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자식들 끼니보다 소 먹일 여물을 더 걱정하는 가난한 농사꾼의 막내 아들로 남자는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일꾼이었다. 글자보다 먼저 농사를 배웠고, 타지에서 비명에 숨을 놓은 큰 형이 남긴 젖먹이 조카를 업고 중학교에 갔다. 점심 종이 울리면 학교를 파하고 주린 배 만지며 집으로 돌아와 송아지 한 마리 끌고 동산에 올라 땔나무를 찍었다. 한참 밭일을 하다 찢어지는 울음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밭두렁에 박아 놓은 낫 근처를 기어다니던 조카애가 허벅지를 베었다. 죽을 만큼 맞았고 죽지 않을 만큼 울었다. 작고 가는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조카애 옆에 누워 매 맞은 몸을 추스르는 동안, 남자는 다짐했다. 도시로 갈 거라고.
음악에도 그림에도 재주가 남달리 빛났던 어느 교사가 하나님의 품 아래에서 이룬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가정의 막내딸로 여자는 태어났다. 사랑을 받음으로써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며 자란 여자는 미워할 것 하나 없는 울타리 안에 살아 미워하는 법을 몰랐다. 구관조에게 말을 가르쳤고, 큰 꽃과 작은 꽃을 예쁘게 피워올릴 줄 알았다. 자라서도 세상을 귀로 들었고, 더듬고 만지며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았으므로, 준비 없이 그저 아름다웠다. 꽃잎처럼 약했으나 향기처럼 예뻤다. 이름에 향香자를 썼다.
도시에서 남자는 영민했고 말이 승했다. 잠을 줄여 일했다. 그렇다면 맨손으로도 일굴 수 있는, 아직 그런 세상이었다. 어떻게 누구의 눈에 들었는지, 혼처를 찾기 시작하던 여자에게 남자의 사진과 이름이 건네졌고, 그들이 만났다. 남자는 첫 눈에 여자에게 빠졌다. 아름다웠고, 순했고, 많이 웃었으며, 남자에겐 여자가 처음이었으므로, 남자는 그것을 운명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아무 것도 몰랐고, 그저 아름다웠고, 순했고, 많이 웃었다. 남자는 영민했고 말이 승했다. 거짓과 허세로 자신의 몸집과 이름을 키웠다. 여자는 미워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것은 곧 의심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는 말이다. 여자는 남자의 말과 낯에서 자신을 향한 진심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여자가, 아니 두 사람이 착각한 것은 진심이 아니라 불변이었다. 영원이었다. 대부분이 그렇듯, 착각과 착각이 부딪어 불을 만들었고,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로 타는 불 속에서 결국 가족이 탄생했다.
가족은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했으나, 가족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불행하고 불행했다. 여자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둘의 대화는 대체로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어쩌다 긴 대화가 있으면 그 끝은 꼭 분노와 고성,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아, 하는 외침으로 맺어졌다. 처음에 남자는 시간을 두고 매만지면 여자가 변하리라 믿은 듯 하지만, 우습게도 먼저 변한 건 남자였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많이 아는, 많이 알아주는 것들에 끌렸다. 그래도 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여자는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으나, 한 가지를 새로 배우는 중이었다. 미움이었다. 사랑을 받음으로써 사랑을 주는 법을 배웠던 여자가, 미움을 받음으로써 미움을 주는 법을 배웠다. 멸시를 받음으로써 미움을 주는 법을 배웠다.
그래도 가족이었다. 그것이 가족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종종 함께 웃었고, 여전히 함께 밤을 보냈으며, 가끔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며 스스로를 다잡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그들은 아들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되면 종종 당부인지 원망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툭 던지곤 했다. 아들아, 넌 네 엄마 같은 여자와 만나면 안 된다. 아들, 넌 네 아빠 같은 남자가 되면 안 된다. 어린 아들은 엄마도 아빠도 마냥 좋았으므로 그저 응, 응, 대답하며 그 말들을 넘겨 버렸지만, 아무도 몰래 네모칸 공책에 조막조막 뜻 모를 그 말들을 적어넣으며 한글 연습을 하곤 했다. 엄마 같은 여자. 아빠 같은 남자. 어느 날, 게임기를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의 핸들을 잡은 남자가 갑자기 생각난 척 아들에게 물었다. 동생이 생긴다면 깜둥이가 좋겠니, 흰둥이가 좋겠니? 남자애면 아빠 닮아서 깜둥이가 나올 거고. 여자애면 엄마 닮아서 흰둥이가 나올 거고. 아들은 어쩐지 아빠가 좋니, 엄마가 좋니? 하는 질문을 받은 기분이 들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몰라. 말 안들으면 막 때려 줄 거야. 아들은 회전 손잡이를 돌려 차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엉뚱한 소리만 할 뿐이었다. 마침내 아들이 구구단 9단을 다 외울 즈음, 가족의 마지막 구성원이 태어났다. 선택지 밖으로부터 까만 여자애가 뛰어들어왔다. 애초에 사지선다형으로 줬어야지. 아빠는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군. 그래도 아들은 까만 딸이 좋았다. 마치 우문현답 같은 아이였다. 사진 속의 자신의 갓난 모습과 똑 닮은 동생이었다. 남자, 여자, 아들, 딸. 그렇게 가족이 완성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벌어지던 일들은 쉬지 않고 벌어졌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어떤 계기로 모든 문제가 펑 하고 해결되는 일 따윈 없다. 그것이 가족이다. 그래서 가족이다. 어제의 문제는 어제처럼 오늘의 문제고, 오늘의 문제였으므로 곧 내일의 문제다. 가족은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가족 안에서 남자와 여자와 아들과 딸 역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사랑과 원망을 버무려가면서, 죽일 듯이 미워하다가도 죽었다고 펑펑 울면서. 그리하여 가족은 탄생하고 완성될 수 있어도, 완결되지 않는다. 가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는 끝맺을 수 없으므로 말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마치 말 내뱉다 씹은 혀처럼, 그저 가족의 탄생 이야기만 간단히 적어 놓을 뿐이다.
_ 사진 속의 남자는 이제 세상에 없다. 사진에서처럼 항상 혼자 다른 곳을 쳐다보던 남자는 많이 아파하며 세상을 등졌다. 그 아픔이 산으로 쌓인들 다른 가족의 마음에 패인 바다를 다 메울까. 그럼에도 이제 남은 이들은 조용히 옛날 사진을 짚으며 그래도 우리가 가족이었음을 생각할 줄 안다.
_ 이제 더는 저처럼 아름답지 않은 사진 속의 아름다웠던 여자는, 남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오롯이 그에게서 배운 미움을 함께 떠나보냈다. 그랬더니 다시 젊은 시절의 여자가 되었다. 미워할 줄 모르고 사랑할 줄만 아는. 허리는 굽었고, 무릎은 엉망이며, 못난 아들 걱정에 한숨만 보태면서 하루에 하루를 이어나가는 오늘의 여자는, 그러나 여전히 큰 꽃과 작은 꽃을 피우는 데 능하고, 따뜻한 날에는 공원을 빙빙 돌고, 추운 날에는 작은 앉은뱅이 상을 펴 놓고 앉아 히라가나를 익히고 있다. 늦은 나이에 고시원에 들어와 있는 부족한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_ 어릴 적에는 여자를 닮았던 아들의 얼굴이 나이가 들수록 남자를 좇아가더니, 아들은 요즘 거울 속에서 가끔씩 아직 사랑했던 시절의 남자를 본다. 오늘의 아들은 사진 속의 남자보다 4살이 적다.
_ 까만 딸은 이제 그나마 좀 하얘졌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저도 그 사실을 아는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오빠는 어렸을 때 엄마 닮아서 참 예뻤는데 나이 드니까 아빠 닮아서 망했네. 나는 어렸을 때 아빠 닮아서 망했는데, 나이 들어도 아빠 닮아서 참 망했네.



_ 그들의 삶은 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했다. 이국적인 소리와 쏟아지는 햇빛, 무성한 잎사귀, 쓰러진 나무,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에 달아나는 작은 짐승들, 곤충, 고요함, 그리고 꽃.
이 모든 것은 제각각이면서도 밀접하게 엮여 있고, 보이는 것과 달랐다. 실제로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비리의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다른 하나의 삶. 문제가 있는 건 이 다른 삶이고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도 바로 이 삶이다.
_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
_ "오래된 가시나무 옆에서 그 여자와 이야기하던 날 말이에요." 비어트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 낯선 여자는 내게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경고했어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가 함께 나눈 일을 기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떠날 때 그 뱃사공은 내가 예상하고 두려워했던 바로 그 대답을 했어요.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있을까요, 액슬, 지금 이 상태에서요? 그와 같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요? 액슬, 난 너무 무서워요."
"저기, 공주, 무서워할 거 없어요. 우리 기억은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니고 이 지독한 안개 때문에 어딘가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거예요. 그래야 한다면 우리가 하나씩 하나씩 다시 찾아낼 거예요. 그래서 이 여행길을 떠난 거 아니오?"
_ 가즈오 이시구로, 『파묻힌 거인』
_ 우리는 사실 행복의 그림에 있는 미소가 아니라 삶 자체에서 행복을 찾아요. 세밀화가들은 그걸 알지요. 하지만 그들이 그리지 못한 것도 그거예요. 이 때문에 그들은 삶의 행복을 바라보는 행복으로 대체한 겁니다.
_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