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철학하는 아이
제나 모어 론 지음, 강도은 옮김 / 한권의책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어떤 계기, 생활에의 연관성, 그런 것을 기억해내지는 못하지만 철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철학이 뭔지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지만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무엇을 '안다'고 말하는 행위 자체에 실린 책임의 무게가 상식 외로 무겁기 때문에 뭘 안다고 말하는 사실 자체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지긴 합니다. 아무튼, 철학이라는 그 말이 품고 있는 온도가 그저 가까이 다가앉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해야겠어요. 옮긴이의 말 첫머리에 '철학한다는 것은 자기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질문과 탐구 과정들'에 다름 아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걸 읽고 아하, 했어요. 그렇구나. 내가 왜 내 인생, 시간, 하루하루의 의미를 어딘가에 실으려 애썼는지, 왜 이런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늘 철학 언저리를 기웃댔구나. 나름의 이유를 찾았어도, 그게 정말 맞는지 - 맞고 틀리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구나. 어떤 책이건, 책을 읽다보면 일순간 눈 앞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낄때가 종종 있죠. 이런 방식으로.


이 책은 왜 아이에게 도구로서의 철학이 필요한지,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철학적인 사고를 훈련시킬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이득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설득력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것을 '독후활동'의 일부로 간주해서 강요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채 아이의 입을 열려고 하면 역효과만 날 거예요. 평소 아이들의 일없는 이야기도 경청해 주고, 어른과 아이가 상호존중하는 태도로 대화하는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가정이라면 꼭 적용해 보시라 권하고 싶어집니다. 


저자는 아이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할 때가 바로 철학적인 탐구를 견인할 수 있는 때라고 설명합니다.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어른들은 곧잘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질문과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볍게 여기곤 합니다. 그래서 '아직 몰라도 돼', '별 게 다 궁금하다'등의 무시하는 반응을 보이죠.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29쪽)에서 읽히듯 그건 그냥 인간으로서의 자연적 본능 중 하나입니다. 즉 철학하는 자아는 인간 본능 중 하나라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철학적인 자아는 미지의 낯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아를 말한다.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스스로 무엇을 말하고 생각하고 행하는지를 의식하는 능력은 철학하는 자아의 근본을 이룬다. 이 능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의미를 탐색하고 또 다른 물음을 찾아가도록 이끌어간다. -30쪽


자신감을 갖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해간다는 것은,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의문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을 뜻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철학을 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31~32쪽


사고력의 자립은, 경제적 독립만큼이나 중요하지만 그닥 교육적인 면에서 강조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사고력 수학에서 요구하는 범위의 사고능력보다는, 훨씬 더 깊고 폭넓은 의미에서의 사고 능력 - 즉 정답을 찾아가는 능력보다 가능성의 범주를 타진하고 스스로 이성을 움직여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쌓아나갈 때 발달되는 그런 류의 사고력을 동반자로 삼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아이들과의 철학적인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에 중요한 의문들을 생각해보도록 이끌어주는 일이다. 아이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을 때 성장한다. 아이들은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자기 힘으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때 철학하는 경험을 통해 능동적으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2쪽

말처럼,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확인하지 않고서야 어디로 발을 옮길지를 무슨 수로 알겠나요. 솟아오르는 질문들이 나를 가득 채울 때, 그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나를 추동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아이들의 질문을 성실하게 받아주고, 적절한 피드백으로 생각의 항해를 떠나게끔 격려하는 일이 되겠지요. 

어려서부터 세상을 둘러싼 여러 궁금증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고 부모나 믿을 만한 어른과 함께 토론한다면, 아이들은 차근차근 스스로 탐구하는 힘을 갖게 된다. 아이들은 해답보다는 질문에서, 고정되고 정해진 것보다 불확실함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발달하면, 자라면서 만나게 될 복잡한 세상에서도 안정적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기의 위치를 아는 일이다. 철학하는 자아를 길러주면, 아이 스스로 세상을 이해할 때 필요한 논증하는 능력과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발달한다. -233~234쪽


어차피 풍랑이 몰아치는 한가운데로 들어온 마당입니다. 더 이상 기능도 못 할 조타기를 붙들기보다 수영능력을 점검할 때이니까요,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삶에 끌어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인 듯해요. 인간을 인간이게도 하는 비범한 능력, 사고하고 성찰하는 법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좋은 책들을 쓰시는 분들께 응원과 더불어 감사의 마음을 함께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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