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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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굳이 리뷰를 쓸 생각이 안 드는 책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굳이 여기에 보태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딱히 밝혀 쓰고 싶지 않기도 하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읽기만 해서 그렇기도 하고, 뭐 그런 이유들이죠.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선뜻 리뷰를쓸 마음이 안 생겼던 것도 그래서이기도 하고요. 이 책도 그렇게 묻어두고 싶었는데 마침 이야기할 적절한 계기가 생겨서 몇 줄 써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요새 뉴스마다 난리였죠. 코로나 바이러스와 선거 얘기를 젖혀두고 가장 뜨거웠던 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성착취 동영상을 상품화해서 이윤을 챙긴 범죄자에 관한 소식이 매일같이 포털 메인을 열었습니다. 음... 이런 류의 인간들이 어떻게 어린 여학생들을 끌어들이는지를 본의 아니게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비슷한 인간들일 거예요. 첫째 딸이 굉장히 대담한 반면에 둘째 딸이 필요 이상으로 심약하고 겁이 많은 성향입니다. 첫째 아이는 의심도 많아서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나 도착한 메시지는 상대도 하지 않는데, 둘째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일년 전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아이가 받았습니다. 전화를 건 이는 건들거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왜 남의 전화에 멋대로 전화를 걸어놓고 받을라치면 끊고, 또 끊고, 누구시냐고 묻는 문자는 다 씹어버리느냐? 목소리 보니 어린 여학생 같은데, 이러는 거 나쁜 짓인거 몰라요?" 라고 대뜸 호령을 했어요. 당연히 아이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다만, 너무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이를 야단치고 을러대기 시작하니까 겁이 많은 아이는 내가 실수로라도 그랬나? 하고 겁에 질리더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 아빠가 화가 나서 전화를 뺏어 끊어 버렸습니다. 보호자가 옆에 있는 줄 몰랐겠지만, 이 작자는 다시 전화를 걸더니, 남편이 받은 줄도 모르고 계속 헛소리를 지껄이는 겁니다. "너, 함부로 남의 전화에 막 장난 전화 걸고, 끊고, 내가 경찰에 신고한다" 라고요. 아이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아빠가 응대하니까 횡설수설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리고 욕으로 범벅을 한 문자를 몇 통을 보내더니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 사건이 있고 바로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아이 핸드폰도 해지하고 뭐 그랬습니다만, 요즘의 뉴스를 보다 보니 그 사건이 기억이 났어요. 패닉하기 쉬운 성향의 아이들이 이런 인간들의 같잖은 수법에 걸려 들어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거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가리겠습니다 ▼

여하간,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 인간들도 쓰레기지만요. 이런 걸 컨텐츠라고 소비하는 인간들도 못잖게 쓰레기인데 왜 그들은 물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분명 한둘이 아닐 겁니다. 청원인수가 그 사실을 증명하죠. 그리고 또 어떤 어르신이 그러셨다면서요. 누가 무슨 청원을 한다고 그걸 어떻게 다 법으로 만드냐고 했다던가? (사실 확인은 안 했습니다) 그 말을 누군가에게 듣는 순간 자동으로 이 책이 떠오르더란 말이죠.

아, 왜요. 켕기는 게 있으신가. 


물론 법이라는 게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가 원한다고 그렇게 뚝딱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그런데 그 청원이라는 게 어떤 정서에서 자라 올라온 건지 조금이라도 감안할 수 있는 공감력이 있다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거죠. 그러니까 찔리는 거 있으세요? 라는 비아냥이 메아리치는 것도 인지상정인 겁니다. 힘 있는 사람, 그들이 켕기는 짓을 할 때, 그리고 그것을 감추고 싶어할 때, 우리는 어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정말 스케일이 큽니다.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는 의문이죠. 저들은 왜? 그런데,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소설의 끄트머리는... 이해는 하지만 정말 속상하게 해요.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은연중에 내리누르는 압박감으로 인한 비자발적인 동의로 DNA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상적인(?) 잠재적인 범죄 감시 및 통제 시스템이 구축된 사회가 배경입니다. 주인공은 그 시스템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이며 시스템을 맹신하죠. 이 시스템이야말로 범죄율이 0%에 가깝게 내려가도록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해 줄 핵심적인 인프라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맹목적인 믿음이 삶을 배신합니다. 주인공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어떤 설계가 이제 자신을 죄어오는 덫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시스템의 가장 내밀한 설계자이며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될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던 피해자들. 그들이 공표하려고 했던 데이터의 비밀은 무엇이며 왜 시스템의 강력한 옹호자였던 주인공은 누명을 뒤집어써야 했을까요.


이것이 이 책의 제일 주요한 미스터리이고 이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혈압이 급상승하면서 스리슬쩍 묻혀버린 어떤무슨어떤 사건들과 또 어떤어떤 분들이 막 생각나는 건... 보너스로 따라오는 빡침입니다. ㅎㅎㅎ 아무튼, 재미있고 시의적절하며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인 것은 분명해요.  

도로 접을까요 ▲


한마디로 통제가능한 사회란 건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거고, 데이터는 평등하게 열람되어야 하며, 그렇다고 또 살아 움직이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유기체를 데이터화하려는 시도도... 그게 빅데이터건 뭐건, 좀 적당히들 해 두어야 한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하는 책입니다. 제목이 되게 애매하게 단호한 느낌이네,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면 제목이 스포일러네...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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