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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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한 자루 밝혀 들고

이것으로 오늘은 마지막이라고
말하지 말자.
매일 그어지는 내 삶의 선
흔들리는 촛불처럼
비틀거리는 내 뒤의 그림자로
나 자신 역시
흔들리고 있음을 안다.

나 아닌 남을 위해 산다는 것조차
더 큰 에고이즘은 아닌지
돌아보며,
내가 선 이 자리가
나의 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대 입가의 엷은 미소로도
자신의 불꽃,
빛나리라.

아름다운 흰색, 녹아질 수 있는
초 한 자루 밝혀 들고
내 삶의 길을 결정하노니
오늘은 내일을 위해 조용히
가슴에 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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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낙엽으로날리는 거리에서 나누는 또 다른 나와의 대화

살아 있음을 느낀다
아직은 술잔이 남아 있기에
아무도 업는, 바람과
바쁜 차들의 거리에
그리움도 말라버린 낙엽의
가을에, 아직은 살아 있음이 우습다.

나는 출렁인다
눈 깊은 바람은
또 얼마나 나를 거부하고
헤매는 사람들끼리도
방해받고 싶지 않음으로
머리 속에는 늘 파도가,
거품으로 부서지는 하이얀 파도가
출렁이고, 나조차
살아 있음을 아무리 의식해도
나는 아프지도 않고
땅은 자꾸만 비틀거리며
술잔이 나를 보고 웃고 있는데
<지금>이 어디론가 가버린다.

지쳐 있는 나와 계절을 버려두고
가버려질 수만 있다면
언제일 수 없는 만남으로 인하여
낡은 추억 하릴없이 떠올리고
그냥 살아갈 수 있는,
그냥 적당히 죽어버릴 수 있다면
뭐든 붙들어야 하는
아직도 아쉬움에 살아 있지만
내 안타까운 이 삶
다 살고 난 마지막 날조차
이 아쉬움, 아쉽지 않을
자신도 없기에
바람 잘 지나가는 이 길에
더욱 흔들리는데
나무는 왜 저렇게 서서
이 눈빛 매서운 바람의 거리에서
나를 재초가지도 않는데,
해야 할 일 하나도 없이
나는 이렇게 추위를 느끼는데
나무는 또 저렇게 의연히 서 있나
나는 쓰러지려는 걸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데,
잠시 부는 바람에도
너무 잘 흔들리고 있는데
나무는 나를 지치게 한다.

무엇이든 말해야 하고
말하고 싶은데
어디를 향해야 할지도 없이
땅은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내 속에 울고 있는 <나>를
돌아보고 있다.
아, 웃고싶다. 살아 있음으로 하여
크게 웃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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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기 2


추억을 
인정하자 
애써 지우려던 
내 발자국의 무너진 부분을 
이제는 지켜보며 
노을을 맞자. 
바람이 흔들린다고 
모두가 흔들리도록 
버려 둘 수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또 
잊어야 했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육신의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 
내 가슴에 쓰러지는 
노을의 마지막에 놀라며 
남은 자도 결국은 
떠나야 한다. 


아무도 
객관적인 생각으로 
남의 삶을 
판단해선 안 된다 
그 상황에 젖어보지 않고서 
그의 고민과 번뇌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가졌던 
그 숱한 고통의 시간을 
느껴보지 않고서, 그 누구도 
비난해선 안 된다 
너무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지만 
그래도 가슴 아득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절망은 어쩔 수 없고 
네 개의 가시로 자신은 
완전한 방비를 했다면 
그것은 
가장 완전한 방비인 것이다 


나로 인해 
고통 받는 자 
더욱 철저히 고통하게 
해 주라. 
고통으로 자신이 
구원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남이 받을 고통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닌 것은 아닌 것일 뿐 
그의 고통은 
그의 것이다. 
그로 인해 일어난 내 속의 감정은 
그를 더욱 나약하게 만들 뿐 
아닌 것은 언제나 
아닌 것이다 
그로 인한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결국은 
옳은 길을 걸은 것이다. 


나의 신을 볼 
얼굴이 없다 
매일 만나지도 못하면서 
늘 내 뒤에 서 있어 
나의 긴 인생길을 따라다니며 
내 좁은 이기심과 기회주의를 
보고 웃으시는 그를, 내 
무슨 낯을 들고 대할 수 있으리. 

부끄러움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지만 
자랑스레 내어놓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기에 
좀더 살아 
자랑스러운 것 하나쯤 
내어 보일 수 있을 때가 되면 
자신있게 신을 바라보리라 
하지만, 
언제가 되어질지는, 아니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겠기에 
<나>가 더욱 작게 느껴지는 오늘 
나를 사랑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나 인간이기에 일어나는 
시행착오에 대한 질책으로 
어두운 지하 심연에 
영원히 홀로 있게 된대도 
그 모두 
나로 인함이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리 
내 사랑하는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 유황불에 타더라도 
웃으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있는 그 
어디에도 내가 견디기에는 
너무 벅찬데 
나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든 
신의 또 다른 뜻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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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을 보며

슬픔은 언제나 
나를 보고 웃고 있다 
고개를 돌리고 태연히 
잊어버릴 수만 있다면 
연이어 울리는 외로움의 소리 
하늘 가득한 노을이 
그 여름의 마지막을 알리고 
내 의식의 허전함 위에 
흐르는 노을의 뒷모습으로 
모든 가진 것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고개를 든다. 

보이는 것을 가짐으로
보이지 않는 것까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던 
나뭇가지 끝에 머무를 수 없는 바람처럼 
이제는
가지지 않음으로 
내 속에 영원히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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