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의 아이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1
낸시 파머 지음, 백영미 옮김 / 비룡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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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적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사실 리뷰가 뭐 별건가요. 그냥 무슨 책을 읽었는데 대강 이러저러한 내용이었으며, 어떤 인물들이 등장했고, 이런 인물은 있을 법하지만 저런 인물은 너무 작위적이고, 다 마음에 들었는데 요런 부분이 에러여서 실망했고 반면에 어떤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작가의 책은 다음에도 또 읽어볼 것이다, 아니다. 이런 골조로 쓰면 되지, 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늘 생각 같지가 않아서 일주일에 한 권만이라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써 두자, 싶었는데 그나마도 지키는 게 무지하게 어렵습니다. 에휴, 계획만 거창한 인생. 


여하간! 그렇게 대충 모양새를 엉성하게 세워놓은 그대로 쓸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인상적이었던 책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것이나까... 


어제 하루만에 이 책을 다 읽었습니다. 중학생 아이들이 놀자고 징징댈 리는 만무하지만, 초등2학년인 꼬마는 안 그래도 친구도 못 만나고 학교도 못 가고 갖고 놀 것도 별로 없고 심지어는 새 이야기책이 읽고 싶은데 책마저 없어서 입만 열면 엄마 놀자, 게임하자가 입에 붙어 있어서 10분도 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 애 앞에다 넷플릭스를 켜 놓고 옥토푸스인지 옥토넛인지를 줄창 틀어주고 시리즈가 끝난 뒤에는 저리 가서 알아서 놀아! 를 외치며 파리 쫓듯 팔을 휘저어 밀어 내며 (아들 미안...) 읽었으니 페이지 터너라고 할 만 합니다. 


줄거리는 이래요.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는 아니지만 마치 엄마처럼 자기를 사랑해주는 어떤 아줌마와 함께 살아요. 그녀는 아이에게 절대로 남의 눈에 띄어서도 안 되고, 집 밖에 나가서도 안 된다고 다짐을 둡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아이는 집을 벗어나서 바깥사람들을 만나고, 영문도 모르면서 뜻밖에도 어느 저택의 아주 구석방에 감금되고 맙니다. 짐승이라 불리며 짐승같은 취급을 몇 달간 받으며 실어증까지 걸린 채 감금 생활을 이어가던 아이에게 엄마와도 같았던 아줌마가 다시 나타나며 너를 구해주마 약속합니다. 그러면서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던 누군가에게 알리지 않고서는 너를 구할 수 없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깁니다.


며칠 뒤 아줌마의 호언장담대로 아이는 짐승우리 같던 그 곳에서 구해지고 생전 처음 보는, 그러나 첫눈에 호감이 가며 절로 애정이 샘솟는 친절한 노인을 만납니다. 자기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친절하고 살가운 노인을, 아이를 구박하고 때로는 증오하는 태도로 대하던 저택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죠. 노인은 아이의 아줌마, 셀리아가 부르는 애칭 '미 비다(나의 생명)'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며 본인도 아이를 그렇게 부르며 아껴주고 위해줍니다. 훌륭한 교육도 시켜주며, 맛있는 음식도 먹게 해 주고, 아이에게 저택의 사람들이 함부로 굴지 못하도록 경호원도 붙여줍니다.


아이는 점차 노인이 왕과 같은 위세를 가지고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뒤에서는 경멸하고 증오하는 것을 눈치챕니다. 마치 자기에게 하는 것처럼. 아이도 노인의 옆에서는 노인과 같은 입장이 되지만 돌아서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그리고 그 이유는 순식간에 드러납니다. 주인공 아이는 이미 140세가 넘은 노인의 클론으로서, 청소년이 되면 그에게 치명적인 장기를 내어주고 생을 거두어야 하는 운명이니까요(책 뒤표지에 이미 나와있는 내용이고요...).


여기까지가 전반부의 내용이죠. 정말, 순식간에 사람을 끌어오는 매력이 있어요. 문장이 쉽고 깔끔하고, 거창한 수식이나 비유법은 최소한으로 절제돼 있어서 외려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는 건 읽는 쪽입니다. 그런데... 클라이막스까지는 너무 좋은데 이야기의 매듭이 너무 약한 점은 조금 아쉬워요. 바람 빵빵하게 잘 불어놓은 풍선이, 어느 순간 퍽 터져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맥없이 바람이 빠져버린 기분이랄까요. 아니면 이건 뭐지 싶은 기분인지. 이야기를 어떻게 풀지는 물론 작가 마음인데 비범한 이야기가 평범한 요정 대모가 나타나는 페어리테일처럼 끝나서 아주 조금 속상합니다. 


캐릭터는 되게 매력있어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주인공은 그럼에도 자신을 세상에 있게끔 만들었던 악인 마약왕 노인에게 대한 일말의 애정을 갖고 있죠. 왜곡되고 비윤리적인 마약왕 노인은 눈 앞에 살아있는 자신의 유년이라 여기고 왜곡된 애정을 베풀었던 클론들을 희생시켜가며 불멸을 탐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불멸을 탐한 것이 아니라 소멸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마트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네가 미안하다고 하면, 그 애는 용서해 줄 거야. 마리아는 착한 아이니까."

셀리아는 말했다.

"난 사과했어."

마트는 간신히 말했다.

"그런데 그 애가 그걸 안 받아 줬구나. 그래, 그런 일도 가끔 있지. 우리는 가끔은 진심을 보여 주기 위해 무릎 꿇고 엎드려야 할 때가 있단다." - 245쪽


자신은 멍청한 짐승이고 그래서 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 애는 용서해 즐 것이다. 하지만 탬 린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불렀고 그래서 더욱 많은 것을 기대했다. 마트는 깨달았다. 인간이란 용서하기가 훨씬 힘든 존재라는 걸.

- 273~274쪽


그리고 톤톰은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는데, 마트가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은 톤톰이 파수꾼들의 방 청소와 설거지를 도맡아하기 때문이었다. 마트는 파수꾼들이 톤톰의 출입을 허락한 것은 톤톰이 우둔해서 눈에 보이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걸 간파했다.

하지만 셀리아가 자주 말했다시피, 어떤 사람들은 둔해서 생각이 느릴지는 몰라도 일단 생각을 시작하면 아주 철저하게 파고든다. 마트는 톤톰의 말에 귀 기울이는 동안, 톤톰이 멍청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톤톰은 파수꾼들의 행동거지에 대한 관찰과 공장의 기계류에 대한 이해에서는 지적인 정신이 느껴졌다. 톤톰은 단지 자신의 의견을 갖는 데 신중할 뿐이었다. - 589~5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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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피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9
메리 E. 피어슨 지음,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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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어떤 독서가이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에 사명감을 갖고 있는 어떤 엄마가 본인의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좋은 책은, 그 책이 어떤 책이건 간에 나이에 상관없이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그것도 쉽게 그러하다, 아니다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요. 

YA- young adult,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청소년 소설'이라는 범주로 묶고 있는 듯한데,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소설은 막상 제가 그 연령대였던 시절에는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아예 그런 이름이 없었던 것도 같고요. 즉 청소년 소설이라는 걸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나서 제대로 읽어보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본의 아니게 약간 '......'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닐 거예요.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분의 말마따나, 좋은 이야기는 그것이 누가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상정하고 쓴 작가의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든 호소하는 바가 있더군요.


이 책에는 서스펜스가 조금, 아주 약한... 소금간 정도의 서스펜스가 들어 있습니다. 딱 아이들이 감당하기 적절한 수준으로요.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청소년' 얘기지, 현실의 청소년 감각으로는 서스펜스라고 부르기도 유치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이야기는 어떤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뒤 일 년 반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주인공 소녀가 주변 세계를 탐색하고 재인식해 나가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시작됩니다. 기억이 통째로 날아간 주인공 제나는, 도대체 왜 어떤 것들은 이토록 생소한지, 그리고 왜 갑자기 어느 순간에는 기억이 물밀듯 차 올라오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천천히 다시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면서 의문이 쏟아집니다. 왜, 왜 저것은 저렇지? 이건 이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듯한,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환청 같기도 하고 절규 같기도 한 이것은 뭐지? 제나는 혼란스럽습니다. 나는 아직도 세상을 다 기억해내지 못했는데. 간헐적으로, 그러나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기억은 제나를 더 어지럽게 만듭니다. 제나는 지그소 퍼즐처럼 흩어져버린 기억의 파편들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들로 자꾸 자신을 괴롭히는 뭔가를 유추해 나갑니다. 


청소년 소설이니까 그 과정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충격적입니다. 사랑을 옳고 그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평가의 잣대는 뭘까요. 사랑이 왜곡되기 시작했다면 그건 어느 지점부터인지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식은 부모의 사랑에 응답할 의무가 있을까요. 부모는 자식에게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걸까요. 


결정적 스포일러가... ▼

 

나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음이 기거하는 곳은 어디이고, 마음이 사라진다면 생명은 의미가 없는 걸까요? 신체와 정신이 정체성의 지분을 똑같이 나누어 갖는 걸까요? 어느 쪽에 무게가 더 실리지는 않을까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꼭 선택해야만 한다면, 현재의 '나'를 더 많이 점유하고 있는 것은 정신일까요, 신체일까요.


사랑과 집착의 경계는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행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백업을 없애려는 제나와 제나를 지원하는 릴리, 백업을 보존하려는 제나의 부모. 어느 쪽이 인간적이라고 봐야 할까요.

원본이 아니지만 고유해지고자 하는 제나의 욕망. 그건 인간적일까요? 제나는 인간일까요? 


'나'는 '나'의 영역을 어디까지 손대고자 하는 타인(부모 포함)의 욕망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가 제가 떠올린 의문입니다. 아마 퍼낼 수 있는 질문은 더 많을 거예요. 


이 책은 정체성과 고유성, 개별성에 대해 끝없는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떤 것도 쉽게 대답할 수 없어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책을 좋은 책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책입니다. 

 

펼친 부분 접기 ▲


많은, 정말 많은 말할 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들어 있어요. 중학생 이상의 아이에게라면 꼭 추천하고 싶고요. 자아정체성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할 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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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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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굳이 리뷰를 쓸 생각이 안 드는 책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굳이 여기에 보태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딱히 밝혀 쓰고 싶지 않기도 하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읽기만 해서 그렇기도 하고, 뭐 그런 이유들이죠.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선뜻 리뷰를쓸 마음이 안 생겼던 것도 그래서이기도 하고요. 이 책도 그렇게 묻어두고 싶었는데 마침 이야기할 적절한 계기가 생겨서 몇 줄 써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요새 뉴스마다 난리였죠. 코로나 바이러스와 선거 얘기를 젖혀두고 가장 뜨거웠던 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성착취 동영상을 상품화해서 이윤을 챙긴 범죄자에 관한 소식이 매일같이 포털 메인을 열었습니다. 음... 이런 류의 인간들이 어떻게 어린 여학생들을 끌어들이는지를 본의 아니게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비슷한 인간들일 거예요. 첫째 딸이 굉장히 대담한 반면에 둘째 딸이 필요 이상으로 심약하고 겁이 많은 성향입니다. 첫째 아이는 의심도 많아서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나 도착한 메시지는 상대도 하지 않는데, 둘째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일년 전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아이가 받았습니다. 전화를 건 이는 건들거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왜 남의 전화에 멋대로 전화를 걸어놓고 받을라치면 끊고, 또 끊고, 누구시냐고 묻는 문자는 다 씹어버리느냐? 목소리 보니 어린 여학생 같은데, 이러는 거 나쁜 짓인거 몰라요?" 라고 대뜸 호령을 했어요. 당연히 아이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다만, 너무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이를 야단치고 을러대기 시작하니까 겁이 많은 아이는 내가 실수로라도 그랬나? 하고 겁에 질리더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 아빠가 화가 나서 전화를 뺏어 끊어 버렸습니다. 보호자가 옆에 있는 줄 몰랐겠지만, 이 작자는 다시 전화를 걸더니, 남편이 받은 줄도 모르고 계속 헛소리를 지껄이는 겁니다. "너, 함부로 남의 전화에 막 장난 전화 걸고, 끊고, 내가 경찰에 신고한다" 라고요. 아이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아빠가 응대하니까 횡설수설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리고 욕으로 범벅을 한 문자를 몇 통을 보내더니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 사건이 있고 바로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아이 핸드폰도 해지하고 뭐 그랬습니다만, 요즘의 뉴스를 보다 보니 그 사건이 기억이 났어요. 패닉하기 쉬운 성향의 아이들이 이런 인간들의 같잖은 수법에 걸려 들어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거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가리겠습니다 ▼

여하간,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 인간들도 쓰레기지만요. 이런 걸 컨텐츠라고 소비하는 인간들도 못잖게 쓰레기인데 왜 그들은 물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분명 한둘이 아닐 겁니다. 청원인수가 그 사실을 증명하죠. 그리고 또 어떤 어르신이 그러셨다면서요. 누가 무슨 청원을 한다고 그걸 어떻게 다 법으로 만드냐고 했다던가? (사실 확인은 안 했습니다) 그 말을 누군가에게 듣는 순간 자동으로 이 책이 떠오르더란 말이죠.

아, 왜요. 켕기는 게 있으신가. 


물론 법이라는 게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가 원한다고 그렇게 뚝딱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그런데 그 청원이라는 게 어떤 정서에서 자라 올라온 건지 조금이라도 감안할 수 있는 공감력이 있다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거죠. 그러니까 찔리는 거 있으세요? 라는 비아냥이 메아리치는 것도 인지상정인 겁니다. 힘 있는 사람, 그들이 켕기는 짓을 할 때, 그리고 그것을 감추고 싶어할 때, 우리는 어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정말 스케일이 큽니다.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는 의문이죠. 저들은 왜? 그런데,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소설의 끄트머리는... 이해는 하지만 정말 속상하게 해요.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은연중에 내리누르는 압박감으로 인한 비자발적인 동의로 DNA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상적인(?) 잠재적인 범죄 감시 및 통제 시스템이 구축된 사회가 배경입니다. 주인공은 그 시스템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이며 시스템을 맹신하죠. 이 시스템이야말로 범죄율이 0%에 가깝게 내려가도록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해 줄 핵심적인 인프라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맹목적인 믿음이 삶을 배신합니다. 주인공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어떤 설계가 이제 자신을 죄어오는 덫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시스템의 가장 내밀한 설계자이며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될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던 피해자들. 그들이 공표하려고 했던 데이터의 비밀은 무엇이며 왜 시스템의 강력한 옹호자였던 주인공은 누명을 뒤집어써야 했을까요.


이것이 이 책의 제일 주요한 미스터리이고 이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혈압이 급상승하면서 스리슬쩍 묻혀버린 어떤무슨어떤 사건들과 또 어떤어떤 분들이 막 생각나는 건... 보너스로 따라오는 빡침입니다. ㅎㅎㅎ 아무튼, 재미있고 시의적절하며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인 것은 분명해요.  

도로 접을까요 ▲


한마디로 통제가능한 사회란 건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거고, 데이터는 평등하게 열람되어야 하며, 그렇다고 또 살아 움직이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유기체를 데이터화하려는 시도도... 그게 빅데이터건 뭐건, 좀 적당히들 해 두어야 한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하는 책입니다. 제목이 되게 애매하게 단호한 느낌이네,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면 제목이 스포일러네...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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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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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동안 읽은 책들을 모아놓고 대강의 결산 비슷한 것은 하지만 올해 최고의 책, 과 같은 부담스러운(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것만 같은 무게있는) 타이틀을 붙여놓고 한두 권을 고르는 일은 안 했습니다. 말 그대로 부담스럽고 무서우니까요. 물론 가까운 친구들이 주로 둘러보고 가지만서도 누군가가 우연히 '이 책이 올해 읽은 최고의 책이었다'라고 쓴 글을 보고, 아니 뭐 그런 책을 좋다고 추천해요? 라고 묻는다면 극소심(그리고 속으로는 가시를 세우는)한 저는 아 그런가요... 하고 말꼬리를 흐릴 것만 같거든요. 그런데 이제 겨우 3월 중순을 보낸 이 시점에서, 남은 몇 달 동안 책을 더 이상 안 읽을 것도 아닌데 이 책은 정말 최고였어라고 몇 번이고 되뇌게 하는 소설을 만났고 이 책에 대해서 몇 줄이라도 떠들지 않으면 입이 간지러워서 어떻게 될 것 같은 기분에 꽉 짓눌렸단 말이지요. 


읽고 싶은 책을 내가 직접 고르는 경우가 더 많지만 책이 나를 찾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그닥 없는 순간에도 '자율성'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게 인간 본성이어서일까요, 예고된 도서관 휴관을 앞두고 좀 허전해진 한국책 서가를 맴돌다 눈에 익은 작가 이름을 발견했어요. 이 작가의 전작 중에서는 두 권을 읽어 보았고요.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입니다.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오베...>가, 캐릭터의 생동감은<할머니가...>가 훨씬 좋았습니다. 즉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한 느낌은 아니었다는 뜻이예요. 개인적인 판단으로서는. 


공통적으로 모아지는 특징이라면 이런 거였습니다. 굉장히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을 오밀조밀 뜯어보는, 그래서 뭐든 꿰뚫어보고 있는 노인 같은 작가다...라는 것. 어느 한 면만을 보고 속단하기에 사람은 너무 많은 얼굴을 갖고 산다는 거, 당신들이 잊고 있을수도 있지만 어떤 일들은 둘 이상의 각도에서 바라보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손을 뻗어 미처 보지 못한 어떤 부분을 가리켜 보여주는 예리한 감성의 소유자일 것 같다... 라는 것.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고 어떤 교육과 독서와 여타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너그러운 시선으로 사람들을 감싸안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됐을까.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결점투성이고 치명적인 과오를 저지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을 창조해냈을까. 인간으로서는 바닥인 것 같은데도 그 사람 마음 바닥 어딘가에는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보듬고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아주 쉽게 선택하는 비윤리가 어째서 옳지 않은지, 그것이 어떻게 의도된 무심함 속에서 타인을 목조르는 올가미가 될 수 있는지를 이토록 선명하고 인간미 넘치게 호소할 수 있을까. 

세상의 많고 많은 험악하고 질 나쁜 사건들의 피해자가 어떻게 삶을 힘겹게 이어나가고 있는지, 그들에게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들이 무엇인지 이렇게나 남의 일 같지 않게 마음 불편하게 하면서, 모든 진실을 뾰족하게 다듬어 찔러넣어 아프게 하는 이야기가 또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절대 즐겁지 않습니다. 굉장히 괴롭고 아파요. 그렇지만 그 아픔은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고통이기 때문에, 저는 진심으로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은 폭력의 피해자가 실제 당했던 그 폭력보다, 생각없는 2차 폭력들이 양산되는 시간 속에 피해 당사자를 포함해 그 가족까지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훈계조도 설득조도 아닌 건조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정말 무덤덤해요. 그러니까 그 감정은 고스란히 독자가 느껴야만 합니다. 쉽게 손가락질하고 쉽게 말을 옮겨 상처를 곪게 하는 무심함이 바이러스와 다를 게 뭔가 생각하게 하죠.

단순히 어떤 폭력사건에 대해서만 서술하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독자를 이야기의 배경인 베어타운 안으로 깊숙이 끌고가는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요. 그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곁을 지키며 이 두꺼운 소설을 든든하게 떠받칩니다. 

자신의 일로서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번번히 남편의 직업적 소망에 짓눌려 자신을 희생하는 아내의 이야기는 속을 답답하게 합니다. 한때 가까웠지만 마음의 거리는 갈수록 벌어지는 부부사이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철렁해져요. 너무 현실적이어서요. 

끌리는 이성에게 거절당하고 그의 가장 숨기고 싶은 비밀을 폭로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해요. 잘못인걸 알지만 우리도 그렇게 순간의 분노와 좌절에 휩싸여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던 순간이 있었으니까요. 주부 노릇이 아무리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말까지, 작가는 속시원하게 해줍니다. 어떻게 이런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이야기가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작가와 소설 속 인물들과 이야기의 방향과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의문이 쉴새없이 싹틉니다. 계속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최근에 내가 읽었던 그 어떤 책들 중에서도 이렇게 넘치는 질문을 끌어올린 책이 있었던가하고요. 계속 질문하게 하는 책은 좋은 책입니다. 많은 독서가들이 말하고 있듯이요. 물론 모든 독자가 같은 질문을 하란 법은 없겠지만요. 묻게 만들고 답하기 위해 생각하게 하고. 역시 책은 그래서 읽는 것인가 봅니다.


이곳에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저지르는 끔찍한 잘못은 대부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날수록 실수는 더 커지고 결과는 더 끔찍해지며 자존심에 더 엄청난 금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31쪽


"애들 꼬맹이 시절이 기억나요, 파티마? 유치원으로 찾아가면 애들이 달려와서 말 그대로 내 품속으로 뛰어들잖아요. 내가 받아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온몸을 맡기잖아요. 나는 그 순간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파티마는 웃으며 말했다. "아맛이 하키를 하고 있으면, 행복해하면 나도 똑같이 느껴져요. 어떤 건지 알죠?" 안-카트린은 알고도 남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117쪽


부모 간의 애정이 식으면 아이들은 아주 미묘한 것을 통해, 심지어 '너희'라는 아주 사소한 단어를 통해 알아차린다. 마야는 요즘 매일 아침마다 그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인 척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예전에 그녀의 부모님은 서로를 그냥 '엄마'와 '아빠'라고 불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딸, 엄마가 진심으로 너를 천 일 동안 외출 금지시키겠다는 건 아니야." "딸, 네가 만든 눈사람을 아빠가 일부러 무너뜨린 거 아니야. 발에 걸려서 넘어진 거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한쪽이 거의 아무렇지 않게 "네가 집에 없으면 너희 엄마가 엄청 걱정하는데, 전화를 해주면 안 되겠니?"라고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너희 아빠랑 나는 너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라고 보낸다. 결혼 생활이 파탄 났음을 알리는 한 단어. 그게 바로 '너희'다. 둘은 이제 서로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건가.  -137쪽


엄마 노릇은 집의 토대를 굳히거나 지붕을 고치는 것과 같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완벽하게 끝내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아무도 칭찬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야근을 하는 것은 예쁜 그림을 걸거나 전등을 바꾸는 것과 같다. 모두가 알아봐준다.  -299쪽


우리는 항상 공격한 쪽의 감정을 변호한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쪽이 그들이라도 되는 듯이.  -398쪽


다들 이건 한 사람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럴 리 없다. 속으로는 우리도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을. -414쪽


그 별채 안에서 마야의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타임머신을 만들지도 않고 과거를 바꾸지도 않고 기억상실이라는 축복을 누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날마다 여길 찾아와 무술을 배울 테고 조만간 슈퍼마켓에서 줄을 서 있을 때 공교롭게도 모르는 사람이 그녀의 몸을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움찔하지 않을 것이다. 소소한 사건들 중에 가장 큰 사건이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슈퍼마켓이 아닌 다른 곳에 다녀오는 듯이 집까지 걸어갈 것이다. 그러고는 그날 저녁에 연습하러 여길 다시 찾을 것이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431쪽


"개자식들 앞에서 울지 마요, 벤이 선배."

벤이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휘둥그레 뜬다.

"참지를 못하겠는데...... 너는 무슨 수로 감당하니?"

마야의 목소리는 하는 얘기에 비해 힘이 없다.

"그냥 들어가요.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고 나쁜 놈이 쳐다보면 그쪽에서 고개를 돌릴 때까지 눈을 똑바로 쳐다봐요.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벤이는 그의 안에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묻는다.

"무슨 수로 견뎠니? 지난 봄에...... 그런 일이 있었을 때......무슨 수로 버텼니?"

그녀의 눈빛은 냉정하고 목소리는 딱 부러진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에요. 나는 생존자예요." 


그녀는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벤이는 영원의 시간 동안 망설이다 그녀를 따라간다. 그녀가 그를 기다린다. 그의 옆에서 걷는다. 그들의 걸음은 느리고 어쩌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살금살금 그 복도로 들어서지 않는다. 폭풍처럼 진격한다. -522~5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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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도 서점 이야기 오후도 서점 이야기
무라야마 사키 지음, 류순미 옮김 / 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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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름이라는건 호오의 기준이건 질적인 판단의 기준이건 뭐든 갈래로 나누는 기준으로 써 본 말입니다.


요즘 영어공부 겸 (갈수록 언어감이 떨어지는 건 공부밖에 답이 없는...) 북클럽에서 최근 읽기보고때 이야기할 거리를 늘려갈 겸 책 관련 팟캐스트를 발굴해서 듣고 있는데 이 방송 진행방식이 좀 재미있습니다. 진행자가 한 명의 게스트를 초청해요. 그리고 초대손님에게 최애책 3권, 싫어죽겠는 책 1권, 그리고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하게 하죠. 그리고 드디어 진행자가 짠! 하고 저는 당신의 다음 읽을거리로 이런 책들을 추천할게요, 하고 3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간략한 소개와 왜 그 책을 추천하고 싶은지 이유를 덧붙여서요. 방송 포맷은 일전에 싫은 소리를 잔뜩 썼던 일본의 어떤 서점원이 쓴 책에서 본인이 했던 책 추천하는 과정과 상당히 닮아있지만,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일단 초대손님들이 '저자'의 신분을 갖고 있던가 꽤나 책벌레라던가 이런 입장의 차이가 좀 있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것을 듣는 재미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쨌건 진행자가 추천을 하면 추천받은 게스트 입장에서 분명히 타이틀 하나 정도는 기억하지 않을 리 없다는 믿음이랄지 확신이랄지 그런 걸 갖고 있는 듯해요. 리스닝 연습은... 힘들지만 해야하는 거고요...


현재까지 한 200여 회차가 올라와 있고 끽해야 다섯 개 정도의 분량밖에 못 들었지만 놀라웠던 건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이야기할 때의 톤이, 초대손님이 누구건 간에 몹시 비슷해진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당연한 건데도요. 좋아하는 감정을 숨길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표정도 제스추어도 아무것도 없이 목소리만 갖고도 이 사람이 어떤 표정과 액션을 곁들여 말하고 있는지가 너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더라고요. 일면식도 없는 건 물론이고 이름도 처음 듣는 외국인인데도!!!


여하간, 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쓸 때 참 어렵습니다. 내가 이걸 왜 좋다고 생각하는지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설득력있게 전하고 싶은데 그때마다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고. 그런데 이 마음을 똑같이 본인 책에서 표현한 글 쓰는 이를 발견했어요. 아주 우연하게. 그렇게 그 방송 진행자를 알게 됐습니다. 이만치 독서경험이 풍부하고 책도 몇 권을 쓴 사람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지구상 어딘가에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책 읽는 큰 기쁨 중 하나 아니겠어요. 


아무튼, 말이 길어졌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왜 좋은지 풀어 말하는 것'은 그토록 어렵지만, 별로 안 좋은 것이 왜 안 좋은지를 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조금 편합니다. 그리고 죄송하게도 그 예를 들어 언급할 책을, 좋아하셨던 분들께는 왠지 죄송한 마음이지만 사람이라는 게 원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다 다르니까요. 이유도 같을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그냥 가볍게 보고 넘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당연하죠. 제 경우에도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삶에서 닥쳐오는 어떤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어떤 태도로 견뎌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라도 배우고 싶은 이유에서입니다. 많은 문학이 인간 삶의 여러 측면들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살아간다는 건, 누구나 알듯이 그다지 녹록하지가 못합니다. 꼬일대로 꼬여버린 일들이 쉽게 풀리는 일 따윈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아요. 뜨개실 엉킨 것을 혹시 풀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깊이 공감하시겠지만 그 별것도 아닌 실타래 하나가 꼬여도 이건 사람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가끔은 그냥 가위로 다 잘라버리고 싶어져요. 실의 요정이 나타나서 엉망진창이 된 실타래가 절로 스르륵 풀어져 돌돌 감기도록 지팡이를 휘둘러주는 일 따윈 절대 일어나지 않고요. 


정말 놀랍게도 갈등을 다루는데 미숙한 작가들을 생각외로 자주 만나게 됩니다. 

아무리 세상 마음 편하게 곱게 자랐어도 속을 할퀴어놓는 감정의 격랑이든 타인과의 갈등이든, 그런 풍랑 한번쯤 겪지 않고 성인이 된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왠지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 온실 속 화초 같은 분들을 종종 봅니다. 힘들 때마다 이렇게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다가 기적의 문을 열어주다니, 작위적인 설정도 정도가 있다고요. 웹툰도 가끔 보는데 거기서도 갈등을 몰고 올 것 같은 인물이 등장했다가 몹시 어이없게도 어떤 영웅적인 주변인물의 활약으로 그냥 무대 뒤로 사라지는 설정도 꽤 봤어요. 

아... 좀... 허탈해요. 싸움 구경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자신의 삶에서 그러듯 평범미를 자랑하는 주인공이 평범하지 않은 갈등 구조 속에서 내적 평안이든 외적 평화든, 뭐가 됐든 그 모든 것이 다 차분히 정리된 정적인 상태에 어떻게 이르는지를 보고 싶고 책장을 넘기며 응원하고 싶어하는 게 일반적인 독자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첫장부터 막장에 이르기까지 그냥 편편한 스토리가 이어지면, 좀 안타까운 건 사실이죠. 내 인생은 이렇게 뭐가 맞춘 듯 딱 맞아 떨어지지도 않고 어디서 귀인이 갑툭튀할 팔자도 아닌 게 분명한데. 심지어 아니꼬운 기분마저 올라와요. 물론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는 게 좋아서, 남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좋은 착한 사람들도 세상엔 분명히 많아요. 단지 제가 그 착한 사람이 아닐 뿐이고 내 인생의 귀중한 몇 시간을 털어넣은 만큼 여기서 뭔가 하나 건져가고 싶은 기브앤테이크 정신이 투철한 게 문제일 뿐이지... 쓰다보니 내가 이렇게 전투적으로 책에서 뭔가를 털어가려고 하는 사람이었던건가 갑자기 회의가 들기도 하고. 

그래도 이왕이면 남의 인생 행복한 것 보는 게 좋기는 합니다. 다만, 그저 그 길을 가는 사람이 뭔가 나와 좀 다른 부류의 사람 같으면 사알짝 힘이 빠지는 것도 부정하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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