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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좀 쉬지 않고 책탑 쌓아 놓는 syo의 육신과 정신의 건강을 염려하여 따뜻한 댓글 달아주시는 이웃분들, 감사합니다. 그러나 syo는 괜찮습니다. syo는 백수라서 1년이 어차피 365일짜리 연휴랍니다. 맨날 피둥피둥 잘 쉬고 있으니 심려 마시옵고, 다들 훈훈한 명절, 배려하는 대화가 오가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산스럽지 않은 버팀목임을 확인하는 단단한 명절 되시기를.
한가위 달덩이 같은 프로필 이미지를 쓰는 syo 올림.
"제가 탈 기차는 좀 나중에 떠납니다." 내가 말했다.
"아, 그럼 걱정 마세요." 그가 말했다. "제 시간에 차장이 와서 깨울 겁니다. 오늘 우리가 만났던 이런 식으로, 우리의 이 가방들을 들고서, 다시 만날 기회는 없겠지요. 여행 잘 하시길 바랍니다."
_안토니오 타부키,『인도 야상곡』
버티어야 할 것은
버틸 수 없는 것들의 등에 기대어
살기도 한다
_박연준,「고요한 싸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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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명절인데,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한 뼘만큼이라도 바뀌어야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둘러보았지만 무언가 더 가지는 일은 품이 많이 들어 결국 정리하고 버리는 일들로 한가위를 채우고 있다. 책들, 욕심에 쌓아 올린 박스들, 지난 한가위부터 열어보지 않았고 다음 한가위까지도 펼쳐보지 않을 책들을 끄집어 내 빗소리라도 좀 듣게 해 준다. 이별 선물이다. 어린 날 허영에 눈 멀어 필요하다고 믿었거나 혹은 속였거나 하면서 사들였던 아이들. 눈길은 몇 번 주고, 손길은 한두 번만 주었던, 업어올 땐 소중했던 그 아이들을 초라하게 만든 것은 다 나였으니까. 미안하다 얘들아.
저는 봄마다 책을 정리해서 다시 읽지 않을 책들은 못 입을 옷을 버리듯이 내버려요. 모두들 큰 충격을 받지요. 제 친구들은 책이라면 별나게 구는 사람들이거든요. 이 친구들은 베스트셀러는 뭐든 다 가져다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끝내버려요. 건너뛰는 데가 많을 거다, 하는 게 제 생각이지요. 그러고는 뭐든 두 번 다시 읽지 않으니 1년쯤 지나면 한마디도 기억하지 못하지요. 그러는 사람들이 정작 제가 책 한 권 쓰레기통에 던지거나 누구한테 주는 걸 보면 펄펄 뛰는 거예요.
_헬렌 한프,『채링크로스 84번지』
갑자기 내 모든 책이 더는 필요치 않았다. 단순한 물건들인 듯했다. 내 창작 생활의 닻이 사라지고, 나를 이끌던 별들이 물러났다. 내 앞에 새로운 빈방이 보였다.
_줌파 라히리,『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책을 필요 이상으로 끊임없이 쌓아두는 사람은, 개인차가 있긴 하겠으나 멀쩡한 인생을 내팽개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생활공간 대부분을 거의 책이 점령하는 주거란, 일반 상식에서 보면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멀쩡한 정신은 아니다.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은 그저 한도 끝도 없이 갖고 싶은 책이 눈앞에 아른거려 계속 살 수밖에 없는 비틀어진 욕망 뿐이다.
_오카자키 다케시,『장서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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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일 / 문태준
남해 용문사
마루 끝에서 듣는
새 우는 소리
맑고 참 곱다
바람이 빨라 그렇단다
손 덜 타게
얼른얼른
바람이 건네주느니
종심(從心)이려니
바람의 이 일을
나도 하고자
언젠가는 말에서, 글에서, 심지어는 마음에서도 나를 지워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여기까지 내 색깔, 내 냄새를 뽐내며 성큼성큼 걸어왔으니, 이제는 찍어놓은 발자국 흩으며 옅게 옅게 돌아가야 하는 반환점을 만날 것이다. 그것들은 좌절이나 포기에서 오기도 하고, 드물게는 승리 뒤의 허무로 만나기도 하겠으나, 이윽고 새 소리를 오롯이 새 소리로 그대로 건네고 얼른얼른 사라지는 바람처럼, 그렇게 말하고 쓰고자 하는 마음이 나에게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날까지는 그저 허영을 양껏 껴안으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색깔을 한껏 드러내고 냄새를 끊임없이 풍겨대며, 어쩌면 색깔과 냄새를 계속 찾거나 만들어가며, 말하고 쓰며, 읽고 또 읽으며, 내가 나라고 드러내며.
그것은 그릇을 키우는 일이다. 비우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작은 그릇은 비어도 작은 것만 담을 수 있다. 나 하나 담고, 그저 내가 듣는 새 소리를 나 하나 듣고 마는 작은 그릇. 비어 있는 것은 비어 있으므로 큰 것이기도 하지만, 크게 비우는 것이 더 크다. 술잔은 비어 한 잔의 술을 담지만, 집은 비어 하나의 가족을 담고, 광장은 비어 수천만의 마음을 담는다. 채우며 키우고, 연후에 비울 수 있기를. 제 속을 비울 수 없는 사람 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채워나갈 수 있기를.
한가위 달맞이 소원의 대본이었습니다. 달님,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쓰게 해주세요.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나를 바꾸어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여기서 힘 있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 아닐까요? 나의 삶은 유한하지만 애쓰고 있다는 것.
_정혜윤,『삶을 바꾸는 책 읽기』
"영혼이란 내가 말했던 그런 순간에 처음 탄생하는 거야." 스티븐이 막연하게 말했다. "그것은 더디고 어두운 탄생이며 육체의 탄생에 비해 더 신비한 거야. 이 나라에서는 한 사람의 영혼이 탄생할 때 그물을 뒤집어 씌워 날지 모하게 한다고. 너는 나에게 국적이니 국어니 종교니 말하지만, 나는 그 그물을 빠져 도망치려고 노력할 거야."
_제임스 조이스,『젊은 예술가의 초상』
어찌 보면, 책읽기는 나에게 질문들과 만나는 과정이었다. 난 언제나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에게 끌렸고, 질문들을 찾아다녔다. 삶을 신선하게 가꾸어가기 위해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답보다는 질문이라 믿으며, 답은 결국 내가 문제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찾아지고 마는 것이다.
_목수정,『월경독서』
배움이란 우리가 모르는 것이 분명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문을 열어 젖히는 순간 그 뒤로는 다시 세 개의 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_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