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몇 가지 지적해 본다.
1. 다른 (alternative) 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12쪽)==> 누군가의 책을 번역한 것도 아닌데 왜 괄호에 영어를 적었을까? 이 현상은 바로 밑에 또 나타난다. '지지해준다(empower)' 내가 가진 상식으론 독자가 오해할 수 있는 말에 괄호속에 한자를 적는 경우는 보았지만 - 예를들면, 사실(史實)같은 경우 -이런 경우는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독자가 잘 모르는 개념어나 인명 등의 고유명사의 경우는 이 경우와는 다르다.
2. 빈부 격차, 폭력, 인종 증오, 근본주의 같은 인류가 직면한...(13쪽) ==> '인종 증오'라는 말은 한국어가 모국어인 내게도 영 낯설다. '인종 차별'이 낫지 않을까?
3.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화되고 있는 .... (18쪽) ===> 아마도 globalize나 globalization을 염두에 두고 쓰신 말로 보이는데, 세계화라는 일반적인 용어가 있을 경우는 그대로 쓰는 게 나아 보인다. 물론 특별히 용어를 달리 부르고 싶을 경우라면 조그만 주석을 달아 주면 좋겠다. 물론 '지구화'와 '되다'는 동어 반복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4. 계급, 인종과 같은 여성과 여성의 차이, 남성과 남성의 차이는 남녀 성차별 문제와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고 있다. (19쪽) ==> 이 문장에서 주성분을 골라 보면, '차이는 (문제와) 작용하고 있다' 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작가는 '계급, 인종과 같은 여성과 여성의 차이, 남성과 남성의 차이는 남녀 성차별 문제와 긴밀하게 상호 영향을 끼치고/주고 받고 있다'라는 말을 하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무슨 작용을 긴밀하게 하는 지를 명기해야 할 것이다.
2006-02-23
처음부터 약간의 오류(?)가 보이니까 좀 신경을 쓰고 보고 있다.
5. 정체성의 정치가 문제적인 것은 .....(20쪽) ==> 내가 아는 상식의 범주에는 '문제적이다'라는 말은 어색하다. 뒤의 서술어와 호응관계를 살펴 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이나 '문제가 되는 이유는' 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6. 그는 나보다 피부색이 '희었지만' 자신을 흑인으로 강하게 정체화하고 있었다.(21쪽) ==> '희었지만'은 '희지만'으로 바꾸는 것이 좋아 보인다. 여기서 굳이 '었'의 문법적인 기능을 설명할 생각은 없다. '정체화'라는 말은 생경하다. 전문적인 용어여서 그러한가? 만약에 여기서 쓰인 '정체화'라는 낱말이 영어의 'identity'와 상관이 있는 말이라면, '자기의 정체성을 흑인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라든지 아니면 다른 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7. 또한 그러한 요구는,...생략, 남성 스스로가 자신을 여성과 동등한 대화 상대자가 아니라 마치 '성장이 멈춘 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42~43쪽) ==> 문장의 뼈대만 보면, '요구는 ... 주장하는 것이다.'이다. 뭔가가 많이 이상하다. 사실 나의 독해력으로는 '그러한 요구'가 무엇을 말하는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을 차치한다면, '그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주장하는 것과 같다.' 라고 쓰는 게 낫겠다.
8. 어머니는 대단한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지닌 픽션이며, (65쪽) ==> 여기서는 '대단한'이란 수식어가 무엇을 꾸미고자 하는 지 분명하지가 않다. '대단한 목적'인지 '대단한 픽션'인지가 불분명하다.
9. "그러니까, 너는 질그릇이고 나는 본 차이나(Bone China)네!"(70쪽) ==> 도자기의 뜻이라면 본 차이나에서 차이나는 China가 아니라 china로 써야 한다. 이것은 japan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본 차이나(bone china)라고 써야 한다.
- 이제 겨우 90쪽을 읽었는데... 오류라고 생각되는 문장이 많아서 약간은 두렵다. 하긴, 다른 누군가가 이 글을 읽을 확률은 아주 희박하니까 쓸데없는 걱정일게다.
- 하나더 추가하자면, 나는 도무지 이 책의 제목조차 분명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페미니즘의 도전'이라??? 무슨 말인가? 나는 조사 '~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사용하는 것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나의 생각이 무슨 대세에 영향을 끼치겠냐마는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위의 1번 문장(아래 참조)에서 쓰인 '눈의 이물감'에서도, '눈이 지각하는/느끼는 이물감' 이라고 풀어 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alternative) 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12쪽)
나름대로 제목에 대한 풀이를 해 본다. 지은이나 편집자께서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지만 그건 기대할 바가 아니겠다. 이 글을 볼 리가 없을 것이므로...
1) 무릇 말이나 글은 크게 보면 명사(Noun)와 동사(Verb)로 구성되어 있다. '페미니즘'은 누가 뭐라고 해도 '명사'이고, '도전'은 꼴은 명사의 꼴이지만, 동사의 성향이 강하다. 일단 위의 전제에 동의한다면, 동사와 명사의 (의미상의) 결합/관계는 일반적으로 2가지의 경우가 가능하다. 즉, '명사가 동사한다(S+V)'와 '명사를 동사한다(V+O)' 가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페미니즘의 도전'의 경우는 억지로 보자면 마찬가지로 2가지로 이해가 가능하다. 1. 페미니즘이 도전한다. 2. 페미니즘에 도전한다. (도전하다라는 동사는 조사 '~을'과 어울리지 않고 '~에'와 어울린다.) 하지만 이 책의 성향으로 볼 때 2가지 모두 그리 확실한 믿음응 주지 못한다.
2) 그럼 남은 방법은 단 하나이다. '페미니즘'과 '도전'을 모두 명사로 보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참 어렵다. 도대체 독립된 낱말인 '페미니즘'과 '도전'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가? 무언가 연결할 끈이 있어야 되는데 별로 없다. 좀 어지럽지만, 만약에 challenge of feminism이란 영어로 된 책이 있어 제목을 번역해야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미니즘의 도전'이라고 기계적으로 번역할 것이다. 이렇게 번역하면 어떨까? challenge 와 feminism의 지시 대상이 같다고 보면 '페미니즘이라는 도전'이나 '(세상에) 도전하는 듯한 페미니즘' 정도의 번역이 더 원어의 의미에 가깝다고 본다. 아무튼 난 이 책의 제목이 무슨 말인지 아직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