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지만 너는 정말 2
1
지금 syo의 등 뒤에선 三이 푸시업을 하고 있다. 12개를 도전한다.
10개에서 실패했다.
바닥에 엎어져서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이게 다 코어 근력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갑자기 플랭크를 선언한다. 그렇다면 1분씩 3세트 정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1분은 껌이 아니냐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고는 자세를 잡는다.
25초에서 실패했다.
2
syo가 뭐라고 면박을 주기도 전에 먼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더니, 이게 다 지루해서 그렇다며 뭔가를 보면서 하면 모든 게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더니 오늘 빌려와 옆에 쌓아놓은 책 가운데 맨 위의 책을 꺼낸다. 제목 : 어떻게 나를 지키며 살 것인가
그건 아니지 않나?
3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그건 아닌가 보다.
폰을 가져오더니 유튜브에 접속, 잠깐의 검색 시간을 거치고 바닥에 내려놓은 액정 위에는 펭수가…… 펭수가 면접을 보는 모양이었다. 플랭크를 하고 있는 三의 눈 바로 아래에서 펭수는 뽀로로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며 면접관들을 당황시키고 있었다. 왜요? 펭귄이라서 안 된다 이거예요? 뭐 이런 식의 대사를 칠 때쯤, 三은 자세를 무너뜨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46초 46. 미쳤다. ‘지루해서 플랭크가 안 되는 거다 이론‘이 참이란 말인가?
4
그것도 이내 지루해졌는지 바닥에 앉아 빈둥거리는 三에게, 그렇게 갖출 거 다 갖추고 키울 거 다 키워가며 푸시업 할라치면 올해 안에 몇 개 못한다고, 오늘은 총량 30개만 하는 걸로 하자며 설득했더니 뜻밖에 쉽게 수긍한다. 다시 자세를 잡고 9개를 성공한다. 온몸이 다 붉다. 9개짜리 혈액순환이 저 정도라니 믿기 어렵다. 게다가 말이 많아진다. 얘가 뭘 잘못해도 변명하는 애가 아닌데, 운동만 하면 온갖 창의적인 핑곗거리가 샘솟는다. 푸시업과 창의력의 관계란.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 syo가 푸시업을 하고, 다시 그의 차례가 오자 그는 온 힘을 다 바쳐 무려 3개를 성공한다. 그리고는 뒤돌아 화장실로 들어가는데 눈물을 훔치는 눈치다. 기다리는 동안 syo가 푸시업을 하고, 마칠 때쯤 그는 화장실에서 나온다. syo가 말한다. 8개 남았으니까, 니 마음대로 해라. 4개씩 두 번 하든가, 1개씩 8번 하든가. 자존심 그런 거 버리면 편하다. 三은 말없이 자세를 취하더니, 믿을 수 없는 스피드로 단번에 8개를 성공한다. 와 미쳤네. syo가 말한다. 니 대체 화장실에서 뭐 했는데. 三은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털썩 의자에 앉아 세상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푸시업 30개를 4번에 나눠서 하는 남자의 자신감이 저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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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 펭수는 플랭크 능력을 향상시킨다.
2. 푸시업을 하면 푸시업을 못하는 신박한 핑곗거리를 생각해내는 창의력이 고양된다.
3.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면 푸시업 능력이 두 배 이상 증폭된다.
4. 쟨 정말 희한한 놈이다.
6
장 보고, 빨래하고, 밥 짓고, 설거지하고, 청소했을 뿐인데 주말이 가루가 되었다.
7
연수원에 독감이 돌고 있다. 하루에 한 명씩 친구들이 사라진다. 언제 내 차례가 올지 몰라 두려워하는 중이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어쩐지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심하지는 않지만 감기 하면 떠오르는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는데, 독감일까봐(독감이면 당장 오늘부터 연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부랴부랴 병원에 가보았더니 의사 선생님 말씀이 대충, 이 정도 가벼운 증상 가지고는 독감 검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 한 이틀 두고 보고 더 많이 아프면 그때 검사를 해 주겠다, 뭐 이랬다. 일단은 독감이 아닌 것으로. 다시 연수원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운 건지 가벼운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지금도 컨디션은 좋지 않고, 약을 먹어도 그다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레 독감을 의심해보는데, 수요일 쯤 진단받아봐야 그 뒤는 어차피 연휴라서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대체 아프고 싶은 것인가 아프기 싫은 것인가?
--- 읽은 ---
12. 도시를 읽는 새로운 시선 / 최재정 : 122 ~ 214
: <도시를 읽는 새로운 시선>이라는 제목의 방점은 아마도 ’새로운‘에 찍힐 것인데, 그렇다면 도시를 읽는 ’낡은‘ 시선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최소한 그 낡은 시선이라도 갖춰 두어야 이 책의 시선이 새로운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syo는……. 문외한의 슬픔은 어지간한 수준의 책을 만나면 좋은 책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고, 어지간히 괜찮은 책의 특징은 문외한에게 가치의 유무를 쉽게 파악 당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13. 커피 연구소 / 숀 스테이먼 : 105 ~ 215
: 이건 과학책입니다. 레알 과학책.
--- 읽는 ---
맛있는 교토 가정식 / 정혜인 : ~ 120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송찬호 : ~ 60
서울 선언 / 김시덕 : 122 ~ 266
세상을 알라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 331 ~ 489
그놈의 소속감 / 김응준 : ~ 134
보고서의 법칙 / 백승권 : ~ 179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 케이시 윅스 : ~ 63
--- 도착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