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
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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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저 자신도 잠을 많이... 구체적으로 하루의 1/3을 수면으로 채우는 남편을 잠탱이라고 놀리며 적게 자는 나 자신을 대조적으로 몹시 생산적이니(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부지런하느니하며 스스로 추켜세우는, 대표적인 수면 혐오자중의 하나였습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나름 개과천선했기 때문이고요. 수면찬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는 말자 정도로 개종했다고나 할까요. 고백하건대 이 책이 계기가 된 건 사실이나, 하루 세 개의 도시락과(심지어 간식도 싸가야 한다) 부식으로들 먹는 밀가루 기반 스낵류를 수차례 구워내고 한참 뛰노는 아드님의 놀이터 라이프를 하루 한 시간씩 함께 버텨내는 생활은 일곱 시간 미만의 수면으로는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절로 일고여덟 시간의 수면을 취하게 됐음도 부정할 순 없군요. 어쨌든, 원인이 뭐가 됐든...


친구들이 종종 집에 드나들곤 하는데,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었어서 우리말을 꽤 하는 친구가 책 제목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더랬습니다. 왜 자냐니 뭐래... 왜 자기는 왜 자 졸리니까 자는거지... 라면서 한참동안 터진 웃음보를 그치지 못해 애를 먹었어요. 그렇긴 해, 졸리니까 자는 거지.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게 웃고 잊어버리는 일들에 호기심을, (솔직히 호기심은 불만 붙이고 연구는 인내심이 하지... 불만 지르고 댕기는 호기심아 니가 하는 일이 뭐냐 대체) 갖고 덤벼드는 과학자들이 있어서 미지의 바다에서 뭍으로 끌려나오는 신비한 지식들이 얼마나 많으냐 이 말입니다. 잠, 까이꺼 최소한으로 자는 것이 현대인의 미덕이지, 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우리에게, 얼마나 심각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지, 얼마나 소름끼치는 연구 결과를 들이밀면서 애써 알려고 하지 않던 현실의 많은 일들을 설명하고 있는지를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토록 대단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저자의 수고로움에 감사하는 뜻에서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나머지는 책을 읽어보셔야 돼요, 하는 게 인지상정이기도 하겠고요. 여튼 백문이 불여일독입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들 중 하나로 기억하는 것은 초반부에 등장하는 약물실험입니다. 실험내용은 간단합니다. 거미를 여러 종류의 약물에 노출시켜놓고 거미가 잣는 거미집을 관찰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해롭기 짝이 없어 법으로도 금지하고 있는 그 유명한 약물들- 필로폰, 마리화나 등등의 유명 마약을 모두 제치고 카페인이 1등을 먹습니다. 가장 거미집 같지 않은 거미집을 짓는 순서로 등수를 매길 때 말이죠. 합법적이고,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미성년자에게도 간혹 허용하기도 하는 바로 그 카페인이요. 


두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건 이겁니다. 

10대들의 뇌성숙과, 그 길 끄트머리에 기다리고 있는 전두엽- 즉 합리성의 거주지까지 완전히 성숙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바로 잠이라는 거예요. 자정 넘어서까지 학원 숙제에 매달리게 두는 것은 정말... 속상한거죠... 이것도, 가슴 아프게도 동물 실험으로 증명됐지만, 이 시기의 충분한 수면을 박탈당하게 되면 뇌 연결 성숙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나, 아직 연구중이기는 하지만서도 이미 나온 결과만 보자면 청소년기 수면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렘수면의 결핍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금 두려워도 하는, 어떤 질환의 발생률과도 매우 유의미한 상관성이 있고요. 


하나 더. 수면은 뇌의 학습 용량을 복구합니다. 즉 수면시간이 여섯 시간 아래로 줄어들면 수명 방추가 정상적으로 제공하는 이 놀라운 학습 혜택을, 못 받게 됩니다. 건강에만 좋은 게 아니라, 돈도 안 들면서 학습 능률을 높일 수 있는 엄청난 메리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잠자는 시간과 깨어있는 시간을 대조해 기억을 단단히 굳히는 데 더 혜택이 큰 쪽을 알아보는 실험은 이미 1924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이 실험 결과는 늘 재확인됐어요. 즉 잠으로 보낸 시간이 새로 학습한 지식을 저장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뜻입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새로 입력된 정보는 단기 저장소인 해마에 머무르다가 그냥 잊혀지고 맙니다. 수면은 이 정보들이 신피질의 장기저장소로 옮겨가도록 돕습니다. 이것은 동물 실험도 아니고, 실험 참가자들의 MRI스캔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 미묘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잠이 지금껏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적이라는 점이었다. 20세기와 21세기에 했던 가정들과 달리, 잠은 낮에 배운 모든 정보를 전체적으로 무차별적으로(따라서 너저분하게)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잠은 기억 증진에 훨씬 더 식별력을 제공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강화하거나 그렇지 않을 정보를 추리고 고를 수 있다. -179쪽


사실 나는 고고하기 그지없는 교육 기관이 자신이 계속 써 온 안 좋은 시험 방식을 그 특집 기사 하나로 180도 바꿀 것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그런 고고한 기관을 두고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기존 이론, 신념, 관습이 바뀌려면, 세대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대화와 싸움은 어디엔가에서든 시작되어야 한다. -227쪽


그러니...

잠을 잡시다. 잠을 재웁시다. 충분히, 깊게, 넉넉히 잡시다. 양질의 수면이 사회 전반에 끼치는 긍정적인 -경제적인 이득도 포함하여- 영향력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책에 나와 있는 그 많은 실험과 연구 결과를 일일이 인용할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여기서 줄여야겠어요. 다만 저자가 내내 강력한 증거들과 더불어 주장하듯 최고 저렴(공짜잖아요!)한, 최고의 혜택들 -일부 속물적인 관점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을 제공하는 잠을 도로 삶에 불러들이기 위해서, 더 확실한 신념과 설득의 근거를 찾고자 하는 분들께 두 손 받들어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책이 좀 두껍고,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질 경우를 대비하여 저자의 서문 중 가장 상냥하고 친절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일종의 포기 선언인데, 다른 대부분의 저자들과 달리 나는 독자가 이 책을 읽다가 졸음이 와서 잠에 빠져든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주제와 내용을 고려할 때, 나는 독자가 그런 행동을 하기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바다. 잠과 기억의 관계에 관해 내가 아는 바를 토대로 판단하자면, 독자가 잠이 든다는 것은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머릿속에 통합하고 기억하려는 충동을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니, 나로서는 가장 큰 찬사를 받는 셈이니까.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동안 의식의 흐름이 출렁이는대로 마음껏 의식의 안팎을 오가시라. 나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을 것이다. 정반대로, 기뻐할 것이다.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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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 - 책을 무기로 나만의 여행을 떠난 도쿄 서점원의 1년
하나다 나나코 지음, 구수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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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블로그를 훑어보는 기분이었다는 거죠...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어려운 일인지 짐작은 가지만 (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번역하는 것만으로도 머리 쥐어뜯는 사람을 아주 가까이서 봤어서), 그래도 책으로 출판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아주 빵빵 터지게 해서 엄청 웃게 해주든가, 나만 이런 생각을 감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위로를 얻고 연대를 느끼게 하든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전해준다든가, 편협했던 생각의 방에 문짝을 하나 더 달아 다른 시야를 틔워준다든가,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든가... 뭐 많잖아요. 


가다 만 느낌입니다. 힘들었구나? 알겠어. 그런데 뭐가 어째서 그렇게 힘들었던건지 솔직히 얘기해서 공감을 얻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 되게 힘들었는데, 그래서 이렇게저렇게 나름의 시도를 해서 어떤 돌파구를 찾았어. 이런 프로젝트를 해봤는데, 재미있었고 보람도 있었어. 라는 굉장히 일차원적인 이야기를 들어준 기분이예요. 심하게 말해서 초등학교 저학년이 쓴 일기와 비슷했습니다. 오늘은 뭐뭐해서 이러저러한 날이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것을 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도 보람있는(내지는 재미있는 하루였다. 어쩌라고요?

솔직히 말해 소재와 기획은 아주 참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어떤 책을, 어떤 이유로 추천하게 되는 것인지가 아주 궁금했거든요. 책 소개도 좀 잘 되어 있으면 더 좋겠다는 기대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 중요한 부분은 너무나 기대 이하이고... 개연성도 없는 거 아닌가 싶고. 만남 사이트로 만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인상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그것도 정말 서점원 출신이 쓴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실망스럽고. 


이렇게 대놓고 '실망스럽다'고 적는 리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책을 사고 읽고 그러다보면 기대 이하인 책은 얼마든지 만나게 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처음으로(마지막이기를 바라지만) 이렇게 궁시렁대는 이유를 강변하자면 책값에 필적하는 배송료를 지불하고 바다 건너에서 받아서 그렇습니다. 책값에 비등한 배송료를 내고 한껏 기대한 책을 펼쳤는데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다르면 누군들 짜증스럽지 않겠어요. 책을 구입할 예정이 있으신 분들 참고되시길 바라요. 좋아하는 출판사인데 어째 이 책은 좀... 에러인 듯한 느낌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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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일에게 (청소년판) 특서 청소년문학 1
김선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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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없이 어른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까.

성장은 어떤 종류의 통증을 먹고 사는 건 아닐까.

아팠던 시절을 스스로 보듬는 사람도 있고 그냥 그대로 그 시기를 원망으로 채우고 대물림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성장통은, 그게 끄트머리에 이르기 전까지는 내게 필요했던 일종의 통과의례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갈피를 못 잡고 앞으로 갔다 뒤돌아서 돌아갔다를 반복하는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계속해서 걷는 것이다. 그냥,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별 것 아닌 일상의 소소함에 마음을 붙이는 것도 좋다. 연두가 생각한 것처럼.


어느 날엔가, 나에게 사회복지사가 올지도 아니면 보라와 영원히 이별할지도 아니면 카페 이상과 헤어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학교로 간다.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다시 학교로. 나는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어야 하니까. 살고 싶으니까. -217쪽


나는 모든 나쁜 가능성을 날마다 생각해. 그리고 날마다 아주 작은 징조에 희망을 걸기도 해. 햇살에도 나무에도 바람에도 비에도 구름에도 커피 향에도 밀크티에도 우체통에도 방물다리에도 두루내에도 아저씨에게도 그리고 너에게도......

생각보다 일찌감치 독립할지도 모르겠다. 난 살고 싶다. -140쪽


연두는 계모와 이복동생과 함께 산다. 연두는 늘 불안하다. 언제고 다시 혼자가 될까봐, 마음을 주는 것도 힘들어한다. 상처받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감정에 휘둘리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우리가 그런 것처럼, 연두도 조금씩 마음을 연다. 코코아 한 잔의 호의를 베풀고 결점두를 골라내는 일을 시켜 마음의 부채를 지우지 않는 카페 주인 아저씨에게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어른을 본다. 자신을 버린 친엄마를 이해해보려는 해외입양아 마농을 보며 자신의 근원을 아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친구관계에 상처가 있는 유겸이와 두려움과 상처의 경험을 공유한다.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 이규와 한쪽 눈을 잃은 이규의 멘토를 만나서 자신의 본질적인 두려움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타인과의 접점을 늘려가며 충분히 마음을 만지락하게 늘인 연두는 드디어 마음속에 묻어둔 두려움을 꺼내 살펴볼 용기를 갖는다. 이규가 말했듯, 어차피 두려움이란 것은 마음속에 가둬둔다고 해서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니까. 감싸안고 보듬을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감당할 만한 것이 되기도 하니까.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세상이 온통 황무지라도 최소한의 격은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그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으로 인해 살 수 있다. -50쪽


내 미래를 기대해주는 누군가 있다는 것. 세찬 비바람을 맞고 있을 때 등 뒤에 따뜻한 모포 한 장이 날아와 감싸주는 기분이었다. 내가 뭐라고, 나 따위가 무엇이라고. -215~216쪽


많이 본 문장이고,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들어앉아있던 문장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군가 한 사람으로 인해 살아갈 이유를 얻고 활력을 얻는다. 다만 기대해 주는 것과, 기대버리는 것을 혼동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종종 기대하기보다 기대는 경우를 본다. 기대하는 것은 내 자리에서 꼿꼿하게 버티고 서서 바라봐주는 것이다. 기댔으면서 내가 너의 앞날을 기대한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살아나가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이끼마냥 들러붙은 것들을 닦아내고 나를 제일 겁나게 하는 것을 똑바로 마주보기. 그리고 거기에 대해 누군가 내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응원해주기를, 누군들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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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장강명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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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컨셉을 좋아합니다. 심심은 한데 호흡이 긴 책을 읽자니 부담스러울 때, 그렇다고 생활밀착형 에세이는 그닥 안 땡기고 그냥저냥 마음을 딴 데 보내서 쉬다 오고 싶을 때 이렇게 여러 명의 작가에게 같은 소재를 나눠주어 백인백색의 원고를 받아 묶은 단편집이 신나게(내용이 신날 수 없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서도,) 가볍게(읽으려는 마음을 갖기가) 읽기에 정말 딱이지 않나 싶어요. 그 기획이 흔하지 않은 컨셉을 갖고 있으면 더 재밌죠. 잘 차린 밥상... 정확히는 반찬가짓 수 많은 밥상 받은 기분 아니겠어요.


이런 기획으로 묶인 책들 중에 지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다행히, 졸업>이군요. 사실 이 제목도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서 어쨌든 졸업이었나, 아무튼 졸업이었나(아무튼 시리즈를 너무 열심히 읽다보니...) 우야든둥 졸업이었나...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았지만요. 여하간 이 책도 장강명 작가의 단편으로 시작합니다. 오프닝 전문 작가셨던 걸까요... 


책 팟캐스트를 주구장창 찾아 듣다보니 <책, 이게 뭐라고>도 즐겨 듣는데 방송에서 조금씩 얻어 만들어진(내 맘대로 머릿속에서 만든) 장강명 작가의 이미지는 웬지 좀 예민하고 시니컬한 패턴을 띠고 있었는데, 이 단편에서 좀, 확실히, 그런 면모를 느끼고야 말았습니다. 르포 작가인 주인공은 장 작가님을(갑자기 작가'님' ...) 많-이 닮은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작가가 어떤 인물을 빚을 땐, 물론 주인공급 인물 이야기지만, 자신과 부분 닮게 만들던가 최소한 어떤 점에서는 본인이 닮고 싶은 면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키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그저 화법과, 말을 다루는 태도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이 전부이지만 그 부분으로 전체를 아주 거칠게 조망해 보겠노라 거만을 떤다면, 인간의 성격도 어느 점에서는 프랙탈적이기도 하지 않느냐고 억지를 부리면서, 이 주인공은 아무래도 장 작가님을 떠올리게 해!!!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님 죄송해요. ㅎㅎ 사실 저는 작가님을 잘 몰라요. 당연하죠, 작가님이 어떤 작품을 쓰시는지 알 것 같다고 떠벌릴 만큼 작품을 많이 읽어본 것도 아니고요. <알골>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내 경험으로는, 첫 만남에서 팬이라고 말하는 사람 중 실제로 내 책을 읽어본 이는 다섯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다. -18쪽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러니까 저도 팬이라고 떠벌려 보겠습니다. 팬이라고 자처하는 치들의 특성에 딱 부합하니까요. 

저는, 주인공의 치밀하고 (일견) 계산적인... 부정적인 뉘앙스는 빼고 말입니다만, 여하간 그런 면모에서 작가님을 되게 많이 떠올렸어요. 선장하고 나누는 대화보다, 알골들과 나누는 대화는 진짜 작가님 육성으로 귀에 들리더라고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팬 어쩌고 하는 데서는 이거 경험담이구나 하고 웃었죠. 스포일러가 되니까 차마 언급 못 하지만 제일 마지막 문장이 진짜 작가님 톤이더라고요. 전혀 모르는 분이지만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닌 분이 쓰는 이야기는, 정말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이승우 작가님이나 김금희 작가님이 쓴 소설은 그냥 소설로 읽히는데, 작가님이 쓴 이야기는 확실히 다르게 읽혀요. 김중혁 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하긴 했는데 작가님 캐릭터가 훨씬 더 작가를 많이 닮은 편입니다. 친근했어요. 재미있었고요. 여긴 너무 멀어서 배송비가 책값보다 더 나가서 조만간에 작품을 다 읽어보겠다 등의 말은 못하겠지만, 한국 돌아가면 언제고 꼭 읽어봐야겠다 싶네요. 이 말의 빈말 지분은 스스로도 계산이 잘 안 되네요.


아무튼, 

서론만 있는 이상한 글이지만 나름 중요했던 포인트만 더하고 맺자면 이거예요.

제일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타이틀작인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였고, 재일 울림이 컸던 것은 <웨이큰>이었습니다. 와, 진짜 명작이었어요. 음... 설마 이걸 보실리는 없다! 확신하며 아무말 대잔치를 지껄였는데, 왠지 민망해서 덧붙이자면 장작가님, 너무 서운해 말아주세요. 틀림없이 서운해 하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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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예전에 읽었을 때는 너무너무 마음에 든 작가였었다. 그 작가가 세상을 보고자 하는 시선이 내가 미처 몰랐던 눈높이여서 새로웠고, 내가 생각보다 훨씬 편협한 사람임을 일깨워주는 손길이어서 무안한 반면 다행스러운 기분을 갖게 했다. 그래서 그의 또다른 책들을 여기서 발견했을 때 정말 반가워서 정말 너무 반가워서 얼른 대출대를 거쳐 집으로 들고 왔던 거였다. 아 그런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 당혹스러운 마음은.

<너무 한낮의 연애>는 좋았다. 무엇인가에 대해 좋다는 표현을 쓸 때마다 가장 고민스러운 것이 그러니까 그것이 어떻게 얼마나 좋냐는건데, 를 어찌하면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추운 겨울날 집에 돌아왔을 때 따뜻한 보리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는 것보다, 향수 같기도 한 핸드워시거품을 손에 묻혀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얼어있는 손을 녹여가며 한기를 빼고 향기를 입히는 걸 훨씬 좋다고 느끼는 종류의 사람인데 이렇게 어떤 현상에 대처하는 방식의 좋음이 사람마다 다 다를진대 그것의 좋음을 어떻게 동일한 수위로 받아들일지 아닐지를 (감히) 추측하면서 나와 같은 좋음의 온도를 느껴주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친한 관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더라도 "이거 좋지 않아요?" 하고 묻는 건, 정말이지 용감무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절반의 나를, 어쩌면 통째로 다일지도 모를 나를 드러내놓는거나 마찬가지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모를 공간에서는 할 수 있는 거다(완전히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ㅎㅎ).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소리지르는 후련함.


아무튼,

그런 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뭉뚱그려서 대강 말을 만들어보자. 내가 좋음이라는 감정을 발견하는 경우는 대부분 이럴 때다. 좀 대략 난감하게 애매한 것들, 그냥저냥 나도 다른 사람들도 원래 그게 그러려니, 내지는 굳이 그걸 그렇게 구획을 나누어 정확하게 감별을 해야 하나 하는 게으름+귀찮음의 감정으로 대충 한데 버무려 밀쳐두었던 것들을 누군가 깔끔하게 분류하거나 필요없는 부분을 도려내어 나누어놓고 라벨링을 해 놓은 것을 봤을 때. 짙은 그림자 안에 묻혀 있어서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을 조심스레 끄집어내 먼지도 털고 모양도 바로잡아 양지바른 담벽에 기대어 앉혀놓은 것을 봤을 때, 즉 솜씨좋은 손길로 잘 다듬어놓은 '존재하는 줄 몰랐던' 삶의, 감정의 디테일한 면들을 발견했을 때 와 이거 진짜 좋구나, 이런 마음이 절로 울렁거리며 일어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김금희라는 작가가 좋았다. 과거형으로 써서 마치 지금은 별로라는 것 같아 뵈긴 한데 그런 건 아니고...


필용이 알기로 모든 관계는 받아치는 맛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관계의 활력을 만들어낸다. 저렇게 말없이, 모든 것에 초연한 채 수용만 하는 여자친구는 구체관절인형과 뭐가 다른가. <너무 한낮의 연애>, 21쪽

그러니까 안 되었다.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너무 한낮의 연애>, 28쪽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실제일까. <너무 한낮의 연애>, 42쪽

무슨 일을 주기적으로 하는 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나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과 급식시간에는 늘 선글라스를 낀다. 수업시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엎드렸다 일어났다 한다. 엄마도 주기의 주요성을 알았다면 지금보다는 덜 불행했을 텐데. 수입은 일정한 주기로 들어와야 한다. 부모는 일정 시간 집에 머물러야 한다. 삶에는 파도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일정한 간격으로 밀려왔다 밀려나가야 한다. <반월>, 106쪽

이런 것들이다. 보고서도 그냥 지나쳤던 무심함 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을 많은 것들이 드러나는 문장을 읽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좋은 것이다.  도대체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얘기하다말고 간혹 sorry, I just can't think of the proper English word for what I have in my mind... 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런 경우에는 뭐라고 해야 하나. 영어로 딱 맞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겠어 정도가 아니라, 그게 뭔지는 아는데 맞아떨어지는 단어를 말할 수가 없어일까. 감정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고, 현상도 아니고. 추상화를 가르치는 많은 책들을 보다 보면 여러 겹의 색을 입혀놓은 바탕에서 특정한, 네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carve in 하면서 계속 캔버스를 메꿔나가라, 라는 요지의 문장을 조금씩 다르게 패러프레이징한 가르침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되는데 그나마 그게 적절한 표현법 같다. 널브러져 있던 흐리멍덩한 개념적 물체 하나를 한 사람의 작가가 붙들고 깎고 다듬어 어떤 관념을, 순간을 꺼내어 보여준다. 그 지점에서 읽는 사람은 무슨 리액션이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횡설수설 떠들다보니 나조차도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헤매보지 않은 것보다는 헤매보기라도 한 것은 일종의 무용담이라도 될 수 있으니까, 허리에 손, 으쓱. ㅋ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은 역시 <고기>다. 너무너무 있을 법하고, 그래서 더 감정이입이 잘 되고, 그 뒤 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치게 하는 종류의 이야기. 큰아이는 자기는 세상에서 열린 결말을 가진 이야기가 제일 싫다는 말을 언젠가 했었다. 이게 뭐냐고,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지 속시원하게 끝을 내줘야 되는 거 아니냐, 왜 이야기를 제대로 완성도있게 잘 마무리짓는 역할을 읽는 사람한테 (엄마, 이거 게으른 거 아냐? 직무유기가 이거 아냐? 라고까지 ㅎㅎㅎ) 떠넘기냐고!!! 화를 냈더랬다. 이 열변을 토한 아이가, 꼴랑 열 네살밖에 안 되었으니 귀엽게 웃고 넘어가기로 하고. 
아마 얘가 이걸 읽었으면 그렇게 화를 냈겠지. 열린 결말은 그 열려있는 문으로 독자를 결국 끌고 들어와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는, 그런 국어시간 같은 설명으로는 설득이 안 되는 때... 라서, 아마도? 여하간, 이 짧은 단편은 정말이지 모든 사람들이 다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면서, 확신과 의심이 번갈아 왔다갔다 사람을 뒤흔들어 놓고,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짧고 재미있어서 페이지가 잘 넘어가고. 
어제저녁 식탁에서였나, 큰아이가 도대체 문학의 쓸모를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말 끝에 남들이 보면 지성인의 스펙을 다 갖춘 남편이 그러게, 사실 아빠도 문학이 왜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어... 말을 받는 것을 보고 생각했는데, 이건 심히 전근대적인 문학 교과서 탓이 큰 것 같다. 사실 요즘 문학 교과서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세대 문학 교과서만 생각해 보면 왠지 두 주먹이 불끈 쥐어져... 
요즘 작가들의 글을, 아이들이 읽게 해 주세요 제발. 아무리 고전이 훌륭하다지만 고전만 배워서 어떡합니까 요즘 글이 어떻게 씌어지는지 요즘 소설에서 에세이에서 다뤄지는 글감이 뭔지 세상의 관심사가 어디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아이들이 그걸 알아야죠... 

사실,
이걸 처음 끄적거리기 시작했을 땐 나는 김금희 작가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의 사랑, 매기>는 어디를 좋아해야 하는건지... 무엇을 쓰고 싶었던 것인지 잘 찾아내지를 못하겠다, 이런 것을 쓰려고 했는데, 영 엉뚱한 데로 튀어버렸다. 아, 이게 어디 제출해야 되고, 평가받아야 하는 쓰기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고마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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