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2
김형경 지음 / 문이당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을 하려면 야하고 뻔뻔스러워져라.. 이 카피는 이 책과 전혀 맞지 않다. 이 책은 전경린의 열정의 습관과 예전에 친구에게 부탁해서 받은 책이다. 열정의 습관보다 웬지 무거울 것만 같은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나는 이 책을 잉게보르그 바하만의 삽십세보다 더 중요한 책으로 인정할 것 같다.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같이 통찰하게 만든 나에겐 무척 중요한 책으로. 

소설은 두권으로 이루어져있다. 처음에는 쉽게 읽히다가 어느 한 순간 눈물을 흘렸고 그러다가 꺽꺽 울기도 했고, 쿠션을 끌어안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으며 2권으로 넘어가서는 책장을 넘기는 게 너무 힘들만큼 몰입하여 읽었다. 

소설은 37살의 두 여자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두 사람은 친구고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박세진이라는 한 여자의 신내림과도 같은 육체와 마음의 병으로 인해 세진은 自我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 인혜역시 삶의 한가운데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닮은 데가 거의 없는 오래된 친구이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내내 힘들었던 이유는 두 주인공에게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분노를 분노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사기치면서 살아온 세진과 어디서부턴가 무미건조해진 방어의식의 인혜. 너무나 골고루 나의 모습이 그 두여자 사이를 오가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세진은 어느날 가위눌림이 심해지고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몸도 아프기 시작한다. 신이 내린 것만 같은 현상이 계속되면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에 이른다. 이런 저런 역술가와 기나 한의학이나 무당이나 안수집나나 법사와 스님 그리고 신경정신과에 정기적인 면담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이해해 나간다. 작가 김형경은 이 모든 일들을 미려한 문체뿐이 아니라 섬세한 감성과 냉정한 이성으로 세진을 타이르고 울리고 분노케 하고 다스린다. 프로이드와 융과 라캉에 이르러 배고픈 귀신까지, 세진이 나이 서른 일곱이 되어 그제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자기 자신을 위해 총동원된다. 

그리고 늘 그녀의 곁에 있던 인혜. 누구나 겪었을 듯한 어린 시절의 여성동성친구에게 비롯되는 애정으로 시작되어 세진을 연민하고 갈구하고 그리고 떠나고 했지만 그녀는 세진의 모습의 또 다른 모습이 되고 그제서야 자기 자신을 갉아먹고 있던 뿌리깊은 욕망과 권력을 눈치채게 된다. 

며칠전 심하게 가위를 눌리고 공포감에 휩싸였던 나. 그 다음날 밤에 침대에서 이 책을 잡았는데 첫판부터 세진이 가위를 눌리고 귀신을 보곤 하는 이야기가 나와 섬뜩했다. 그러나 나는 소설속으로 파고들어 그녀가 자신을 찾는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내 안의 어디에 무엇이 있어서 내가 가위를 눌리고 공포감을 느끼게 하고 꿈을 꾸게 하고 민감한 육감을 발휘하게 하고 예지몽을 꾸게 하는지...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나혼자만의 치유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하나씩 떠 올리면서 내 안에 분노가, 외로움이, 슬픔과 아픔이 있다는 것을 하나씩 끄집어 내고 있다. 

그러다 눈물이 났고 엉엉 울었고, 소리를 지르고 한숨을 쉬었다. 

서른 일곱. 이룰만큼 이뤄놓은 성공적인 싱글여성. 뒤떨어지지 않는 외모. 세상의 많은 유혹. 그로부터 남겨진 두 여자, 그리고 그 여자들이 만나는 몇명의 이야기들이 소설을 매끄럽게 이끌어나간다. 결국, 우리는 모두 상처투성이였고 그걸 모르고 또는 알고 싶지 않아하면서 자신을 무시하고 거부하고 감정을 누르면서 속으로 화를 키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사람이 서른 다섯에서 오십이 되는 그 기간동안에 통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추구한다고 한다. 그제서야.. 인생의 반정도를 살고 난 다음에서야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작업을 시작하는 이유일게다. 

홈페이지를 꾸려나가면서 지금 이글을 읽고 있을 분들에게도 해당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어수선한 창고같은 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고 하시는 다수의 분들이 30대 중후반이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그 분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번듯한 직장과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뭔가 알수없는 공허함과 부족감때문에 허탈해하고 있다는 것을 점점 느껴간다. 

욕망과 권력의 구도사이에 서 있는 불안한 우리들. 그리고 게다가 한국이라는 사회의 울타리에서 일제시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온 부모들 밑에서 자란 우리들. 그래서 그 부모들에게 강요되는대로 알게 모르게 주입당하고 눌려지면서 살아온 우리들은 가슴속 어딘가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날 기괴한 짓을 하거나 술을 먹고 쓰러지거나 담배를 물거나 몰입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 헤맨다. 그거였다. 우리가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광하던 이유. 우리는 무언가에 상처받았고 화가 났었지만 제대로 화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우리가 그 분노와 욕구를 발산하는 단 하나의 돌파구. 흥분되는 붉은 색의 물결속에 들어앉아 소리치고 신나게 떠들던 우리의 축제는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이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생의 비밀은 자기자신을 아는 데에 있다는 문구가 나왔을 때, 그럼 그게 비밀이라는 걸 이제 알았으니 지금부터라도 그 비밀의 문을 열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속에서도 나오지만 자기 자신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들춘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겹고 괴롭고 끔직하기조차 한 일들이었다. 언젠가 그것을 극복하는 날이 온다면 삶은 자유로워 질 것이다. 내 안에 감추고 살았던 진정한 自我가 기지개를 펴는 날, 자유로운 삶은 나를 천국으로 이끌지도 모르고 세상이 진정 아름다워 질지도 모른다는 기대, 또는 그래봤자 반복되는 상처와 질긴 삶뿐이 남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허망함.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망이 나에게도 깊이 뿌리내려 있음을 깨닫는다면 적어도 가위를 눌리거나 하는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나의 희망. 

대한민국의 모든 여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지만, 남자들도 여성의 입장을 떠나 이 책을 따라 가면서 자아발견의 커다란 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꼭 권하고 싶다. 

당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당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스산해지는지, 왜 그렇게 헤매이고 떠나고 싶은지.. 열심히 걷는다면 언젠가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200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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