는 또다른 세계, 북유럽, 2부 과연 그들은 건강한가 3부 반폭력.평화를 위하여라는 3부로 이어져있는데, 정작 저자는 3부의 결론부분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르웨이의 이야기로 부터 책의 서두를 펼치기 시작한다. 

1부는 러시아에서 나고 자라 공산주의와 폭력,전쟁을 무심하게 지나쳐야 했던 저자의 성장과정과 이후 한국에서마저 봉건주의에 익숙해진 저자가 또 다른 세계 북유럽인 노르웨이에서 겪었던 혼란을 통해 그들에게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을 제시한다. 이 부분은 이 사람 너무 노르웨이 예찬만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자유로움과 인권존중과 평등한 사회, 진보와 보수의 공존등을 예찬하고 있다. 

그러나 박노자교수가 그렇게 노르웨이에 뻑이 갔다고 칭찬만 줄줄이 써나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곧이어 이어지는 2부 "과연 그들은 건강한가"에서 증명되었다. 그 어느 나라, 어떤 조직도 모순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진실이라면 노르웨이라는 나라도, 북유럽이라는 선진복지국가역시 그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국의 과거를 "약탈을 일삼던 바이킹"이라고 자아비판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가진 노르웨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사냥애호가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일말의 인종차별도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에 지나지 않고 백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백인아닌 유색인종에 대한 노동력 착취 전 세계의 담합등을 고발했다. 

발전하여 3부 "반폭력 평화에 대하여"는 한 국가나 대륙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적으로 묵인되고 있는 폭력과 전쟁에 대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음모들을 거론한다. 
러시아와 유럽에서 이어지는 스카우트에서 부터, 자연을 파괴하는 사냥과 동물원의 건립, 학원폭력, 미국의 911사태로 말미암아지는 복수들, 이슬람사회에 대한 세계의 태도와 또한 그들의 태도, 군대를 해체하자는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주장에서 오태양군(양심적 군복무거부로 현재 사회봉사활동중에 있는 청년)과 주고받은 서신을 실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한국군대에 대한 편견을 다시 고찰하게 한다. 그리고 좌파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단상이라는 補論에서 반전운동으로 인한 민족 생존의 보장, 사회적 정의구현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늘 그렇듯이 인문사회과학분야의 칼럼집을 읽으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았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태생이 한국이 아닌 한국인 박노자교수의 시선은 당연히 신선한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는 러시아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노르웨이인도 아닌 세계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이지만 한국이라는 한 국가를 초월해 얼마나 전세계, 전지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를 느끼게 했다. 

그가 주장하는 반폭력에 대한 주장들, 특히 군대징집에 대한 사고는 나는 단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각들이었다는 것인데, 나는 군대를 가지 않는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는 (나는 군대도 안 갔으면서)남성차별주의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반성하게 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모든 사람이 가는 것을 왜 너만 회피하느냐 하는 논리였다. 그렇다고 누구 아들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신체조건으로 군대를 회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양심과 종교의 이유로 살생을 하지 않겠다는 이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복무를 왜 거부당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박노자교수가 예전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제시했듯이, 대한민국남자라면 대다수 특별한 사유(-양심이 아니라 외적인 이유로)가 없다면 모두 군대를 가야하는데, 그럼 이 사람들이 군대를 갔다와서 얼마나 변하게 되는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꽃다운 청춘에 군대에 끌려가 가장 창조적이고 의욕넘치는 시절을 규율과 폭력적인 권위아래서 모두 떨쳐버리고 사회에 순응하는 얌전한 동물이 되어, 옳은 소리 못하고 개기지 못하는 나약한 자가 되어 세상에 끌려나온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과 전쟁주의에 노출이 되어 정확한 사고를 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폭력과 권위를 배워 세상으로 던져진다. 그렇게 남자들이 망가져지는 것이 군대라는 조직이다. (그렇다고 그래 우리 그렇게 힘들지, 너희 여자들은 가지 않는 군대를 우리는 간다..라는 영웅심이 조금이라도 용솟음친다면 반성하시길!...)

특정한 사유로 군대를 가지 않았던 사람은 (또는 가지 못했던)컴플렉스에 시달려 술자리에서도 그럴싸한 무용담을 펼칠 수 없게 되고, 군대를 갔다와야 진짜 남자가 된다는 오판에 평생의 좌우명을 걸고, 스스로 해병대로 기어가는 남자들은 그 얼마나 불쌍한가. 인간이 아닌 군대의 부속으로 2년 넘는 세월을 썩어지내다가 결국 그 폭력과 권위주의를 잔뜩 가슴에 품고 평생 그 恨을 풀어대며 상사가 되면 부하직원에게, 세상에서 약자에게, 가정에선 자녀와 아내에게 말도 안되는 허울뿐인 권위를 내세우며 살게 되지 않는가. 

우리가 몰랐던 진실은 그런 것이었다. 이슬람이라고 다 같은 이슬람인가, 유럽이라고 발전한 문명을 가지고 있는가. 

진실을 파헤치는 박교수의 모든 주장은, 물론 그만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눈을 뜨게 해주고 나 역시 폭력과 권위주의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그로 인해 그 기득권을 쥐는 방법을 벌써 교육받고 주지당한 나 역시 그에 대해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에 대해 반성하게 했다. 

책을 읽고 나서. 대부분 책 뒤에 짧은 감상문을 적는데, 이번에도 여타 인문사회과학칼럼집과 비슷한 감상을 적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이란 얼마나 고단한 것인가.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향해 투쟁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데는, 자기 통제와 집념과 용기, 그리고 신념이 필요하다. 
타협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그것이야말로 성인군자이며 그것이야 말로 가치있는 희생이 아닌가.
유교사회에서 늘 그리워했더 君子의 道가 과연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일까.. 

아직 모든 것이 너무나 부족한 .. 아무것도 아닌 自我만 발견했다. "

200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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