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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 잃어버린 두근거림을 찾아
천우연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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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이 출판사에 관심이 먼저 있었습니다. 남해의봄날로 검색해서 펼쳐지는 책의 목록들을 넘겨보면서 그 많은 책들 중에서도 이 책에 눈이 달라붙었어요. 좋아하는 게 먼저 보이고, 관심있는게 눈길을 당기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저자는 문화예술관련 프로젝트 기획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입니다. 흔들림없이 자신이 선택한 길을 열심히 달려가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어느 순간 그도 '이대로 계속 가야하나, 중간점검을 해봐야 하나'를 고민했답니다. 그리고 선택한 것은 일단 멈춤, 자신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무엇인지를 재점검하는 것.

 

글쓴이가 확고하게 믿는 것은 본인이 썼듯 '예술은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예요. 예술은 효율적이지만 획일적인 현대의 삶을 위해 우리가 잘라내고 분리수거해두었던 여분의 감정들을 그대로 말라죽지 않도록 살려놓는 일종의 크고 작은 온실들입니다. 자주 살펴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온실을 갖고 있는 사람, 내지는 타인의 온실을 간혹이라도 들러보는 사람 수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다움의 습도를 찾아주도록 적극적으로 손 내미는 것이 문화예술기획자가 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각종 문화예술축제 이름들과 행사내용을 훑다 보면, 어쩌다 드러나는 진솔한 기획의도보다 너무 속이 훤히 드러나서 보는 내가 다 민망한 수준의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는 축제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이곤 하죠. 예술을 사랑해서 이 일에 뛰어들었던 열정이 있던 사람에게는 아마도 그 현실이 더 견디기 힘들었겠다 싶어지네요. 

 

그래서 글쓴이는 일년간의 여행을 계획해요.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것을 필두로, 그 다음, 또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들끼리 모아 묶어 항목끼리 분류한 다음 세 달씩, 네 곳을 방문하여 머무르면서 그들의 생활 속에 문화예술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체험할 계획을 세웁니다. 지인이 있어 소개를 받은 것도 아니고, (본문에서 읽은 느낌으로 판단하건대) 언어가 아주 유창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걸 꼭 해내겠다는 의욕 하나로 스스로 생면부지의 타인들에게 메일로 자신의 기획과 상황과 의도를 설명하고 그 모든 일을 하나씩 이뤄나가는 과정과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을 차례로 써나갑니다. 물론 본인을 굳이 끌어당겼던 그 장소들과, 그 구성원들이 함께 누리는 일상 속에 녹아들어간 예술이 어떻게 그곳만의 고유한 예술문화를 만들어 나가는지도 상세히 설명하고요.

이 책에서 다루는 모습들이 시대에 굉장히 역행하는 게 아닌가 싶을수도 있어요. 사실 요즘 누가 일일이 마을 단위로 사람들이 모조리 모여서 몇달씩 인형탈을 만들고 있겠으며, 시민예술학교라니 별반 소득도 안 될 일에 누가 돈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을 갖다바치고 있을 수 있겠느냐 생각하는 게 무리가 아닐 테니까요.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본성도 이 시대와 명백히 역행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하등 쓸데라곤 없어도 뭔가를 만드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고, 얼굴을 맞대고 수다를 떨고 싶어하고,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어하고. 노동의 댓가로 금전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져가는 사람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고. 그런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우니 우리 모두의 시간의 일정 부분을 떼어다 삶에 윤기를 주는 시간에 나눠주는 일만이라도 진짜로, 제대로 하면 어떨까... 그런 마음을 행간에서 느꼈습니다.

당위성으로 움직이는 것은 너무 기계적이잖아요...

가능성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 훨씬 인간답다고 생각된단 말이죠.

 

사회가 가진 자원을 공적으로 활용해서 어떻게 내가 속한 곳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사례들이 가득합니다. 식상하지만 생생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글쓴이가 실제 몸으로 겪고 느낀 것을 감춤없이 써내려간 책이니까요. 책을 사보는 것 정도의 소소한 응원밖에 못 하지만 역시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인으로서, 내가 남에게 나눌 수 있는 나만의 자원은 뭐가 있던가 헤아려 보게 만듭니다. 사회가 가진 자원은 결국 수많은 '나'들의 자원이니까요. 결국 나눌 수 있는 마음이 모든 일들의 선결조건이 되나봅니다.

 

자본주의의 지향점이 어디였던가를 잠시라도 잊고 우리가 잃어비린 공동의 삶, 협업하는 삶, 쓰고 그리고 만들고 나누는 삶, 그 모습들에 향수를 느끼는 분들께도, 해외의 문화예술행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께도, 마을공동체를 일구는 일에 대한 고민이 있는 분들께도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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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모두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 하나만 더 해줘, 하는 그 소리 좀 제발 그만 듣게 빨리 좀 커라, 커서 네가 직접 읽어라, 그렇게 속으로 빌어대던 때를 모든 부모가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소원을 비는 부모들이 하나 모르는 게 있다. 아이들이 텍스트를 읽어나가면서 이야기를 파악하는 능력과, 읽어주는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이해하는 능력이 같은 수준에 오르는 것은 꽤 늦게 온다는 사실을. 이것은 아래의 책에 아주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왜 제법 큰 아이들에게까지 책을 꼭 읽어줘야 하는지, 그 수고스러움이 왜 가장 큰 교육적 투자인지에 대해 저자는 몹시 애타는 마음으로 호소한다.

 

 

그리고 더불어 부모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교육 아웃소싱은(특히 영상매체에게) 적당히 해 두고, 책을 읽어주자고. 그러니까 부모들로서는 노동을 강권하는 책이므로 달갑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도 이 노가다에 가까운 읽기 노동을 기꺼이 실천하고 있는 1인으로서 더불어 권하고 싶으므로, 같은 논지의 책을 한 권 더 말하고 싶다. 

 

단어를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샌가 문장의 의미는 원자 폭탄을 맞은 듯 해체된다.

원점으로 돌아간다.

다시 시작한다. 이 과정이 수도 없이 되풀이된다.

"조금 전에 읽어놓고도 몰라? 이게 무슨 뜻이냐고?"

 

(중략)

 

"다시 읽어봐.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란 말이야!"

아이는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파르르 떨리는 아이의 입술 사이로 울음 섞인 단어가 비어져 나왔다.

"우는 시늉 좀 하지 마!"

하지만 그 슬픔은 결코 눈속임하려는 의뭉스러운 시늉이 아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오는 북받치는 설움이었다. 자신의 고통을 절절히 호소하는 설움이었다. 더 이상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는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통한이었다. -56~57쪽

 

어른인 우리가 제각각 다른 책읽기 속도를 가진 것처럼, 아이들도 그저 자기 자신만의 리듬과 템포에 맞춰 읽기를 몸에 새겨나갈 뿐이다. 그걸 인내심있게 기다려주지 못하면서 책을 싫어하게 된다고 비난하면 어쩌냐고 페나크는 한탄한다. 나를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걸 내가 왜 좋아해야 하냐고. 도대체 세상 누가 자기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면서 때때로 트라우마적 기억을 소환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겠냐고. 그러니까, 몸이 그 박자를 익혀서 스스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그때까지는 이야기와 더불어 어른의 목소리를 함께 귀에 심어주자고 열심히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와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눔은 우리 스스로가 자유롭게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요새에 자리잡게 된다. 책과 친구들이 우리 안에 들어와 사는 것이다.

가까운 이가 우리에게 책을 한 권 읽으라며 주었을 경우, 우리가 책의 행간에서 맨 먼저 찾는 것은 바로 책을 준 그 사람이다. 그의 취향, 그가 굳이 이 책을 우리의 양손에 쥐여주었던 이유, 그와의 유대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증표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내 책의 내용에 빠져들어, 정작 책에 빠져들게 만든 장본인은 잊고 만다.

 

(중략)

 

하지만 몇 해가 지나고 나서 그 책을 문득 떠올릴 때면 책에 얽힌 또 다른 추억이 함께 묻어나기 마련이다. 책의 제목에 몇몇 얼굴이 겹쳐지는 것이다. -110~111쪽

 

조금 자란 아이라면 이 예시에 맞을 것 같다. 조금 더 어린 아이라면 그 책을 읽어주었던 누군가의 목소리와 단단히 묶인 책들로 마음 속에 서가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낮의 자투리 시간에 잠깐, 또는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조금씩 만났던 책들이 머무는 공간을 언제든 떠올려 볼 수 있다면, 삶에서 버텨내야 하는 모든 순간들에 잠깐씩 들를 수 있는 휴식처가 되겠지.

 

책에서 만나는 가장 따끔한 말은 이것이다. 돌려 말하면 아무리 바빠도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언제 책을 읽을 것인가?

이건 중차대한 사안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떠안고 있는 만인의 고민이기도 하다.

책 읽을 시간이 고민이라면 그만큼 책을 읽을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도, 학생들도, 어른들도. 다들 살아가는 일에 치여 책 읽을 짬이 없다. 생활은 독서를 가로막는 끝없는 장애물이다.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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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절 전후로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건 뭐 대한민국 며느님들은 다 똑같겠지. 그나마 우리 집은 명절노동을 양성평등하게 하는 축에 속하긴 하지만, 그래도 집에 일가친척이라고는 해도 내 식구 아닌 친지들이 드나들이 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다소 오는 일이니까요. 하아. -_-;;; 그래도 물론 기꺼운 마음으로 명절을 맞는 큰며느리라고 나름 자부해 왔는데...

온 시댁 식구들이 큰며느리 고생스럽다고 저녁에 고기 사다 굽자는데 굳이 내 자리를 전기팬 옆에다 차려놓고 아주 보란듯이 고기팩도 쌓아놓고 간 남편이 세상 이렇게 얄미울 수가 없더라. 대접받는 자리에 겁나 익숙한 남편보다 남들 눈치 맞추는 자리에 오래 있었던 시동생이 "형수님 고생 많이 하셨는데, 먼저 드세요" 하고 잽싸게 낚아채어 굽기 시작하는데 그게 얼마나 못마땅하신 표정이든지, 나는 냉큼 "저보다 훨씬 잘하시네요! 그럼 제가 좀 얻어먹을게요." 하고 구워주는 고기를 날름날름 먹어치웠다. 진심 메롱이었다.

 

2.

환경을 바꾼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것도 뭔가 내가 예상했던 방식이 아니라면.

낱개의 액션플랜1, 2, 3, ... 이것들이 모여서 어떤 계획이 되는 거라 친다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엉뚱한 사건과 오해로 인해 계획 A가 엎어지고, 그 망한 계획의 잔해 사이에서 그나마 성해 뵈는 낱낱의 액션플랜들을 다시 엉거주춤 그러모아서 또 다른 대안 B를 만들어 놓으면 이건 또 슬금슬금 흔들리는 모양새가 영 불안하고,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몇 주가 지나버렸다. 명확히 그려지는 계획이 없는데, 그렇다고 다른 계획을 세울 수도 없이 어딘가에 덜미가 잡혀있는 이 시간과, 이 어떻게 통제할 수 없음의 불안함이 계속해서 피를 말리고 있다. 아 진짜, 이 넘의 해외연수는 간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가면 언제 간다는 건지!!!

 

3.

상기의 이유들로 책을 계속 쟁이고는 있으나(...) 글자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읽겠다고 빌려다 달래서 갖다놓은 책들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애들 책은 눈에 좀 들어오려나 하면서 표지를 열었는데 아, 역시 좀 읽혔다.

 

 

각자의 사유로 뜨개질을 하게 된 아이들이 결국은 뜨개질을 통해 사연을 나누고 치유받는다... 고 요약하면 굉장히 거칠고 서투른 요약이지만, 음... 맞긴 맞을 거예요. ㅎㅎㅎ 그런데 아이들의 그 오묘한 마음을, 작가가 정말 잘 써주었다. 특히 주인공 중 한명인 은별이가 마지막에 왜 자기가 힘든 다이어트를 강행했는지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데서는 약간 눈물이. 아이들은 정말로 그렇게 부모에게 소속감을 굉장히 강하게 느끼고 싶어한다. 특히 은별이처럼 새엄마가 아기를 가짐으로써 가정에서 존재의 위협을 받는게 아닐까 본능적인 불안감이 비집고 올라오는 상황이라면 더하겠지.

이 책을 다 보고 나니 비슷한 책이 기억났다.

 

 

처분한 지 오래된 데다가 이미 절판된 책이라 다시 읽어볼 기회는 없을 것 같지만 비슷하게 뜨개방에 모인 여자들이 함께 뜨개질을 하면서 교류하고, 결국 본인들의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고 되고, 화해와 눈물과 또 뭐... 그런 내용이었었는데, 그때도 눈물 짜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 뜨개질이라는 게 좀 묘해서, 모여 앉아서 재게 바늘을 놀리다보면 기계적으로 손은 돌아가고 시간은 하염없이 가는데 심심해져서 입은 열리고, 말을 하다보면 실꾸리에서 실을 뽑아 뜨개를 하는 게 아니라 마음 속 응어리에 바늘을 걸어 속내를 끝도없이 입 밖으로 꺼내게 된다. 말인즉슨 친하고 싶지 않거나 혀 무게에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과 뜨개질 하는 시간을 나누는 것은 위험하다는 겁니다. 하하하하하

 

이 눈물헤픔증은 나이를 얼마나 더 먹어야 좀 없어지려나. 낼모레 아이 졸업식 때 혼자 또 눈물 그렁그렁할까봐 지금도 걱정이 태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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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집에 비해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을 빨리 재우는 편이다. 중학교에 올라가는 아이와 초등 고학년인 아이가 자는 시간이 평균 아홉시 반에서 열 시이고, 이제 유치원 졸업을 코 앞에 둔 막내는 여덟시 반이면 잠잘 준비를 한다. 삼십 분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아홉 시경에 잠드는 셈이다.

 

이제 와 생각하니 쭉 읽어주었던 책들을 목록을 만들어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약간의 후회스러운 마음이 든다. 무슨 책을 읽어줬을 때 셋 중 누가 어떤 반응을 보였고 무슨 말을 했는지 그런 것까지는 일일이 다 기록해두기 힘들었더라도 제목 정도는 그때그때 적어놓을 수도 있었을텐데, 이제와서 그런 소리 해봤자 때늦었다.

 

아무튼...

 

위의 두 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책 읽어주는 걸 들으려고 일찍 들어와 눕기보다는 저희들끼리 수다 더 떨다가 자러 들어오는 걸 선호하는지라, 이제 이 책 읽어주는 일도 몇 년 안 남은 호사(이걸 불과 일 년 전까지도 노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선배들이 '좋은 시절이다'라고 말하는 심경을 좀 알겠다 싶어지니 호사라고 느끼게 됐다)가 되어 책을 좀 더 신중하게 고르게 되었다. 주로 그림책을 골랐었는데, 일주일 쯤 전부터 막내는 '엄마, 그림책 말고, 매일매일 조금씩 나눠 읽는 그런 긴 책 읽어줘'하고 똑부러지게 요구해왔다. 뭘 읽을까, 고민하다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반가운 책을 골라봤다.

 

사실 내가 읽었던 것은 이 에디션이 아니다. 나남출판에서 나온, 아마 최초 번역본이지 않았나 싶은 책인데 기억으로는 번역하신 분이 원서로 읽었다가 너무나 감동을 받으셔서 직접 번역에 나서셨다더라, 그런 썰이 있는 책이었다. 새로 나온 이 깔끔하고 사랑스러운 장정의 워터십 다운도 너무 예쁘지만, 첫 번역본과 달리 토끼들의 이름이 영어 그대로 나와 있어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봐야 지금도 말할 수 있는 애들은 개암이, 더벅머리, 그리고 토도방정 정도지만. 그땐 몰랐고 이제서야 아! 싶은 건, 뭔 이름이 이래, 싶었던 토도방정은 아마도 토끼+오도방정의 합성어가 아니었었을까 싶다는 거 정도. 그런데 우리말로 옮겨놨던 그 이름들이 기억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단단히 내린건지 원래의 이 이름들이 당최 입에 붙지를 않는다. 엘-어라이라도, 어쩐지 그 옛날의 엘-어하랄롸가 더 익숙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계절 출판사 판의 훌륭한 점이라면 역시 충실한 번역이(리라 믿음...)겠다. 총 767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인데, 아무래도 예전 버전은 다이제스트판이었겠구나 하는 의심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총 페이지수가 거의 두 배 분량에 달한다!! 무엇이 잘려나갔던건지 이제와서 확인할 방도는 없지만, 아이에게 읽어주다보니 좀 알 것도 같은 게, 묘사가 어마무지하다. 이쯤 되면 디테일하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그냥 문장으로 모든 것을 다 해설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음. 어지간한 인내심으로는 읽어내기 힘들겠구나 (그래서 큰애들이 다들 듣다말고 도망갔나) 싶은 정경묘사는 한 술 더 뜬다.

강둑을 따라 무슨나무 숲이 깊은 어둠을 품고 블라블라블라. 학교도 아직 안 들어간 어린 남자아이가, 이걸 참고 듣고 있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책을 읽다가도 아이를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면 계속 읽으라고 눈짓을 한다. 과연 이해할까, 이게 뭘 묘사하는 건지 알고 있는걸까 의심하면서도 느낌으로는 알 거라고 믿으면서 계속해서 읽는다.

 

어젯밤엔 엄마가 지금껏 읽어준 분량과, 남아있는 분량을 눈으로 대강 비교해보더니 엄마, 이거 대출 얼마나 남았어? 물어본다. 글쎄 한 일주일 남았을까? 잘 모르겠는데, 왜, 하니 남아있는 기간 동안 도저히 엄마가 다 읽어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단다. 일단 반납했다 다시 빌려와도 돼, 그랬더니 누가 예약하고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는데... 라면서 엄청 심각해 하길래 그럼 사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 한 마디에 얼굴이 세상 편해지더니 엄마가 사줄 거지? 란다. 그래 뭐 사주지. 까짓것. 책인데. 그런데 너 재미있어하고 있었구나. 다행이다.

그리고 오늘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봤더니 아니나다를까 권당 2~3개씩의 여유분이 서가에 꽂혀 있더라. 의기양양하게 네 권을 다 샀는데 만 몇백원 들었다. 이따 집에 오면, 좋아하겠지.

 

*

 

토끼들의 캐릭터가 분명해서 몇 번 들은 것으로도 어린 아이의 머릿속에 그 모습이 아주 또렷하게 그려지나보다. 아침에 등원할 준비를 하면서 혼자 중얼중얼, 실버는 힘이 세고, 빅윅도 힘 세고 덩치도 커. 파이버는 쬐그맣고 힘이 약해... 하고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엄마를 본다.

거의 이십 년 전에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었을 때 훗날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을까. 같은 책을 두고 결이 다른 추억을 쌓는 일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었을까. 눈으로 읽었던 책을 귀로 다시 읽게 되면 어떤 공감각이 펼쳐지는지 알 수 있었을까. 한 번의 경험이 다른 차원으로 반복된다는 건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입체적인 체험이 되더라. 읽어줄 수 있을 때까지, 더 많이 읽어줘야지.

 

또 뱀발.

소리내어 읽어주면 좋은 이유는, 이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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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곰돌이가 있다.

 

안타깝게도 순남이 연남이 술빵이처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애정전선을 과시하고 있는 어깨 으쓱한 곰돌이라고는 못 하겠지만, 어쨌건 31년간 쭉 나를 따라다닌 곰돌이가 있다. 음.... 옷장 안에.

정확한 상품명은 이렇다. 당시에 어린이 대상 잡지에 주로 실렸던 광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트-하트-베비(베이비 아님)-베어.

 

이 곰인형은 세 가지 모델로 나왔었다. 아마도 여아와 남아로 갈라놓은 게 분명한 베이비 블루와 베이비 핑크색의 털과 깔맞춤한, 슬리핑 수트라고 불러야 맞을 원피스 스타일의 잠옷을 입은 아가곰들과 얘네들보다 쬐끔 더 덩치가 크고, 굳이 성별을 드러내지 않은 옅은 베이지 브라운 색의 털에 아이보리색 바탕의 아주 연한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잠옷과 세트로 요정모자 같았던 잠옷 모자까지 쓰고 있는 곰(얘는 하트 베어)까지, 이렇게 세 종류의 디자인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자신없지만, 가격은 일반 베어가 18,000원이고 베이비 베어가 각 12,000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곰돌이의 가장 큰, 유니크하고 독보적이며 차별성 두드러지는 점이라면 역시 심장이 뛰는(...) 소리와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었겠지.

 

그 곰인형 광고가 아이들 마음을 꽤나 들썩였던 건 틀림없다. 당시의 나는 제법 많은 집을 무단방문하는 무법자 스타일의 (민폐끼쳐 죄송했습니다 어머니들...) 동네 친구였는데, 거의 모든 집들에 그 사랑스러운 곰들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곤 했다. 남들이 다 가져도 나는 못 가질 수 있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도 이해할 생각도 없었던 저만 아는 어린이였으므로, 나는 수시로 엄마를 졸라 댔다. 엄마, 하트 베어 사 줘. 얘네는 심장도 뛴단 말이야. 진짜 곰이라구.

엄마는 귀에 뭐라도 덮어놓은 사람처럼 내 말에는 아무 반응도 안 했다. 엄마는 계모가 틀림없어. 무슨 엄마가 딸이 이렇게 소원을 하는데 들은 척도 안 할 수가 있어. 나쁜 엄마야.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는 그런 못된 여자야. 등등의 식으로, 유치한 헛바람이 든 열 살 좀 넘은 어린이는 할 수 있는 소심한 반항은 다 했었을 것이다.

 

그 반항의 정점에서 나는 일기를 썼다.

시위용 일기였다.

잘 시간에 방 불을 끄러 와 주는 엄마가 읽어주기를 내심 기대하며 매일같이 일기를 써서 보란 듯이 책상 위에 넓게 펼쳐놓곤 했다. 이 곰인형의 대단한 점과, 사랑스러운 포인트와, 이 곰돌이의 유행에 편승하지 못한 엄마의 소중한 딸이 얼마나 소외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절절하게 썼다. 이게 지금 유실됐다는 게 아쉬운 동시에 너무너무 다행일 정도로 유치찬란한 소동이 아닐 수 없었다. 잡지에서 찢어낸 페이지를 정성껏 오려 풀칠해 붙였고, 몇천 원 더 비싼 하트 베어가 아닌 분홍색 베비베어를 가질 수만 있어도 세상에서 최고 행복할 거라는 둥의 거짓부렁을 아낌없이 나불거렸다. 그 노력이 가상했는지 가증스러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엄마가 된 입장에서 헤아려 보자면 알면서도 속아주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어쨌건 생일이었나, 크리스마스였나, 무슨 이벤트가 걸쳐지면서 결국 나는 그 곰을 손에 넣었다. 인간승리.... 개뿔. 고집데기 철부지가 엄마를 이겨먹은 창피한 기억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그 곰인형은 서른 해가 넘도록 나를 따라왔으니 함께 추억을 되새기는 사이가 된 셈이다. 물론, 가끔 옷장에서 꺼내어 먼지 털어줄 때.

 

곰인형에 대한 애정이 뿜뿜한 다정한 글을 쭉 읽었는데, 내게도 하나 있는 그 곰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옷장을 열고 곰돌(순일까...)이를 꺼내서 머리도 털어주고, 등짝도 쓸어주고, 손도 만지작만지작 하고 콧등에 삐져나온 검은 실밥들을 대충 손질해 주었다.

 

 

아이고,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사는 게 바쁘고 정신없고... 비글 같은 어린이 세 명이 종종 이성을 흐려놔서 말야... 내가 좀 그래.. 그래도 너 보니 반갑다. 근데 네 꼴이 말이 아니긴 하구나.

소매 고무줄은 다 빠져 너덜거린 지 오래이고, 발은... 발?? 발??

 

물론 내가 자주 들여다보고 안부를 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러니까 나도 잘못이야, 라고 단정짓기엔 너무나 또렷하게 남은,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잘라내간 흔적이 보이는 이 가슴아픈 범죄의 현장은 뭔가. 물증이 없어도 우리 집에 이런 짓을 할 만한 놈이 누군지는 너무 확실한 심증이 있기에 바로 붙잡아다 추궁했더니 반성하는 기미가 1도 없이 냉큼 "어 나 맞는데" 하고 시인한다. 왜때문에!! 라고 물었더니, 자기 곰인형에게 양말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적당한 양말감이 없길래 오래 된 곰인형 옷 발 부분만 도려냈단다. 아오...

난 엄마가 그거 버리는 건 줄 알았지, 이렇게 뻔순이 같은 대답도 곁들여서.

그래 다 내 탓이다.

 

괜히 미안해서 잘린 옷자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 아기 발 만지던 기분으로 곰 발바닥을 쓸어봤다. 요즘 날씨도 추운데 발 시리겠다, 생각하면서. 너덜대는 소매도 조여주고, 예쁜 원단 조금 가져다 덧신 만들어 신겨줘야겠네... 그런 생각도 하고.

 

그러니까 이건 모두 이 책 덕분이다. 요즘 찾기 힘든 아날로그 현상소에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오래된 필름을 맡겼다가, 설레는 기분으로 내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 봉투를 열어 비닐 안에 들어있는 몇 장의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같은 종류의 두근거림이 있는 순간을 아끼는 친구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이다.

 

우리나라에 <테디 베어의 사랑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넘치게 사랑받은 Much Loved>이라는 사진집에는 곰 인형 사진이 가득하다. 이 책은 아일랜드 사진가 마크 닉슨이 낡디낡은 곰 인형들을 사진 찍고 주인들한테서 사연을 받아 기록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수십 년 동안 주인 곁에 있던 인형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닳아빠진 모습은 제목 그대로 '넘치게 사랑받은'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22쪽

 

"이게 다 똑같지가 않거든요, 표정이..... 조금씩 다 다르거든요."

설명을 덧붙였는데도 반복일 뿐이잖아! 나는 내 안의 이 진지함을 알려줄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뒤로 침묵했다. -79쪽

 

"사람한테나 좀 신경 쓰고 그러지." 이 말을 한참 곱씹었다. 어쩐지 들어 본 말인데. 아프리카 아이들, 먼 곳의 난민들을 돕는 사람들한테도 비슷한 비난의 말을 한다. "우리나라에도 굶는 애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한테나 신경 쓰고 그러지."

우선순위 때문에 감수성이 좁아지고 좁아지면, 그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177쪽

 

마지막 인용문에 대해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저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상처받을 마음 한 구석자리를 허하는 것조차도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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