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말에게 물을 물에게

 

 

1

 

말로써 말을 마주하여 마음을 키우는 일과 마음으로써 마음을 마주하여 말을 키우는 일이 나선을 이루며 서로를 감아올리다 보면 사랑에 도달하기도 한다. 나의 말이 강낭콩 줄기라면 너의 말이 지지대가 되고, 너의 말에게 나의 말도 그렇다. 마음 또한 그렇다. 그리고 말과 마음이 서로에게 역시 그렇다. 그렇다.

 

그런 사랑은 쉽고 비싸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내가 언어에 예민할수록 다치지 않게 나를 부드럽게 보듬는 말을 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네가 언어를 잘 다룰수록 내 말이 너를 충만하게 만들기가 어렵다. 서로의 언어가 서로에게 한껏 가지런한 데 놀라고 뿌듯해하는 두 사람을 냉정히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어느 한 사람이(더 유려하거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 전적으로 상대에게 맞춰주고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 객관성을 잃거나 목적을 가지고 상대를 허용하기 전에, 그러니까 마음이 생기기 전에 먼저 그가 가진 말과 글을 높이 평가하고, 주파수의 공명 상태를 확인하고, 그 후에 어떤 마음이 생겼다면 그제야 가능할 수도 있는, 어렵고 드문 형태의 사랑일 것이다.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살기로 선택한 것인지 지금에 와서 짚어내기는 어렵다.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어쨌든 그런 사람이거나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니까 그런 사랑을 생각한다. 내 말에 물러서지도 움츠러들지도 않고 선연히 그리고 선선히 자신의 말을 건네 나를 물러서지도 움츠러들지도 않게 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생각한다. 말이 마음을 만들고 마음이 말을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뭐가 뭐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진실을 신봉하는 사람. 말을 업신여기지 않고 마음의 출신을 남루하다 비난하지 않는 사람. 지나친 아름다움도 지나치지 않은 진실로 묶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면 더 바라지 않을 것 같다.

 

 

 

2

 

한동안 바다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쩌면 여행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 읽은 ---

다 이아리 / 이아리 : 197 ~ 439

: 이렇게 가벼운 종이 한 장 한 장이 너무 무거워 넘어가지 않는다. 아마도 진부한 말이 되겠지만, 이 책이 그냥 무겁기만 하다는 건, 무섭지 않다는 건, 내가 물고 태어난 거대한 특권일 것이다.

 

우리는 폴리아모리라 한다 / 심기용, 정윤아 : 155 ~ 250

: 더 좋은 책일 수 있었고, 어쩌면 더 좋은 책이어야 했다. 첫발을 내디딘 저자들이 사랑과 공부를 계속 이어나가 점점 더 좋은 책을 만들어 주시기를.

 


--- 읽는 ---

라디오 데이즈 / 하재연 : ~ 54

일의 기본기 / 강재상, 이복연 : 100 ~ 210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 63 ~ 156

우리는 책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 안드레아 게르크 : 95 ~ 185

금융 지식이 이렇게 쓸모있을 줄이야 / 김현섭 외 : ~ 111

한 권으로 끝내는 경제학 명저 50 / 가게야마 가츠히데 : 113 ~ 209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 ~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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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2-23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과 마음의 힘을 믿어요. syo님도 그런 분이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지가...이 년 됐네요. 임용 전에 연수가시면 막 바다 앞에서 청춘을 불태우시는 거 아닐까요 ㅎㅎㅎ

syo 2019-12-24 21:04   좋아요 1 | URL
불태울 청춘이라는 게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은 거 있다면 언젠가 집중적으로 태우기 위해 고이 모아놓고만 싶습니다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12-24 21:43   좋아요 0 | URL
남은 거 없어요??!!!

syo 2019-12-25 14:36   좋아요 1 | URL
찾아볼게요. 있어도 쥐뿔 있을것 같긴 하다.

추풍오장원 2019-12-2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리? 아모르? 그래서 폴리아모리로군요 ㅎㅎ syo님 덕분에 평생 모를뻔한 책들 많이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정규발령이 언제신가요? 편한데 가셔야 하는데..

syo 2019-12-24 21:05   좋아요 1 | URL
제가 또 그런 역할을 하였다니 뿌듯합니다 ㅎㅎㅎㅎ 워낙 잡스럽게 읽어대다보니....
아, 발령은 1월이라고 합니다.

공쟝쟝 2019-12-23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의 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정말 이상적인 관계로군요.
폴리아모리 책은 저도 읽었는 데, 예전에는 둔탁하게 인식되었던 그 사랑의 모양이 요즘들어서는 조금씩 더 다양한 각주들을 많이 달 수 있을 것 같아요. ㅎㅎ

syo 2019-12-24 21:06   좋아요 0 | URL
아직은 일종의 메니페스토에 그치는 것 같이 아쉬운 데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뭐 제가 아는 게 쥐똥이라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지만요 ㅎㅎㅎㅎ 그렇다고 두 번 읽을 책은 또 아닌 것 같고 ㅎㅎ

서니데이 2019-12-24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syo 2019-12-24 21: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올해는 좀 격조했군요.
서니데이님도 늘 그자리에 꾸준하게 계셔주셔서 올해도 참 든든했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초딩 2019-12-24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 님 서재의 달인 선정 축하드려요~
메리 크리스마스요~

반유행열반인 2019-12-24 21:44   좋아요 1 | URL
초딩님 서재의 달인 북플 매니아 축하드립니다. 막 엉뚱한 데서 축하함...

syo 2019-12-25 14:35   좋아요 0 | URL
아이고 초딩님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달인이 되었군요 제가 또 과분하게스리 ㅎㅎ
기분은 좋네요^-^ 초딩님도 축하드립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