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킬로 산길을 걸어서 갈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우리 집 뒷산에서 산길로 7km를 걸으면 남한산성 남문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네이버 지도의 의견이었고, syo의 견해는 달랐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칠 킬로의 산길이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랬다. 어제까지는.

 

어제, 아니구나, 그러니까 오늘 새벽 010분 라이더 선생님이 따끈따끈한 치킨을 들고 우리 집 현관 앞에 강림하신 그 시점에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이었다. 어제 점심나절, 된장+뚝불+카레라이스라는 신박한 조합으로 거인의 아점을 먹었더니 칼로리의 요정이 등판하여 양심을 호드라패는 거라, 그렇다면 저녁이라도 간단하게 먹어야지 싶어서 고구마를 구웠는데 굽다 보니 8덩이, 먹다 보니 7덩이. 텁텁하다고 우유도 한 사발. 그렇게까지 못됐게 쳐묵었으면 밤에는 입 닫고 잘 일인데, 하필 오랜만에 집에 온 三 녀석의 "불금은 불타는 가금류"라는 택도 없는 프로파간다에 휘말려들었던 것이다. 정작 가금류가 도착한 건 토요일이고. 금요일에 시킨 닭은 토요일에 먹어도 맛있고. 맛있는 거 먹는 배는 쉽게 불러주지 않고. 어어 하는 사이에 닭은 온데간데 없고…….

 

눈 떠보니 배가 고프지 않았다. 주인과 다르게 양심은 있는 위장. 그래서 아점은 시리얼로 간단히 처리하려 했는데, 열한 시가 되어도 열두 시가 되어도 심지어 한 시가 되어도 배가 전혀 고프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안 먹었지. 그런데 한 시 반이 되자 이놈의 위장이 안면을 싹 바꾸고 극렬 시위를 해오는 것이다. 아수라백작한테 위장이식수술 받은 줄. 결국 리바운드에 얻어맞아 늦은 점심 카레 한 솥을 조지고 만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배가 뽈록 나와서 섹시해야 할 순간(+_+??)마저 대책 없이 귀여워버릴까 봐(--????) 걱정인데…….

 

아침에 잠에서 깨면 매트리스에서 벗어나기 전에 절하는 자세에서 가슴과 배를 허벅지에 붙이고 손을 앞으로 쭈욱 펴는(요가에서 말하는 발라사나Balasana) 모양으로 몸을 잠시 풀었다가(저걸 본격적으로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일어나기 싫어서 잠깐 저러고 있는 거죠. 심지어 저 자세로 스마트폰도 한다. 음 바이든이……) 스프링처럼 팅- 하며 일어서는 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는 법 : 다리털 아저씨의 고된 아침  

 

 

그런데 오늘 아침에 배 때문에 가슴이 허벅지에 잘 안 닿는 느낌이라든가, 억지로 가슴을 붙이려고 상체를 허벅지에 꽉 접착시키니 배가 허벅지 양옆으로 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라든가 그런 끔찍한 느낌을 느꼈다. , 꿈이지? 꿈이라고 해줘 누군가. 지금 나와 같은 자세로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인조. 자세가 이러다 보니, 삼전도에서 역시 요런 자세로 삼궤구고두례를 하던 인조의 모습이 떠올랐고, 인조 하니까 남한산성이 떠오른 것이다. 그래. 가자, 칠 킬로. 그까짓 칠 킬로, 씩씩하게 나아가자


그리고 돌아올 땐 버스 타자.


한줄 요약 : 돼지처럼 처먹더니 남한산성 갔다왔네 


 

 

남한산성을 마주하니 오랑캐의 피가 끓는다!

 


저은하, 저기 저 낙하하는 것이 혹시 말로만 듣던, 드래곤볼이란 물건이 아니옵니까?

 

 

--- 읽은 ---

 


204.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사라 밀스 지음 / 임경규 옮김 / 앨피 / 2008

 

고백하자면, 알라딘의 빨간 얼굴, 마르크스 개론서를 설파하고 다니는 대표 빨강이 syo의 정체는 사실 푸코주의자였다. 그간 감쪽같았지. 좋은 스파이 활동이었어. 마르크스를 읽고 바뀐 것이 우리 집 뒷산만 하다면, 푸코는 남한산성이지. 남한산성,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갈 때는 씩씩하게, 돌아올 땐 버스로 편하게. 이 책은 추천할만한 푸코 버스 중 하나로, 현재 읽고 있는 <미셸 푸코와 현대성>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서술의 난이도가 고르고, 푸코를 비판할 만한 대목에서는 빠뜨리지 않고 비판도 해낸다. 얇은 책을 참 알뜰하게 쓰고 있다.

 

 

 


205. 고전잡담

장희창 지음 / 양철북 / 2019

 

진실로 잡담이다. 그러니까 잡스럽다는 말씀이 아니오라, 장희창 선생님이랑 편의점 플라스틱 탁자에 앉아 고전을 주제로 잡담하는 느낌이 든다. 글투 자체를 잡담식으로 쓰셔서 좀 놀랬다. 99년에 민음사에서 양철북을 번역하셨으니 연배가 적지 않으실 텐데. 생각해보면, ‘잡담이라는 제목을 단 책의 서술이 잡담체라는 사실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닌데 그리 놀랐다. 뭐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모르겠다.

 

 

 

 

--- 읽는 ---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 김은주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 김환석 외 21

미셸 푸코와 현대성 / 오생근

강성태 영문법 필수편 / 강성태

Chaeg 2020. 11 / ()(월간지)편집부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 이규리

 

 

 

--- 갖춘 ---

감시와 처벌 / 미셸 푸코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 / 미셸 푸코

정신의학의 권력 / 미셸 푸코

마르크스의 생명정치학 / 자크 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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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1-07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꺅 일곱 개 모아서 소원 이루어주세요.

syo 2020-11-08 11:03   좋아요 1 | URL
20대 중반에, 당시 사귀던 여친과 통화중에 밝힌 제 드래곤볼 소원이 일부일처제 폐지, 다부다처제 도입- 이었습니다. 일찌감치 미친놈이었네요. 이거 나중에 페이퍼로 써야겠다 ^-^

반유행열반인 2020-11-07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한산성 일곱 번 가시라구요 ㅋㅋㅋㅋㅋㅋ칠전도

syo 2020-11-08 11:04   좋아요 1 | URL
남한산성 남문 성루에 올라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제일 먼저 했던 말이 이겁니다.
˝아, 이제 다신 안 와.˝

반유행열반인 2020-11-08 11:12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한 번도 안 가 봤어요.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으로 본 게 다야...

syo 2020-11-08 11:18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영화 속에서 처음 봤지요. 홍
상수 영화 속 풍경이 늘 겁나 매력 없이 뻣뻣하잖아요. 그래서 가봐야지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하나 2020-11-07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좋았어요. 거기서 푸코는 언제나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해왔다는 대목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syo 2020-11-08 11:08   좋아요 1 | URL
대목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유익한 능력이네요..... 부럽다.
저는 기억력이 후져서, 개론서를 여러 권 연속으로 읽어서 회독수를 늘리는 전략만이 답이더라구요....

하나 2020-11-08 11:41   좋아요 0 | URL
저도 막 네 번씩 읽어요... 이제 그 수밖에 없다......한 번만 읽어도 막 글도 쓰고 기억에도 강렬하게 남는 건 끝난 듯해요(열반인님 아직도 되는 거 같아! 부럽다~)

syo 2020-11-09 13:20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될놈될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부럽다 반님 2222

카알벨루치 2020-11-07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심은 있는 위장...이런 말은 어디서 채굴했습니까 ^^ㅎㅎ

syo 2020-11-08 11:08   좋아요 0 | URL
위장에서 꺼냈나봐요 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11-07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성태 영문법 필수편_ 궁금합니다!

syo 2020-11-08 11:08   좋아요 0 | URL
꼼꼼히 읽고 말씀드릴게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0-11-09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규리 시집 좋아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저 시집에 <많은 물> 있지요? 좋아. 애정하는 시집입니다. 애정하는 시에요. 많은 물.

syo 2020-11-09 13:20   좋아요 0 | URL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 있는 시지요? 저도 두 번째 읽는 중인데, 딱 보고 생각했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