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 본다》 읽어 본다
난다 출판사 《읽어 본다》시리즈 / 전 5권
1
일단 그들을 위한 변론으로 시작할까 한다.
이적료가 천억을 훌쩍 넘는, 아마도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를 구사할 것 같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있다고 치자. 게임이 있는 날 아침, 푹 자다 깬 그는 상체를 일으키면서 어쩐지 몸이 깃털처럼 가벼운데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폭발적인 에너지로 충만함을 느낀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 그가 어뭬리컨블뤡퍼슽흐를 만들 심산으로 달걀을 깼는데, 쌍란이다. 처음이군, 하며 하나를 더 깼는데, 대박, 이번에는 노른자가 세 개다. 그는 어쩐지 오늘 경기에서 다섯 골을 몰아치고야 말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에 소스라친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내리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세요? 택배요~ 아, 출근 전 택배라니, 오늘 무슨, 곗날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베네치아의 수많은 굴다리 중 어딘가에 은거하여 한 땀 한 땀 손으로 빚어낸 축구화를 일 년에 딱 두 개만 만들어 세상에 내 놓는다는 63년차 축구화 장인, F. 슈마허(81)씨의 눈부신 2018 S/S 시즌 신상이었다. 아, 5년 안에 올 지조차 불투명했던 이게 마침 오늘 오다니. 그는 이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경기장도 나쁘지 않았다. 그가 데뷔 경기를 가진 곳으로, 그날도 그는 2골 1도움의 맹활약을 펼치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오늘, 내 인생 최고의 날을 만들어 보는 거야. 축구화 끈을 꽉 조이며 그는 다짐했다.
다섯 골을 몰아칠 물적 심적 운적 모든 준비가 끝났다. 온몸의 관절을 한 번 점검한 후, 그는 그라운드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단호한 눈썹의 주심이 그를 불러 세웠다. 오, 그 축구화 정말 예쁘군요. 슈마허인가요? 네, 이번시즌 신상이지요. 축하합니다. 당신은 그걸 가질 자격이 있지요. 감사합니다. 헌데,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참 아쉽습니다. 네? 음, 당신은 오늘 경기에서 상대방 페널티 박스 바깥쪽 5m 지점을 중심으로 하여 가로 세로 2미터 영역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씀이세요. 네, 비록 말 같지도 않은 말씀이지만 당신이 따라야 할 말씀이기도 합니다. 무슨 소리야, 당신은 내게 이럴 자격이 없어! 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오늘은 자격이 있는 누구라도 당신에게 똑같은 지시를 할 겁니다.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오늘 아침 당신의 컨디션, 다섯 개의 노른자, 굿모닝택배, 슈마허 신상, 그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듯이요. 왓더훡. 당신이 내게 이러는 걸 세상 사람이 다 알게 하고 말겠어! 이런, 내가 당신에게 이러는 걸, 당신은 아직 몰랐단 말입니까?
그날 경기에서 그는 2x2미터의 작은 영역 안에 갇혀 동료들의 공격의 맥을 끊거나, 심한 경우 상대 수비에 힘을 실어주는 등, 팀이 4:1로 대패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들이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는 것은 다 분량 문제다. “이 책들이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는 것은 다 분량 문제다.”라는 단 한 마디의 말을 재미없게 하지 않기 위해, syo가 사용한 저 막대한 분량을 보시라구요. 물론, 작은 재미를 얻기 위해 어마어마한 분량의 신소리를 해대야 하는 건 syo의 재능이 부재한 탓이다. 그 말을 뒤집으면, 실제로 짧고도 재미있는 글을 쓰는 건 어느 정도 재능의 영역에 발을 걸쳐 있다는 뜻이고, 그런 재능, 그런 돈 되는 재능은 희소하다. 이 저자들은 다방면에서 훌륭하시지만, 최소 분량 최대 재미의 재능까지 갖추지는 못한 듯 보인다. 최소한 이 책들에서는 엿볼 수 없었다.
딱 정해진 것은 아닌 듯하지만 평균적으로 한 권당 한 쪽, 책 전체의 부피와 예상 가격을 고려했을 때 저자들은 그 좋은 책들을 열심히 읽고도 평균 한 바닥의 지면밖에 허락받지 못했다. A4 한바닥도 아니고, 무시 못 할 좌우 여백에 읽은 책 제목이 차지하는 면적까지 고려하면 그들의 플레이는 점점 더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왼쪽 오른쪽 페이지를 각각 한 명씩 맡아 쓴 책들은 오죽하겠는가. 분량에 쫓겨 머리와 꼬리와 몸통의 반절마저 다 쳐내기 급급한 내용 요약과, 반드시 첨언하고 싶은 몇 마디 찬사가 자리를 잡고 나면, 그만큼 재미와 감동이 요동칠 공간이 협소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훌륭한 선수가 모든 조건을 갖추고 경기에 임해도, 게임 자체는 지는 수가 생긴다.
2
이 다섯 권의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머리통을 두들긴 생각은 아, 겸손해야겠다, 였다. 그리고 이제 모니터에다가 “겸손해야겠다”고 써놓고 보니, 겸손이라는 것 자체가 잘난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syo같은 먼지가 감히 겸손 님을 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것 자체로 벌써 겸손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정정합니다. “깝치지 말아야겠다.”
가장 큰 소득은 아무래도 스스로의 미미함을 안 것이겠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평소에도 꼭 자랑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사실 그 자체로 부인한 일은 별로 없으며 심지어 스스로 “나는 책을 좀 많이 읽는 편인데,” 하며 말길을 놓는 일도 꽤 된다. 도대체 어디서 싹튼 호연지기로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첫째, syo는 무직(無職)인데, 독서에 있어서만큼은 무직은 곧 무적(無敵)이다. 둘째, 최소한의 노력으로 독파할 수 있는 쉽고 얇은 책을 주로 골라서, 읽은 책 카운트 올리는 데 집중한다. 셋째, 책 많이 읽는다고 자랑하는 데에 리뷰 쓰기란 투입 시간 대비 극히 저효율적인 행동이므로 그거 쓸 시간에 얇은 책 한 권 더 읽고 자랑질의 총알이나 만든다. 이렇게 운용 가능한 모든 졸렬한 전략전술을 총동원하여 최대치로 어디 한 번 뽐내 보자꾸나...... 이래저래 부끄러운 인생이다.
1일 1독의 목적물로 이 양반들이 고른 책들은 잔꾀머신 syo의 낯짝에 큰 불 놓기에 충분할 만큼 분량과 함량을 고루 갖춘 작품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syo처럼 무적(無職)도 아닌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밥벌이 하는 도중에, 비 오는 날이면 비 온다고 1권, 비 안 오는 날 안 온다고 또 1권 꼭꼭 읽어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읽는 족족 쓰는 출석률 100%의 매일리뷰라니, 이쯤 되면 놀라움을 넘어서 무서울 지경이다. 그렇게 빚어낸 이 독서괴물들의 365일 기록을 팔랑팔랑 읽고 있으면 곤장 맞는 기분이 된다. 감히 네깟 놈이 독서가를 자칭하고 다닌단 말이더냐! 여봐라, 당장 저 미미한 자를 형틀에 묶고 미미 몽둥이로 장 365대를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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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 남궁인
syo는 처음 남궁인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싫었다. 의산데 글도 잘 쓴다고 하니까, 싫었다. 책이 잘 팔린다고 하니까, 또 싫었다. 의사라는 타이틀이 그에게 역량 이상의 판매고를 가져다 준 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더, 싫었다. 아니, 이 양반은, 직업도 훌륭해, 그 와중에 책도 많이 읽어, 그래서 글도 잘 써, 그래서 책도 잘 팔려, 심지어 잘 생겼어, 피아노도 잘 친다는구먼!(이건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입니다) 와, 이렇게까지 나의 열등감을 건드리는 인간은 이제껏 없었다! 싫어해야지. 이유도 근본도 없이 일단 싫어하자. 싫어하고 말테다..... 뭐 이런 졸렬하면서 진부한 메커니즘. 그래서 그의 산문집을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인기가 많아서 도서관에 돌아오질 않아요.....) 추후에 읽게 될 날을 대비하여 미리 눈에 쌍심지를 구비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권을 읽고 나니, 입장이 상당히 애매해져 버렸다. 아니, 잘 쓰는데, 분명히 syo같은 시정잡배보다야 잘 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또 아득바득 열폭할 만큼은 아닌 거라...... 그래, 어차피 내가 방구석에서 키보드 붙들고 혼자 좋아하건 싫어하건 남궁인 선생 앞날에 뭐 달라지는 게 있겠어. 그냥 이제부터 좋아하자. 좋아하기로 해. 그래서 좋아하기로 했다.
‘책 읽은 책’에 대해 한줄 평을 남기며 syo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요지는 “알라딘에도 이만큼 쓰는 사람 수다하다” 정도 되는 말이다. 그동안 몰랐지만, 사실 당연하게도 그 말은 syo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다. 많은 이웃들이 같은 맥락의 평을 이런 책 저런 책에 달만큼, 알라딘이라는 판이 만만치가 않다. 그 결과 알라디너들에게 ‘다른 알라디너’는 ‘책 읽은 책’을 평가하는 일차적인 잣대로 기능하는 것 같다. 물론 그 잣대는 알라디너들 각자가 맺은 이웃의 수와, 그 이웃의 내공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다. 이 책은 syo가 가진 일차적 잣대에 걸쳤거나 넘어도 아슬아슬 턱걸이로 넘은 수준이다. 잘 된 글과 아닌 글 사이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 바쁜 와중이라 구색만 맞추고 넘어갈 수밖에 도리가 없었는지, 짧은 글들 가운데는 이 책을 읽지 않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써도 이보다는 더 길고 그럴싸하게 쓸 수 있겠다 싶은 글도 몇 있었다. 읽고 쓴다고 써도, 아니 얘 이거 지금 읽고 쓴 거 맞아?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독후감 밖에 못 쓰는 인간 syo는, 반면에 또 안 읽고 썼는데도 읽은 건지 안 읽은 건지 애매한 느낌이 들게 하는 얍삽이 또한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으하하하하.....
읽은 척하면 됩니다 / 김유리, 김슬기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 장으뜸, 강윤정
독서에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부부 독서가, 부부 저자라는 구도는 대체로 생각하기만 해도 배가 다 부른 훈훈한 상상을 동반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달리 더 할 말이 없다. 아이 참, 큰일이다. 바로 앞 문단이라도 복붙할까..... 복붙한 걸로 칠까.
작가님들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셨을텐데 제가 멸망시켰네요.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 장석주, 박연준
일단 장석주의 등판 자체가 반칙 같다. 이 기획에 참여한 8명의 저자가 모두 독서에는 제각각 가락이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그래도 이 분야는 장석주에겐 전공이다. 일단 경력부터가 좀 다르잖아. 장석주 한 명이 낸 책이 나머지 일곱 명이 낸 책 수를 합친 것의 5배쯤 될 텐데. 심지어 장석주가 시인이라구요? ‘서평가’ 아니었나요? 하는 사람조차 있다(있을 것이다..... 솔직히 미확인입니다. 죄송합니다.) 8명의 저자들이 매일 한 권씩 읽고 기록을 남기는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을 때, 아마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장석주뿐이었을 것이다. 하루 한 권이라고? 한 끼 한 권이 아니구요?
게다가 장석주 혼자가 아니라, 박연준까지 출동했다면? 이건 리그(이 시리즈의 저자 집단 8명을 말합니다)에서 제일 잘 던지는 투수와, 리그에서 제일 잘 치는 타자가 한 팀에 있는 것이고, 나머지 저자들에겐 거의 민폐에 가깝다(두산 베어스는 반성하세요. 그렇게 막무가내로 잘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 책이 제일 기대만발이었다.
역시 기대대로 제일 좋았다. 하지만 책 자체 엄청 좋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일단, 역시 서평에서라면 장석주는 잘한다. 너무 잘한다. 너무 잘해서 마치 기계 같다. 그러다보니 독자의 심장을 노리고 쓴 것으로 보이는 대목조차 가슴을 치지 않는다. 아름다운데 울림이 적다.
너무 많이 알아서 독자를 주눅 들게 한다. 가뜩이나 좁은 지면을 다른 데서 읽은 책 이름을 나열하는데 사용한다. 분량 덕에 많이 줄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 소설가, 문장가, 철학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습관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 이름만 늘어놓고 보아도 아름다운 존재들임에는 분명하나, 장석주가 그 이름들을 주욱 읊으면서 느꼈을 그 고양된 감정을, 독자들은 그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실제로 이 책의 매력은 거의 박연준의 글에서 나온다. 이 시인의 글이 이 책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박연준이 없었다면,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오로지 ‘정보’만을 얻고 있구나, 어차피 오래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일찍 내려놓았을 것이다.
잠깐,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빅 픽쳐가 아닐까? syo가 박연준의 따뜻한 글에서 큰 매력을 느낀 것처럼, 어느 누군가는 장석주의 서늘한 글에 감동할 것이다. 결국 비슷한 글을 엮어 누군가에겐 사랑받고 또 누군가에겐 사랑받지 못하는 책이 아니라, 모든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 일부러?! 그렇다면 대단하시군요. 이 완벽한 포지셔닝이라니.....
꿈보다 해몽일지도. 워낙 두 사람 다 좋아하다보니 그만.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 요조
처음 책을 휘리릭 넘기며 탐색전을 펼쳤을 때는, 요고 요고 요조 요고 응? 요고 봐라 요고 요조 요고 응? 이런 마음이었다. 가뜩이나 분량도 적은데, 읽은 책 사진을 직접 찍어서 꽝꽝 박아 놓았어? 와, 요 얍삽이 좀 보게, 요고 요고 응? 이랬던 것이었다(나여, 자네는 어쩌다 이렇게 삐뚤어지고 말았는가.) 그런 이유로 이 책을 가장 마지막에 읽은 것이다. 어차피 네 권쯤 읽으면 기력 떨어져서 마지막 책은 꼼꼼히 안 볼 것 같은 예감에. 부당하고 불공정한 대접.
그랬는데, 처음 며칠 치를 읽다가 소름이 돋았다. 잠깐, 이거..... 나잖아? 난데? 어, 내가 썼나? 하면서 책 표지를 다시 펼쳐 저자 이름을 확인하고 돌아오기까지 했다(당연히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분명히 독후감은 독후감인데, 독(글자크기 3.0포인트) 후감(글자크기 254포인트) 인지라 읽으면 읽을수록 그 사람이 읽은 책보다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그런 독후감이었던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면서 내가 다 불안해졌다. 명백히 책3인7인데, 이런 걸 책 읽은 책이라고 펴내도 되는 거야? 그리고 84페이지에서 만난 『서평 쓰는 법』에 대한 글 첫머리에서 드디어 빵 터지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역시 거짓말입니다. 새빨갛지는 않지만.)
얼마 전 어떤 책에 대한 내 리뷰가 ‘까였다’. 책의 줄거리가 그 속에 충분히 들어가 있지 않아 독자들이 책에 대한 정보를 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엄청난 부끄러움 속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에 따르면 독후감과 서평은 엄밀히 같은 말이 아니라고 한다. 리뷰-독후감-서평 다 같은 말로 쓰곤 했던 나는 초반부터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독서라는 것의 완성은 비로소 ‘서평’에서 이루어진다는 책의 분명한 주제는, 나에게 양치질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운동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해야 하는 거 아는데도 너무나 하기 싫은 모든 것, 그 세계에 서평 쓰기도 있는 것이었다. (84)
이 한 문단에 syo의 모든 것이 있었다. 책 이야기 쓰는 공간에서, 책 이야기 쓰는 척, 써 놓고 보면 다 책 이야기는 간데없고 내 이야기인 syo의 글들. 그것조차 쓰기 싫어서 안 쓰고 또 안 쓰는 나날들. 10권을 읽으면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는 9권의 책들이 모종의 장소에 모여, 언젠가 우리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로 syo 저 자식의 명치를 세게 때리자며 혁명 거사를 도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다른 이웃들의 그야말로 리뷰 같고 더 나아가 좋은 리뷰 같은 리뷰들을 만날 때마다 자꾸 작아지는 자존감......
역시 세상은 넓고, syo와 비슷한 약점이 있는 사람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어지는 글들을 읽는 눈이 어찌 따뜻하고 촉촉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 그래. 안다, 알아. 내 다 안다...... 우리는 각 잡고 쓰지 않으면 늘 이런 글이 나오는 것이지. 이 무슨 슬픈 운명이냐, 이러면서 혼자서 동질감을 형성하고 자빠졌더니, 금세 책이 끝났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것? 그것은 요조를 향한 나의 사랑이지. 독자에게 사랑을 심어주는 책은 위대하다.....고 하고 싶긴 한데, 솔직히 뭐 그 정도는 아닙니다.
4
결국 꾸역꾸역 다섯 권을 읽으며, 다른 책 다섯 권을 읽은 것에 비해 얼마나 더 괜찮은 인간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페이지에 오래 머무르면서 활자를 한 자씩 곱씹은 데도 있었지만, 지겨움이 폭풍처럼 몰아쳐 책을 집어 던진 때도 있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같은 작가의 글인데도 기꺼웠다가 고까웠다가 했다. 다섯 권이 도서관에 나란히 꽂혀 있는 풍경이 어떤 기이한 욕심을 자극하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독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치킨을 너무도 숭배하는 syo는, 나는 매 끼니 닭을 처 먹여도 감사히 잘 먹을 놈일 거라 이제껏 굳게 믿어왔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다섯 끼 연속으로 먹는다면 후라이드-양념-매운양념-간장-눈꽃치즈의 5개 버라이어티 구성으로 내놓은들 간장쯤에서 질리고 눈꽃치즈에서 쳐다보기조차 싫어질 수도 있겠다는, 그런 자기 인식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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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체크한 것은 아니라서 누락되었거나 틀릴 수도 있는데, 다섯 권의 책, 여덟 명의 저자들이 모두 읽은 책이 몇 권 있었다. 대충 기억나는 것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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