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전까지 뻔질나게 정치 뉴스를 들락날락거리고, 가끔씩 정치뻘글을 작성하던 syo는 19대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사라졌다. 고담 시티에 악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검은 가면 쓴 남자처럼. 비록 그 남자처럼 직접 악을 처단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세상이 너무 평온하기 때문에 웃으며 사라진 정치뻘글러 syo의 영전에 한송이 꽃을.
최근은 어찌된 일인지, 박근혜 정부 내내 한번도 읽지 않았던 연애소설을 짬짬이 읽고 있는데, 이것도 호시절의 증거라면 증거겠다.
연애소설의 매력은 추억 돋는다는 데 있다. 심지어 이런 연애를 해 본적도 없으면서 뻔뻔하게 되살아나는 추억들. 야, 이 샥스핀 사진을 보니까, 옛날에 내가 먹었던 자장면이 생각나네- 이런 말도 안되는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연애소설에는 분명히 있다.
2.
그래도 뭐가 뭐 못 끊는다고, 정치 이야기 비슷한 거 하나.
물리적 힘에 의한 권리실현이 신속하고 경제적인 수단임에는 틀림없으나, 첫째로 권리자가 힘이 센 강자임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보장은 없으며, 둘째로 실력에 의한 해결 자체가 사회평화의 교란, 파괴일 뿐만 아니라 '힘에는 힘으로' 식의 맞대결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장'의 악순환을 유발한다. 특히 매스컴 선동이나 직소, 해결사나 조폭 나아가 용역업체의 동원, 집단분쟁에 있어서 광장 데모, 사이버테러, 농성, 폭력 등 집단행동과 광장의 큰 목소리에 의한 해결은 인권침해, 사회혼란 그리고 법치부정, 혼돈(chaos) 천하가 된다.
_이시윤, 『신민사소송법』2쪽
탄핵이 인용되던 그날, 기자가 심판을 방청하고 나온 한 노인을 붙잡고 의견을 물은 일이 있었다.
"서울 부암동"이라는 소개와 함께, 이름을 올린 이 사람을 기자나 편집국에서는 모를 수도 있었겠지만, 이 뉴스를 보던 전국의 모든 법조인들, 법조인 및 유사직역 워너비들은 뿜거나 밥숟가락을 놓치거나 했을 것이다. 저, 저것은......헌법재판소 초대 상임재판관이었으며 한국 민소법의 거성 이시윤 선생님이시다!!!! 대충 하나 골랐는데 민소왕.
법과목 서술형 고사가 2차 과목으로 존재하는 시험들이 있는데, 그런 시험에서는 통상 특정 사례가 문제로 주어지면 관련된 학설부터, 판례, 자신의 의견을 주욱 서술하는 식으로 답안 작성이 이루어진다. 민사소송법 과목에서는 이시윤 선생님은 단연 독보적인 존재로, 안전한 합격을 원하는 대다수의 수험생이 이 사람의 학설을 채택하여 본인의 의견을 개진하기를 선호한다. 그런 그가, 탄핵심판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눈쌀 찌푸려지는 의견을 내놓았다가 많은 수험생들로 하여금 이시윤 학설의 지지를 철회하도록 하여 학설대립에서 늘상 반대편에 서 있는, 소수설의 대가 호문혁 교수님을 든든하게 만든다는 소문이 고시계에 암암리에 떠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 분의 저서를 오랜만에 펼쳤는데, 떡하니 2쪽부터 뭔가 엄청난 이야기가...... 어차피 시험에는 이런 거 안나오겠지만, 그냥 한 번 밑줄 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